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기자를 비롯한 스포츠니어스 기자들은 현재 태국에 체류 중이다. K리그 팀들의 전지훈련을 취재하기 위해 1월초부터 1월말까지 한국을 떠나 태국의 치앙마이와 방콕, 촌부리, 후아힌 등을 돌며 K리그 팀들을 만날 예정이다. 김현회 기자는 이 태국에서의 생활과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김현회의 타이기록’은 김현회 기자가 태국에 체류하는 동안 꾸준히 독자들에게 보고하는 기록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오늘 하루 만큼은 치앙마이FC 팬 ⓒ스포츠니어스
오늘 하루 만큼은 치앙마이FC 팬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는 지난 6일 태국 치앙마이에 왔다. 나와 조성룡, 김귀혁 등 세 명의 기자는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태국에 입국했다. 치앙마이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을 거쳐 귀국하는 날은 오는 1월 28일이다. 이 긴 기간 동안 수많은 변수와 난관, 실수들이 있을 것이고 몸 고생과 마음 고생하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체력적으로도 잘 버틸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딱 사흘 동안은 마음 편히 쉬고 일을 시작하자고 뜻을 같이했다. 

첫 일정은 오는 10일 광주FC 전지훈련장 방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6일 밤 치앙마이에 미리 도착해 사흘 동안의 휴가를 시작했다. 그런데 도착 이틀째 오전에 ‘축구는 잊고 며칠은 잘 먹고 잘 쉬자’던 우리의 뜻이 무너졌다. 태국 2부리그 치앙마이FC가 이날 홈 경기를 치른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한국에서 태국 2부리그 일정을 검색할 때는 없었던 경기였고 이 소식을 접한 뒤에 치앙마이FC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알아낼 수 없는 소식이었다. 이 경기가 있다고 알려준 건 다름아닌 치앙마이FC 소속 임창균이었다. 

우리는 지난 해 이맘때에도 치앙마이FC 홈 경기장을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영상 콘텐츠 욕심에 치앙마이FC 구단에 직접 연락을 해 취재증을 발급받았다. K리그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경기 후 치앙마이FC 감독 기자회견에 참석했고 선수들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때 우리는 치앙마이FC에 속한 임창균, 김보용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당시 치앙마이FC 경기장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도 좋게 남았다. 우리나라의 1990년대 축구장 같았다. 최신식 경기장과 시설은 아니었지만 하나 하나 정감이 가서 좋았다. 

우리는 당시 모든 취재가 끝난 뒤 한 번 더 치앙마이FC 경기장을 찾았다. 그때는 정말 일이 아닌 순수한 응원의 목적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오랜 만에 부잉을 하고 서포터즈 시절로 돌아갔다. 상대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상위권 팀과의 승부에서 짜릿한 후반 추가 시간 득점으로 치앙마이FC가 이긴 기억 뿐이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너무도 좋았고 치앙마이FC의 모든 게 멋졌다. 어느 팀을 대놓고 응원해 본 건 아마 20여년 전 고양국민은행 이후 처음이었다. 한국 선수 임창균과 김보용이 뛰는 치앙마이FC는 나에겐 꽤 익숙한 팀이 됐다. 

올해 치앙마이 전지훈련 취재를 앞두고도 당연히 치앙마이FC 홈 경기 일정부터 찾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경기는 찾을 수 없었다. 태국 2부리그가 휴식기에 돌입한 것이었다. 그런데 태국 도착 소식을 SNS에 올리자 임창균에게서 DM이 왔다. 그는 “오늘부터 다시 후반기가 시작됐다”고 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해도 잘 나오지 않는 정보를 임창균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다. 그리고는 수소문을 해 이날 오후 6시에 치앙마이FC가 홈에서 ‘어려운 이름의 팀’과 경기를 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당초 치앙마이 도착 후 사흘은 쉬기로 한 우리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맛집에 들렀다가 발 마사지를 받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2년 동안 세 번째 찾는 경기장이라 모든 게 익숙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치앙마이FC 경기에 매번 오는 현지 팬들과도 이제는 안면을 익혀 인사를 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나는 치앙마이의 모든 걸 사랑하고 특히나 치앙마이FC를 좋아한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이 도시가 좋고 내가 좋아하는 한국 선수가 뛰고 있으니 치앙마이FC를 응원한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치앙마이FC의 팬으로서 치앙마이유나이티드를 응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는 치앙마이FC를 ‘치엡’으로, 치앙마이유나이티드를 ‘치유’로 줄여서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은 지역 라이벌 팀인 ‘치유’를 ‘치유 놈들’이라고 불렀다. 

