
[스포츠니어스|태국 치앙마이=김귀혁 기자] 2년 전 부천에 한 일본인 선수가 들어왔다. 다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스페인에서 유스 생활을 보냈고 이후 몬테네그로와 핀란드, 루마니아, 스웨덴, 불가리아를 거쳐 한국으로 온 선수다. 이력 탓에 의문 부호가 있었으나 이 선수는 금세 K리그에 적응했다. 첫 시즌도 채 끝나기 전 여름에 이미 3년 재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올 시즌 K리그에서의 세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다.
지금 설명한 이 선수는 바로 카즈다. 카즈는 부천에서 첫 시즌 리그 35경기에 나서며 한 골과 세 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2024시즌에도 리그 33경기에 출전하며 부천의 중원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안정적인 패스 능력과 기본기 등을 바탕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카즈가 주목받는 건 비단 실력뿐만이 아니다. 입단 초기 부천 구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시내의 고시원에 자발적으로 살았고 한국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올해도 부천에 남으면서 카즈의 개인 경력에서 가장 오래 한 팀에서 머물게 됐다. 어찌 보면 괴짜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이 선수를 <스포츠니어스>가 만나봤다.
다음은 부천 카즈와의 일문일답이다.
부천에서 벌써 세 번째 전지훈련입니다.
벌써 3년 차라 적응은 끝났죠. 지금은 운동장 안에서 제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전지훈련에 임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에요. 그런데 올해는 뭔가 이전 2년보다 더 새롭기도 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새로운 전술을 많이 입히려 하시거든요. 다양한 전술을 준비하고 있고 수석코치님이나 피지컬 코치님, 분석관까지 새로 왔어요. 전체적인 훈련도 다 잘 되고 있고요. 새로 오신 분들도 팀에 잘 녹아들고 있어서 좋은 기분 속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잖아요. 마침 외국인 선수들이 브라질, 콜롬비아 출신입니다,
제가 처음 부천에 왔을 때는 할 수 있는 게 일본어와 스페인어뿐이었어요. 유럽에 처음 가서 스페인에 있었다 보니 그랬죠. 그런데 한국에는 대부분 브라질 선수가 많더라고요. 그 선수들이 다 포르투갈어로 얘기하다 보니 저도 그때부터 포르투갈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스페인어는 자연스레 까먹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몬타뇨가 우리 팀에 온 덕분에 다시 스페인어가 기억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면에서 열려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요. 일본어와 영어만 구사하다 보면 닫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제 성향상 그런 거에 갇혀서 있고 싶지 않더라고요. 워낙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좋아해서 자연스레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에도 흥미가 생겼어요. 그래서 지금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 영어, 일본어는 조금씩 할 수 있어요. 한국어도 배우고 있는 단계고요.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제 포지션 때문이에요. 미드필드에 있다 보니 많은 선수들과 경기장 안에서 소통해야 하거든요. 서로 통용되는 축구 용어가 있는데 때로는 한국어를 쓰다 보니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요.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나가', '올라가'와 같은 것 위주로요.

생각해 보니 닐손주니어가 팀을 떠났습니다. 부천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선배군요.
그게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바사니도 저와 같이 올해 한국 생활 3년 차거든요. 몬타뇨는 작년에 한국에 왔지만 이미 두 팀을 거쳤기 때문에 적응할 게 크게 없어 보이고요. 갈레고 역시 한국에 온 지 꽤 됐잖아요. 티아깅요 정도만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어요. 우리 팀의 전술이나 감독님의 성향, 전술 스타일 등을 알려주려고 해요. 그 외에는 이미 다 적응을 마친 선수들이라 크게 걱정할 건 없더라고요.
그러기엔 아까 바사니가 커피 심부름을 하던데요.
그건 오해입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그렇게 커피를 사주거든요. 제가 마침 바사니와 룸메이트이기도 하고요. 한 번은 제 차례였다가 오늘은 바사니가 사야 할 순서였죠. 그런데 제가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바사니가 커피를 가져다줬던 거고요.
오해였군요. 그런데 한국어는 누구에게 따로 배우고 있는 건가요.
제 통역이나 피지컬 코치님이 말씀을 엄청 잘하세요. 그전에는 팀 매니저에게 물어봐서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한국말로 뭐라 해야 해'라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지금도 계속 그렇게 물어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한국 선수들이 특정 단어를 많이 쓰면 제가 무슨 뜻인지 물어볼 때도 많고요. 최근에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드라마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일본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와 한국 여배우가 나오거든요. 기본적인 것들은 '틱톡'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요. 한 일본 틱톡커가 한국어를 알려주는 콘셉트로 나오거든요. 여러 방법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일본어에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영어, 한국어까지 5개 국어 능력자시군요.
