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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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대한축구협회가 또 K리그 감독을 방패막이 세워 면피에 나섰다. 대한축구협회는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졸전 끝에 탈락하자 결국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 뒤 새로운 감독 물색에 나섰다. 클린스만 감독은 1년만 대표팀을 지휘한 뒤 위약금 약 70억 원을 안은 채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 달달한 위약금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했고 아시안컵 이후에는 더더욱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 또 다시 대표팀 소방수로 K리그 감독이 언급되고 있다. 나는 이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반복됐던 실패와 상처,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자리를 두고 홍명보 울산HD 감독과 김기동 FC서울 감독, 김학범 제주유나이티드 감독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밖에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 정도다. 박항서 전 베트남 감독도 언급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국은 또 다시 K리그 감독을 대표팀에서 빼가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축구의 유구한 역사(?)이자 망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또 반복되고 있다. 이제 K리그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각 팀들은 개막에 대한 기대감보다 ‘혹시 우리팀이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계획없이 K리그 감독을 빼가거나 여론막이용 감독을 대표팀에서 선임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에는 조광래 경남FC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앉혔다. 당시 협회는 경남FC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조광래 감독을 선임한 뒤 대표팀과 경남FC 감독 겸임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경남FC는 새로운 감독 선임 때까지 조광래 감독이 겸직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 감독 선임 일주일 만에 구단과 상의해 경남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기 위한 의지가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계약 기간이 남은 K리그 감독을 ‘겸직’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대표팀이 ‘차출’한 셈이었다. 

이후 조광래 감독은 아시안컵에서 3위에 머문 뒤 2011년 12월 ‘삿포로 참사’와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결국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매몰차게 대표팀에서 차였다. 이후엔 전북현대 왕조를 이끌던 최강희 감독이 소방수로 긴급 투입됐다. 당시 최강희 감독은 전북을 떠나 대표팀으로 가는 걸 한사코 거절했지만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해 나서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읍소 끝에 대표팀으로 가게 됐다. 당시 전북현대 모기업 최고위 수뇌부와 협회에서 최강희 감독을 다각도로 압박했다. 전북현대는 최강희 감독이 임시로 대표팀을 맡은 뒤 한 동안 흔들렸다.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 임시 감독이었고 전북현대 복귀가 약속돼 있었다. 

요르단전이 끝나고 기자회견에 참석 중인 클린스만 감독 ⓒ대한축구협회
요르단전이 끝나고 기자회견에 참석 중인 클린스만 감독 ⓒ대한축구협회

협회가 위기 때마다 방패막이로 내세운 감독들

이 기간 동안 전북현대는 이흥실 감독대행을 거쳐 파비오 감독대행의 대행까지 팀을 물려 받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최강희 감독은 미리 약속한 대로 2년의 임기를 마친 뒤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놓고 다시 전북현대로 복귀했다. 다음 소방수는 홍명보 감독이었다. 월드컵이 딱 1년 남은 시점에서 협회는 장기적인 계획이 없었다. 외국인 명장은 물론이고 국내 지도자들도 1년짜리 대표팀 감독을 맡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1년 후면 누구라도 난도질을 당할 게 뻔했다. 협회는 당시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며 주가를 높인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홍명보 감독은 1년 후면 침몰할 걸 알면서도 이 배의 선장이 됐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도박에 가까운 수를 던졌다. 대회 준비 기간이 짧은 탓에 당시 선수들의 경기력보다는 이미 자신이 잘 아는 선수를 기용했다. 나 역시 당시 이를 비판했다. 홍명보 감독은 이전에도 훌륭한 지도자였고 이후에도 멋진 감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시기에 이런 방식으로 팀을 맡아 운영하는 건 그 시도 자체가 모험이었다. 결국 1년여의 준비 기간 동안 모험수를 내건 홍명보 감독은 실패했고 최악의 여론 속에 부임 1년 1개월 만에 사퇴했다. 협회는 이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한 뒤 형편없는 경기력이 이어지자 결국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했다. 당시 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출전도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다. 

협회는 다 쓰러져 가던 대표팀을 신태용 감독에게 맡긴 뒤 재건을 지시했다. 지도자 인생을 건 신태용 감독은 힘겹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월드컵 본선 무대가 종료된 뒤 물러났다. 그리고는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파울루 벤투 감독이 4년간 팀을 맡았고 클린스만 감독이 바톤을 이어받았지만 결국 클린스만 감독은 1년 만에 경질됐다. 위기 때마다 협회는 K리그 감독을 빼가며 연명했다. 늘 K리그는 대표팀의 위기 상황이 되면 ‘한국 축구를 위해 나서달라’는 대승적 차원에 밀려 감독을 양보해야 했다. 감독이 한사코 대표팀을 거절해도 협회는 여론전과 수뇌부의 압박으로 지도자를 반강제로 그 자리에 앉혔다. 

