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00년대 K리그는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다. K리그 중계는 KBO리그에 철저히 밀렸고 언론에서의 보도 순위 역시 K리그가 KBO리그보다 뒷전이었다. KBO리그를 찾은 5천 관중은 구름 관중으로 묘사됐고 K리그를 찾은 5천 관중은 썰렁한 분위기로 설명됐다. K리그는 철저한 마이너 스포츠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가 금메달을 따고 축구는 조별예선 탈락했을 때부터 “축구장에 물 채워라”라는 말이 떠돌았다. 

할 말이 없는 조롱이었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수치스러운 말이었다. 이후부터는 한국 축구를 조롱하는 이들과 수 없이 싸웠다. 해외축구 팀이 방한해 주객전도된 경기가 열리면 한국 축구의 자주성을 외쳤고 국내에서 중계가 이뤄지지 않아 해외 중계 방송을 찾아봐야 하는 ‘웃픈’ 일이 벌어졌을 때도 축구팬들은 이 일에 안타까워하며 ‘언젠가 찾아올 봄날’을 기다렸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축구가 외면받던 현실을 경험한 이들 사이에는 ‘언젠간 축구 세상이 온다’는 마치 독립투사 같은 비장함과 간절함이 있었다. 

역사에 남을 흥행, 2023년 K리그

코로나19 이전에 한국 축구는 서서히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관중이 경기장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지만 2023년부터는 정말 완벽한 K리그의 봄이 찾아왔다. 이제는 K리그1 경기장에서 1만 관중은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 됐다. 각자 스토리를 쌓은 2부리그 팀들도 매 경기 수천 명이 경기장을 찾는다. 확실히 축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게 느껴진다. 야구만 보던 내 친구는 여자친구와 델브리지, 제르소 유니폼을 입고 매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간다. 주변에서는 K리그 티켓 예매에 대해 묻는 경우도 많다. 

치열한 순위 경쟁에 각 구단마다 스토리가 쌓였고 여기에 스타 선수들도 등장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몇 차례 흥행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헛발질을 했던 한국 축구는 그 사이 많이 발전했다. 이제는 제법 시스템도 갖췄다. 유소년 축구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만든 건 앞으로도 한국 축구가 희망적일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는 K리그 경기장을 갈 때면 교통체증과 주차 걱정을 해야 할 정도다. 2006년부터 이 일을 해왔는데 정말 이런 날이 올까 싶었다. 마치 언젠가 찾아올 독립을 기다렸다가 광복을 맞은 기분이랄까.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수년 전 칼럼을 통해 ‘한국 축구가 망하는 법’이라는 오답노트를 쓴 적이 있다. 한국 축구가 몇 번의 흥행 기점에서 보란 듯이 꼴아 박은(?) 기억을 정리한 칼럼이었다. 관중이 모이면 심판이 중요한 순간에 오심을 저지르고 여기에 선수단은 마치 깡패처럼 그라운드에서 항의를 하다가 난투극을 벌이고 선수들은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고 팬들은 그라운드 밖에서 서로 충돌하면 K리그가 막하기 딱 좋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그대로 축구 죽이기(?)를 좋아하는 언론에 그대로 보도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K리그는 어렵게 잡은 흥행 기회를 놓친 적이 꽤 된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발전하는 K리그, 하지만 훼방 놓는 사람들

올 시즌에는 정말 다르다. 이게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도 바탕이 돼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한두 국가대항전으로 일어난 붐이 아니기 때문에 더 놀랍고 긍정적이다.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게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이다. 매번 KBO리그 중계에 밀려 중계 영상 찾아보기도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연맹이 자체적인 방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더 이상 중계를 찾아보기 어려워서 K리그를 못 보겠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2010년 KBS <비바! K리그> 고정 출연 당시 담당PD는 해당 라운드 득점 장면이라도 모두 찍기 위해 경기장에 카메라를 한 대씩 배치했고 그래도 못 찍은 골 장면은 지역 방송사에 문의해야 했다. 그래도 못 구하는 골 장면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중계에 대한 투정은 나오지 않는다. 중계 수준에 대한 불만은 나올지언정 중계가 없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됐다. 팬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하고 연맹도 기득권 세력과 싸워가며 이뤄낸 승강제도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해당 팬들에게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영원한 강자’였던 FC서울과 수원삼성도 강등 위기를 호되게 겪으며 제3자는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여기에 만년 하위권이었던 ‘대대강광’ 중 강원FC를 빼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으로 발전했다. 언제까지나 이동국이 최고의 스타였던 리그는 이제 새로운 스타들이 연이어 탄생하고 있다. 호재도 이런 호재가 없다. 

그런데 이제 막 흥행에 성공하려고 하니 온갖 악재가 터지고 있다. 어떻게 찾아온 K리그 인기인데 한숨부터 나온다. 에이전트와 구단 고위층이 유착해 뒷돈을 챙긴 게 발각이 됐고 선수들은 잊을만하면 사회면에 등장한다. 오심의 정황이 뚜렷한 판정에 대해 심판진은 정심이라며 항의한 이들에게 징계를 내리고 있다. 그나마 팬들끼리 충돌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로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한창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노를 저어야 하는 이들이 노를 내팽개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K리그 흥행에 간절했는데 막상 흥행이 되기 시작하니 그 시절 생각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회면에 나오는 선수들, 실추되는 K리그 이미지

특히나 연이어 터진 선수들의 음주운전 사건은 너무나도 실망스럽다. 이제 팬들의 인기도 얻고 돈도 버니까 배가 부른 모양이다. 그 동안 KBO리그에서 선수들이 여러 범죄에 연루된 바 있다. 나는 그에 비하면 K리그 선수들은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연이어 터지는 K리그 선수들의 음주사건을 보면 그 동안 야구선수들에 비해 축구선수들이 인성적으로 더 나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꾸짖게 된다. 사생활 문제와 범죄에는 종목을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 여기에 축구계에는 최근 사설 토토에 빠져 계약해지가 발표된 인물도 있다. 선수들 수십 명은 현재 불법 홀덤 도박 혐의로 검찰 수사 리스트에 올라있다. 