사실 그렇게 모든 언어를 잘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비결이 있다면 기본적인 단어는 책을 통해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그걸 실전에서 써보는 거죠. 예를 들어 선수들에게 '너 잘 잤어'라고 물어보는 방식으로요. 그 이후에는 문장을 만들어서 써보기도 하고요. 결국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빨리 배울 수 있더라고요.
이전에 유럽에 계셨을 때도 비슷하게 공부했나요.
스페인에 2년 정도 있었거든요. 그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 어학원에 들어갔어요. 매일 한 시간씩 배웠죠. 영어는 그 전에 일본에서 고등 교육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걸 토대로 핀란드나 스웨덴에서 썼고요.
말씀 나온 김에 여쭤볼게요. 스페인부터 몬테네그로, 핀란드, 루마니아, 스웨덴, 불가리아까지 계셨습니다. 참 특이한 경력인데요.
처음에 일본 18세 이하 팀에서 계속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A팀부터 B팀, C팀으로 나뉘는데 제가 A팀까지 못 올라갔어요. 제가 고등학교 A팀에도 못 올라가는데 과연 프로팀과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사실 한국 선수들도 자국에서 잘 안될 때 해외 진출을 고려하잖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당시에 일본 학교에서는 졸업할 때 연결된 대학교에 가라고 권유했어요.
대학교에 가서 4년을 채워서 나가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 길이 조금 위험해 보이더라고요. 왜냐하면 제 선배 중 몇몇은 그런 식으로 경력을 이어가다가 안 좋은 길로 빠졌거든요. 흡연하거나 문신을 하는 등의 모습을 봤죠. 그 모습을 본 뒤로 '여기는 미래가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축구를 더 하고 싶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그 길을 찾아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이후에 제 아버지가 도움을 주신 덕분에 에이전시를 통해서 스페인에 테스트를 보러 갔어요. 한 달 정도 테스트를 보면서 결국 첫 팀과 계약하게 됐죠.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우셨는지도 궁금하네요.
14살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스페인에 한 달 정도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문화나 환경 등이 저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에 일본에서 계속 축구를 하다가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겼던 거죠. 기왕 해외에 나가려면 스페인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아버지께 바로 스페인에 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실제로 스페인에 가서도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정말 많았어요.
제가 홈스테이를 했을 때도 스페인 가족분들이 저를 너무 잘 챙겨주셔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갔는데 밥 먹을 때도 '이게 스페인어로 이런 뜻이야'라고 알려주시더라고요. 그것 외에도 너무 잘 보살펴주셔서 지금도 감사해요. 당시에 같이 스페인으로 넘어간 일본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는 아파트를 구해서 혼자 살았거든요. 나중에는 제가 그 선수보다 말이나 문화를 배우는 게 훨씬 빠르더라고요. 그 순간 저는 일본보다 외국에 나가서 축구하는 것이 맞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스페인에서 일본으로 돌아오신 걸로 압니다. 이유가 있었을까요.
축구가 잘 안되면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어요. 돈을 벌어야 했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이력서를 쓰려고 했는데 막상 쓸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평생 축구만 했으니 당연했죠. 학력도 고등학교에서 멈췄는데 축구를 한 건 사회에 나가서 거의 도움이 안 됐고요. 그런데 제가 스페인에 있었다 보니 의류 브랜드 '자라'가 눈에 띄더라고요. 마침 매니저가 페루 사람이라 '저 스페인에서 와서 의사소통할 수 있어요'라고 했죠.
그렇게 여섯 달 정도를 자라나 공사장 등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일하면서도 제 꿈이 생각나더라고요. 저는 월급을 받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자라에서 일했을 때는 돈은 벌었지만 제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원하는 걸 계속한다면 돈을 아예 벌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계속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요. 결국 꿈보다는 현실을 택했던 시간이었죠.
그 이후에 유럽 곳곳을 다녔습니다.
제 플레이 영상을 하이라이트로 만들었어요. 그 이후에 각국의 에이전트에게 제 영상과 이력서를 보냈어요. 일본이 아닌 현지 에이전트에게요. 그렇게 해서 한 단계씩 높은 리그로 가고 싶었어요. 한 번은 폴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이전트가 부르길래 '내가 돈 내고 가서 테스트까지 보겠다'라고 할 정도였어요. 테스트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영상을 만들었던 거죠. 사실 유럽에 있는 에이전트도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분들은 대형 선수들로 거래를 해야 돈을 벌 수 있잖아요. 저와 같은 환경의 선수들을 거래하지 않으려는 분들도 많을 거고요. 특히 아시아인과는 계약을 잘하지 않으려는 성향의 에이전트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계약만 성사되면 내가 돈을 더 주겠다'라는 식으로 계약하며 생활했습니다.