이날 경기에서 임창균은 선발로 출장했고 유병수는 엔트리에서 제외돼 있었다. 경기 전 따로 임창균을 만날 시간이 없어서 선수단 입장 때 그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K리그로 치자면 마사가 뛰는 대전 경기에 일본인이 와서 응원하는 모습일 것이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창균이’ 기 살리기를 위해 이름을 외치고 박수를 쳤다. 임창균도 부끄러워서 그만하라는 건지, 반가워서인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후 치앙마이FC는 ‘이름 모를 상대팀’을 상대로 경기를 압도했지만 유독 골 운이 없었다. 후반 임창균이 완벽한 기회에서 날린 슈팅은 골대를 강타했다. 

하프타임 때 조성룡은 화장실을 다녀와 화장실에서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조성룡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게 된 한 치앙마이FC 팬이 “김보용은 잘 지내느냐. 김보용을 경기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고 하자 조성룡이 “그는 지금 ‘아미’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보용은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K4리그 진주시민축구단에서 뛰면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치앙마이FC 팬은 “정말이냐”면서 놀라워 했단다.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외국인 선수가 자국으로 돌아가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면 나 같아도 놀랄 것 같다. 김귀혁은 그 사이 새로운 시즌 치앙마이FC 유니폼을 구입했다. 

결국 임창균은 후반 교체 아웃됐다. 골은 넣지 못했지만 역시나 ‘치엡의 세징야’다운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우리는 임창균이 그라운드를 나올 때 큰 박수를 보냈다. 임창균도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임창균은 우리 관중석 바로 앞에 앉아 남은 경기를 지켜봤다. “고생했어”라는 말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사이트를 뒤진 결과 상대팀에도 한국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등번호 20번 이상진이라는 선수였다. 그가 경기 투입을 준비했다. 우리가 아는 정보라고는 2000년생의 어린 선수이고 K4리그 여주시민축구단에서 뛰었던 적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한국 선수가 교체를 준비하자 우리는 “이상진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자 이상진은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축구를 하면서 가족과 지인이 아닌 이들이 자신을 응원한다는 건 처음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태국 2부리그 원정경기에서 한국 팬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는 건 상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교체가 잠시 지체되면서 우리는 이상진에게 한 번 더 응원을 보냈다. “이상진 잘해라.” K리그로 비유하자면 대전 마사를 응원하러 온 일본 팬이 상대팀인 대구FC에 케이타가 투입되는 걸 보고 ‘카이타도 감바레’를 외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임창균은 치앙마이FC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다 ⓒ스포츠니어스
임창균은 치앙마이FC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다 ⓒ스포츠니어스

그런데 이때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임창균이 뒤를 돌아왔다. 경기장에는 관중이 꽉 차지 않았고 임창균과의 거리도 멀지 않아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임창균이 단호하게 말했다. “형, 쟤 상대팀 애잖아. 그리고 여기는 치앙마이야 형.” 아차 싶었다. 여기는 치앙마이FC 일반 관중석인데 상대팀 선수 이름을 이렇게 연호하며 즐거워하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K리그에서 이 정도 응원 매너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상대팀에도 한국 선수가 나왔다고 선을 넘어버렸다. 예의 바르고 매너 좋은 임창균도 단호하게 말할 정도였으니 내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다. 

한국에서 일본인이 일반 관중석에 앉아 같은 국적이라고 상대팀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을 봤다면 나도 한 마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가 되고 나니 아무리 치앙마이FC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정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부끄러운 마음에 이후 치앙마이FC를 더 크게 응원했다. ‘우리 치앙마이FC’가 결국 두 골을 몰아치며 상대를 2-0으로 제압했다. 이후 임창균은 “와 줘서 고맙다”면서 우리한테 손을 흔들었다. 한편으론 임창균이 그저 돈을 받고 뛰는 ‘용병’이 아니라 치앙마이FC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선수라는 걸 느끼게 됐다. 돈만 받고 팀에 애정없이 자기 역할만 하고 돌아가는 외국인 선수도 많은데 임창균은 달랐다. 

부끄러운 나의 행동을 반성하면서 왜 임창균이 치앙마이FC에서 이렇게 사랑받는 줄 알게 됐다. 경기 후 임창균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너무 고생했으니 목요일 원정을 떠나기 전에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임창균과 치앙마이 어딘가에서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누군가는 동남아 2부리그에서 뛰는 걸 갈 팀이 없어 잠깐 경기 감각을 익히기 위해 수단 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마지못해 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임창균은 여기에 모든 걸 걸었다. 그리고 임창균은 이 도시를 너무 사랑하고 이 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를 통해 또 하나를 배우고 간다. 그리고 여긴 이제 경기장이 아니니 이 공간을 통해 말하고 싶다. 임창균도 파이팅, 어린 나이에 태국에서 도전하고 있는 이상진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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