전력강화위원회 구성 전부터 떠도는 감독 후보군

반복되는 이런 과거가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협회와 전력강화위원회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사실상 정몽규 회장의 독단적인 감독 선임 이후 협회가 여기에 맞춰가는 모양새였다. 지난 13일 클린스만 감독 경질이 결정되는 순간 이미 축구계에서는 바로 후임 감독 후보 이름이 거론됐다. <스포츠니어스> 유튜브를 통해서도 공개한 바 있다. 가장 유력하게 나오는 이름은 홍명보 울산HD 감독이었다. 당시 협회는 클린스만 감독이 이제 막 물러난 상황이었고 신임 전력강화위원도 선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아주 구체적으로 몇몇 K리그 감독이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올랐다. 이는 <스포츠니어스> 뿐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 실명으로 언급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협회가 마이클 뮐런 전력강화위원장을 협회 내 기술관련 연구 업무 파트로 보내고 정해성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을 선임한 건 오늘(20일)이다. 아직 전력강화위원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고정운(김포FC 감독), 박성배(숭실대 감독), 박주호(해설위원), 송명원(전 광주FC 수석코치), 윤덕여(세종스포츠토토 감독), 윤정환(강원FC 감독), 이미연(문경상무 감독), 이상기(QMIT 대표, 전 축구선수), 이영진(전 베트남 대표팀 코치), 전경준(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등의 전력강화위원도 오늘 선임됐다. 내일(21일)이 첫 회의다. 그런데 이미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되는 순간부터 다음 감독은 국내 지도자로 할 것이며 홍명보와 김기동, 김학범 중에 선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아직 전력강화위원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는데 벌써 차기 감독 후보 리스트가 돌아다녔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협회에서 높으신 누군가 콕 집은 지도자가 감독이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력강화위원회 구성 전부터 구체적인 감독 후보가 나올 수는 없다. 협회는 이미 짜여진 각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감출 수가 없다. 더군다나 국가대표 축구단 운영규정 제12조 2항-협회는 ‘1항의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K리그 구단에 거부권은 없다. 협회에서 찍어 누르면 K리그는 희생할 수밖에 없고 제일 능력 있는 감독을 빼앗기게 될 K리그 팀은 한참 동안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무슨 술자리 게임도 아니고 거부하면 두 잔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위기 때마다 K리그 감독들을 앞세웠다.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는 위기 때마다 K리그 감독들을 앞세웠다. ⓒ대한축구협회

자꾸 논란 뒤에 숨으려는 대한축구협회

협회는 여론전을 주도하고 있다. 일단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 프로세스와 국내 거주 등의 논란을 손흥민과 이강인의 싸움으로 피했다. 협회는 이 과정에서 “두 선수가 아시안컵 대회 도중 마찰을 빚은 건 맞다”고 이례적으로 이를 인정했다. 여론은 협회 운영과 정몽규 회장의 무능력이 아니라 손흥민과 이강인 중에 누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느냐로 며칠 동안 싸워댔다. 지상파 뉴스에서도 요르단전에서 둘 사이에 패스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를 자극적으로 다뤘다. 그리고 이제는 신임 감독 선임 논란이 시작되며 협회의 무능력한 행정력에 대한 비판보다는 ‘어느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결국 ‘시간도 촉박한데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인물이 희생해 달라’는 명분이 점점 더 생기는 중이다. 

후보군에 포함된 김기동 감독과 김학범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맡은 뒤 아직 K리그 데뷔전도 치르지 못했다. 그런데 협회의 후보군에 들어 벌써 그들의 겸직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해당 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K리그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이 둘이 아닌 다른 K리그 감독이어도 논란은 마찬가지다. 대표팀 부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홍명보 감독도 그렇다. 울산HD는 이미 시즌이 시작됐다. 현재 일본 도쿄로 날아가 내일(21일)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반포레 고후전을 준비하고 있다. ACL 경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울산HD는 감독의 거취에 대해 걱정부터 해야 한다. 구단은 대표팀 감독 선임에 거부권도 없어 울산HD는 어디에 하소연도 할 수 없다. 

홍명보 감독이 제안을 거부하면 그만이지만 협회가 여론을 모으고 찍어 누르기를 하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이 없다. 엄연히 계열이 다르기는 하지만 협회가 모기업을 통해 압력을 가하면 당해내기 어렵다. 정몽준 이사장이 HD현대 최대주주라 정몽준 이사장이 사촌 동생인 HDC 회장의 압력을 단칼에 거절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상상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돌아가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 축구가 위기인데 울산HD만 살아남으면 되겠느냐’는 억지 논리를 갖다대면 이게 또 여론이 된다.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축구계에서 HD현대 최대주주가 HDC 회장보다 힘이 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감독 선임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론 내려질 것이라고 마음 놓아서는 안 된다. 