이게 어떻게 얻은 인기인줄 알아야 한다. K리그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온갖 조롱을 당하고 K리그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돈도 못 벌면서 끈끈하게 버텨온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마치 자기만 잘난 듯, 자기 욕심만 채우려다가 꼬꾸라지는 선수들이 많다. 혼자만 파멸을 맞으면 상관할 바 아닌데 그들은 K리그 전체에 재를 뿌리고 있다. 이제 조금 잘 나가기 시작해도 이 정도 사건사고가 터지는데 K리그가 한국 최고 프로스포츠가 된다면 그땐 얼마나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까. 이 인기가 자신들이 잘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건방 떨면 안 된다. K리그가 저 바닥에 있을 때부터 일으켜 세워온 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야 한다. 

심판 문제는 어떤가. 올 시즌 벌써 여러 차례 판정 문제가 불거졌다. 그런데 심판위원장은 ‘언더스탠딩 풋볼’을 이야기한다. 규정과 원칙이 있는데 그 위에 존중과 이해를 요구한다. 존중과 이해는 상대방 측에서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판 논란이 있을 때마다 심판 쪽에서 ‘언더스탠딩 풋볼’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심판은 규정과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언더스탠딩 풋볼’ 같은 융통성을 요구하면 안 된다. 이게 유행어처럼 번지니까 우리 조성룡 기자는 지각을 하면 ‘언더스탠딩 출근’을 외친다. 지금까지야 판정 논란인 팀이 예의있게 대응해서 그렇지 현장에서 거세게 항의하고 선수단 철수 시키는 등 예전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K리그 흥행에 찬물을 뿌리는 거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팀 입단 비리, 부모는 피해자인가? 공범인가?

에이전트와 구단 고위층의 문제도 결국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프로구단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혐의가 있다면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왜 그들에게 돈을 준 학부모들이 ‘피해자’로 묘사되어야 하나.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자기 아들을 프로팀에 보내겠다면서 에이전트와 구단 고위층에 금품을 제공한 공범이다. 누가 칼 들고 돈 내놓으라고 협박한 게 아니다. 그런데 금품을 제공한 학부모들은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왜?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금품 제공자와 금품을 받은 이들의 공소시효는 다르다.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어도 이렇게 학원 스포츠 질서를 어지럽히는 학부모들도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해당 부모가 자신의 아들이 에이전트의 소개로 프로에 입단했다가 숙소에서 술, 담배를 하고 체중 관리도 되지 않아 결국 방출된 뒤 에이전트를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자기 아들이 프로에서 성공가도를 달렸다면 숨기고 있었을 일이다. 처음 프로에 입단할 때 공범 노릇을 하다가 프로에서 태도 불량으로 아들이 퇴출 당하니까 피해자로 변신했다. 이런 부모가 그래도 피해자인가. 학원 스포츠 질서를 어지럽히는 명백한 가해자다. 실력이 없는데 돈이 있는 아이가 프로에 가면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는 아이는 그 자리를 빼앗긴다. 

이제 승부조작은 그 제안만 받아도 거절하고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만한 무시무시한 사안이 됐다. 프로 입단 비리도 같은 방향으로 가야한다. 구단이나 에이전트가 금품을 요구할 경우 곧바로 이를 신고하고 알리는 게 건강한 프로스포츠가 되는 길이다. 프로에 갈만한 실력도 없는 아들에게 잠깐의 프로 이력을 달게 해 나중에 ‘선출’이었다고 홍보하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수천만 원을 찔러주는 일은 K리그를 병 들게 한다. 자기 아들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주의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이면 미래에도 이런 일은 이어진다. 

비를 맞으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대구FC 홍정운의 모습. 이런 선수들의 남 모를 행동 하나하나 덕분에 지금의 K리그가 있다.
비를 맞으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대구FC 홍정운의 모습. 이런 선수들의 남 모를 행동 하나하나 덕분에 지금의 K리그가 있다.

어떻게 찾은 K리그 인기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

올 시즌 K리그가 너무 잘 되고 있어서 행복하다. 텅 빈 경기장에서 오심이 난무하고 여기에 선수단이 욕설을 내뱉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이제는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런데 흥행의 조심이 보이니 이 흥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다. 특히나 사생활 문제를 일으키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만든 K리그 인기인데 자기 잘났다고 행동하다가 K리그 전체를 욕 먹이는 것 같아 더 화가 난다. 폭우를 맞으며 팬들 한 명 한 명에게 사인을 해주고 인사를 하던 선수, 은퇴식 때 수백 명 뿐인 팬들 앞에서 큰 절을 한 선수, 승부조작으로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 눈물을 흘리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뛴 선수들이 어렵게 일으켜 세운 게 바로 K리그다. 이런 K리그를 음주운전과 도박, 사설 토토를 하면서 먹칠하는 이들은 사라졌으면 한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