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삼성 염기훈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수원삼성 염기훈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수원삼성 염기훈은 지난 6월부터 P급 지도자 자격증을 이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P급 지도자 자격증 이수 경쟁이 험난한 터라 태국으로 가 자격증 교육을 받고 있다. 이 교육은 A매치 휴식기를 이용해 한 번에 약 2주씩 이어진다. 8월에도 다녀왔고 11월에도 이 교육이 이어진다. 내년 2월에도 약 2주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P급 지도자 자격증 교육에 들어가면 P급을 딴 것으로 간주해 프로에서 감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현역 선수가 P급 지도자 자격증 교육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뒤 농담 삼아 말했다. “이러다 플레잉 감독이 탄생하는 거 아니야?”

이 이야기를 나눈 뒤 깔깔대며 웃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선수가 감독을 겸한다는 건 만화 슬램덩크에서 김수겸이나 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라이언 긱스도 감독대행이 잠시 팀을 맡은 적이 있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그런데 이 농담 삼아 한 일이 실제로 이뤄졌다. 수원삼성이 김병수 감독을 경질하고 염기훈 플레잉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한 것이다. 듣고도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아무리 남은 시즌이 7경기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 중요한 시기에 감독 경험이 전무한 이가, 그것도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수원삼성은 이를 현실화했다. 

수원삼성의 선택은 곳곳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선택이 대단히 늦거나 대단히 이르거나 대단히 잘못됐다. 선택이 늦었다는 건 이병근 감독에서 김병수 감독으로 넘어가던 시기의 이야기다. 수원삼성은 지난 시즌 가까스로 K리그1에 생존했다. FC안양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오현규의 그 골이 아니었더라면 올 시즌을 2부리그에서 보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에 드라마를 쓰긴 했지만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만들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지난 시즌 이병근 감독의 수원삼성은 사실상 실패였다. 그런데도 수원삼성은 이렇다 할 선수 보강도 없이 올 시즌을 이병근 감독에게 맡겼다. 

수원삼성 염기훈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수원삼성 염기훈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병근 감독과의 동행에 대한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시즌을 마무리한 뒤 수원삼성과 이병근 감독이 결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새로운 감독이 원하는 선수 보강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수원삼성은 이병근 감독과 동행을 이어나갔고 올 시즌 수원삼성은 개막 이후 줄곧 바닥을 쳤다. 그러다가 지난 4월 이병근 감독과 결별한 뒤 최성용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겼다. 이후 5월 김병수 감독을 선임했다. 개막 이후 석 달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김병수 감독은 최하위권의 팀을 맡아 어떻게든 성적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만날 때마다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끌어 올리기 위해 뇌과학 이야기를 했고 진 경기에서도 선수 칭찬을 했다. 

하지만 김병수 감독은 결국 부임 후 4개월 만에 팀을 떠났다. 경질이었다. 이병근 감독과 결별하는 시기가 늦어져 경쟁력을 잃었다. 김병수 감독과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올 시즌을 함께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이 결정은 타이밍상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생존왕’ 인천은 적절한 시기에 감독을 교체하며 시너지를 낸 경우가 많다. 정말 감독을 경질하고 그 ‘버프’를 받아야 할 시기에 결단을 내려 여러 번 위기에서 살아 남았다. 하지만 수원삼성은 감독 경질 시기가 타이밍상 전혀 맞지 않는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땐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기다려야 할 땐 기다리지 못했다. ‘생존왕’ 인천과 비교하면 감독 교체 타이밍에서 전혀 능숙하지 않았다. 

선택이 대단히 이르다는 건 염기훈 감독대행에 관한 이야기다. 사상 초유의 플레잉 감독이라는 농담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염기훈은 이제 막 P급 지도자 자격증 교육을 받고 있다. 수원삼성은 지금껏 ‘리얼블루’라는 이름 하에 수원삼성 출신을 감독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염기훈은 시기가 일러도 너무 이르다. 그나마 이전 ‘리얼블루’는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있기라도 하지 염기훈은 이제 막 감독 수업을 시작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아직 은퇴식도 치르지 않은 선수까지 감독으로 선임해 돌려막기에 들어간 건 악수라고 생각한다. 언젠간 그가 수원삼성 감독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게 2023년일 거라고는 상상해 보지도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염기훈은 수원삼성이 13년 동안 가꿔낸 보물이다. 이렇게 일찍 감독으로 소모되는 건 너무 아깝다. 

염기훈이라는 레전드를 수원삼성이 또 다시 방패막이로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염기훈이 빅버드에서 메가폰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시즌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고 응원해 달라”고 하면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원 팬은 없다. 그러면 수원삼성은 또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수원삼성이 이렇게 ‘리얼블루’에게 감독을 맡기며 방패 삼아 시간을 번 동안 팀은 서서히 망가졌다. ‘윤성효니까, 서정원이니까, 이병근이니까, 이임생이니까, 박건하니까’라며 기다리는 동안 팀은 투자도 줄였고 발전도 없었다. 그 ‘리얼블루’가 이제 1983년생의 선수에게까지 뻗어 내려간 건 전혀 정상적이지 않다. 이렇게 ‘리얼블루’ 당겨쓰기가 진행된다면 다음 ‘리얼블루’는 누가 해야할까. 

수원삼성 염기훈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수원삼성 염기훈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염기훈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수원삼성에서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이 전설적인 선수는 이제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멋진 은퇴식을 준비해야 하는 인물이다. 전북현대에서 이동국은 팀의 우승과 함께 은퇴식을 치러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만들었다. 박주영도 울산현대에서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염기훈도 수원삼성에서 충분히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다. 그런데 염기훈은 팀의 강등과 함께 현역 은퇴를 해야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나는 그가 수원삼성의 멋진 날 은퇴하는 모습을 늘 상상했지만 염기훈의 현역 생활 마지막은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차라리 그가 지난 시즌 팀의 극적인 생존과 함께 은퇴식을 치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염기훈은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마다 맨 앞에 서서 사과를 했던 선수다. 그는 최근 수년 간 팀 성적이 좋지 않고 팀이 경기에서 패할 때마다 믹스드존에서 십수 명의 기자들을 매번 마주했다. 팀의 상징적인 선수여서 그날 경기 활약과 무관하게 매번 언론 앞에 섰고 매번 고개 숙여 팬들에게 사과했다. 염기훈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는 매번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언론 입장에서도 염기훈의 사과가 필요한 상황이 아님에도 그가 수원삼성의 상징적인 선수니까 매번 그를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염기훈 뒤에 숨은(?) 이들을 보며 참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단 대표나 단장, 프런트, 감독이 할 일을 염기훈이 했다. 염기훈은 늘 누군가의 방패였다. 

그런 염기훈이 이제는 수원삼성 최악의 순간에 다시 전면에 나섰다. 사상 초유의 플레잉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벤치에 앉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염기훈은 이 위기의 상황에서 플레잉 감독직을 마다하지 않았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이 어려운 자리에 대해 승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나는 염기훈이 이 상황에서 플레잉 감독직을 수락했다는 멋진 책임감이 아니라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든 이들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행복한 현역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야 할 선수를 이렇게 전면에 내세워 수원삼성이 또 다시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박수를 받으며 선수 생활을 정리해야 할 염기훈이 벌써 감독이 돼 이 혼돈의 순간 모든 책임을 떠안을 생각을 하니 그가 참 안쓰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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