협회 위해 희생되는 K리그, 그리고 지도자들

한국 축구, 아니 정확히 말해 대한축구협회의 일부 수뇌부가 살아남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이 강요되고 있다. 특히 K리그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사실상 K리그는 협회의 5분 대기조이자 방패막이다. 협회는 K리그 감독 선임 여론이 좋지 않으면 ‘겸직’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또 내세울 것이다. 억지로 K리그 감독이 이 명분으로 대표팀에 앉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 감독이 또 외로운 싸움을 해야한다. 겸직은 국내에 거주하지 않고 캘리포니아에서 대표팀을 원격 조종했던 클린스만 감독 시절에 비해 아주 조금 나아질 뿐 협회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도 아니다. 한국 축구를 망치고 있는 인물들이 K리그 감독들에게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희생해 달라고 설득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2002년 월드컵 4강 주역의 주장이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진 순간 구원자로 등장했다는 스토리로 협회는 또 여론을 모을 수 있다. 다른 K리그 팀도 마찬가지지만 울산HD는 올 시즌을 열심히 준비했다. 홍명보 감독이 애지중지 불러 모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고 여기에 유럽 구단의 제안을 받은 설영우도 홍명보 감독의 설득 이후 일단은 팀 잔류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 팀의 감독이 사실상 거부권이 없는 대표팀 감독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게 과연 정상적인 한 나라 축구협회의 모습이 맞나 싶다. 이 상황에서 대안을 묻는다면 모르겠다. 이미 1년 전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부터 엉켜버린 실타래를 왜 다른 사람이 풀어야 하는지가 의문일 뿐이다. K리그를 이럴 때만 방패로 내세우지 말고 이 일을 자초한 이들이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 

나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앞장서서 홍명보 감독의 전술과 선수 기용에 대해 비판해 왔다. 그가 부족한 지도자라서가 아니다. 그 시기에 그런 방식으로 대표팀을 맡는 것도 동의할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모험수를 쓴 홍명보 감독의 선택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K리그 지도자들이 소방수로 대표팀에 가는 건 반대다. 멋지게 소속팀과 작별하며 박수를 받을 때 대표팀 감독으로 갈 자격이 충분한 이들이다. 또 한 번 협회가 위기를 틀어 막기 위해 이들을 방패로 내세우는 건 반대다. 홍명보 감독은 2014년이 아니라 몇 년 더 충분히 경험을 쌓은 뒤 좋은 시기에 대표팀을 맡았으면 2014년 월드컵에서의 완패도 피했을 것이고 지금보다 더 빨리 좋은 위치에 올랐을 인물이다. 시기와 과정이 잘못된 일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의 유력한 감독 후보군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의 유력한 감독 후보군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협회와 정몽규 회장은 K리그 뒤에 숨으면 안 된다

결국 협회가 여론을 틀어막기 위해 활용했던 국내 지도자들은 이후 만신창이가 됐다. 대표팀을 급하게 맡아서 불을 끈 뒤 경기력이 시들해지면 대표팀에서 물러나야 했고 재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을 떠난 뒤 지도자로는 아예 은퇴했다. 이후 3년이 지나서야 대구FC에서 행정 일을 시작했다. 지도자 인생을 걸고 소방수 역할을 했던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 놓으니 ‘신태용은 물러나고 히딩크가 와야한다’는 황당한 여론과도 마주했다. 그는 대표팀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지내다가 결국 동남아로 진출했다. 홍명보 감독은 한참을 돌고 돌아 다시 지도자로 성공시대를 열기 전까지는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국내 지도자들을 갈아 넣으면서 협회는 살아남았다. 

앞서 언급한 국내 지도자들은 다 훌륭한 감독들이고 이후에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만약 협회가 그 당시 이들을 방패막이로 세우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지금 더 괜찮은 감독이 돼 있을 것이다. 차근차근 성장 중인 지도자들을 급하게 끌어 써서 이후 지도자 공백기를 만들고 성장을 멈추게 했던 과거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게 화가 난다. 이걸 다 알면서도 또 이런 일을 꾸미는 협회는 거센 비판을 받아야 한다. 여러 번 반복됐던 실패가 또 뻔히 눈 앞에 보이는데 왜 또 이 아픔을 반복하려 하나. 이제 K리그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럴 때만 협회가 한국 축구를 위해 K리그에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은 비겁하게 K리그 뒤에 숨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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