몬테네그로에서 처음 프로 생활을 하며 돈을 벌었군요.
제가 돈을 벌면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그때 당시에 몬테네그로 구단에서 집이나 식사 등을 다 책임져주는 조건이라서 급여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거든요. 유럽에 있을 때 대부분의 팀이 그랬던 것 같아요. 모든 팀이 테스트를 보자면서 사흘 정도 불러 놓는데 그 이후에 '연습 경기도 봐야 할 것 같아'라면서 계속 기간을 늘리더라고요.
그런데 부천은 달랐어요. 제가 처음으로 테스트 없이 증명해서 온 곳이거든요. 이미 제 경력을 보신 뒤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테스트 없이 계약을 맺은 거죠. 그래서 처음 부천에 들어와서 전지훈련을 왔을 때 조금 긴장하기도 했어요. 제 인생의 대부분은 테스트로 채워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부천에 왔을 때는 그런 과정 없이 서로 조율하고 메디컬 테스트를 본 뒤 계약을 맺은 거였잖아요. 처음으로 그런 상황이 펼쳐졌으니 괜히 긴장되더라고요.

다른 팀에서는 1년 동안 팀을 옮긴 경우도 많았는데 부천에서는 벌써 세 시즌째입니다.
저에게는 조금 다른 느낌의 팀이죠. 이전에는 계약 기간이 거의 1년이었거든요. 그다음 시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제가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플레이할 때마다 제 생각만 하게 됐고요. 조금이라도 제가 돋보여야 계약 연장이 가능했으니까요. 그런데 부천에서는 입단 첫해에 3년 재계약을 맺었어요. 그러다 보니 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축구는 한 팀으로 하잖아요. 제가 돋보이기보다는 동료들과 어떻게 해야 팀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게 됐어요. 또 1년에 한 번씩 팀을 옮겼을 때는 매번 새로운 선수와 호흡을 맞춰야 해서 그 부분이 어려웠거든요. 반면에 부천은 3년 동안 계속 봐왔던 선수들이 많아서 서로 스타일을 잘 알죠. 물론 다른 팀 선수들도 제 스타일을 잘 알겠지만요. 그래서 지금 전지훈련을 통해서 새로운 전술을 시도해 보고 있어요. 이제는 다른 선수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생활도 만족하기 때문에 더 계시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일본과 한국은 서로 가깝고 같은 동아시아 지역이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반면에 유럽에 있을 때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급여가 밀려서 나올 때도 있었고요. 사실 급여는 당연하게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당연한 게 아닌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이런 예시뿐만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런 면과 비교하면 한국은 훨씬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고요.
부천 입단 초기에는 고시원에 살면서 작은 전기차도 끌고 다닌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도 유럽에서의 생활과 연관이 있나요.
제가 유럽에 있을 때는 집도 작았고 차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그렇게 큰 집이 필요한가 싶더라고요. 차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생활하다 보니 더 편한 집과 차가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유럽에서는 워낙 힘든 삶을 살아서 처음에는 그런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집과 차 모두 보통 수준입니다.
머리도 처음에 왔을 때보다 지금 더 한국 스타일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한국 사람처럼 하고 다니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로 바꾸기도 했고요.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안 할 것 같아요. 제 부모님이 한 번씩 TV로 경기를 보시거든요. 그때마다 '우리 카즈 어딨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과 차별점이 없으니 더욱 그러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제 스타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머리 색을 한번 바꾸는 것도 고민하고 있고요.
이제는 한국에서 더 큰 존재감을 보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쨌든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잖아요. 다른 한국 선수들보다 더 특별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있었던 지난 2년과 비교해 올해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경기를 봤을 때 '저 선수처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잖아요. 저 역시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부천의 경기를 봤을 때 '저 23번 선수 잘한다'와 같이 말이죠.

카즈의 첫인상은 화려하다. 미백 치아와 맑은 눈으로 아이돌에 비견될 정도다. 그러면서도 행동은 엉뚱한데 실력까지 좋으니 부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카즈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수였다. 한때 축구를 그만두고 의류 브랜드 매장에서 일할 정도로 어려웠으나 다시 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던 이유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뒤 카즈는 부천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카즈의 축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를 불러준 팀이다. 왜 카즈가 부천과 한국에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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