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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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전주=김현회 기자] 죽은 잼버리를 K팝이 살릴 수 있을까. 더군다나 프로리그를 파행으로 치르면서까지 죽은 잼버리를 살려야 할까.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논란이 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결국 축구가 희생양이 됐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K팝 슈퍼 라이브'를 12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연다고 발표했다. 준비 부족에 폭염까지 겹치면서 잼버리에 대한 원성이 커졌고 잼버리를 조기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 상황에서 조직위 측은 논란을 ‘한류’와 ‘K팝’으로 잠재우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사를 급조했다. 

이미 미국 스카우트 대표단 1,500여 명은 6일 오전 야영지를 떠났고 4천400여명의 청소년과 인솔자를 보낸 영국 대표단도 야영장을 떠난 상황이다. 이번 잼버리는 국가 차원의 망신이자 국격(?)을 떨어트리는 이벤트로 전락한 상황이다. 급하게 기업 등이 물품 등을 지원학 있다. 책임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결국 중앙 정부가 수습하는 모양새다. 이번 잼버리 콘서트는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지목한 뒤 통보했다. 5일 저녁 처음 전북 구단에 소식이 전해진 뒤 6일 오후 2시 ‘전주성을 빼달라’는 통보가 전해졌다. 

박보균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6일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기됐던 잼버리 K-pop 공연을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서 대략 50여분 정도 거리에 있고 무엇보다 안전관리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관리가 잘 되는 곳"이라며 "전북도와 전북도민 분들의 열정이 신속하게 이어질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행사를 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전주월드컵경기장을 놓고 고민한 끝에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선택한 뒤 통보했다. 

전북현대는 전혀 준비가 대 있지 않다. 전북현대는 오는 12일 저녁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삼성과 홈 경기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11일 잼버리 콘서트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게 되면서 무대 철거 등의 일정으로 부득이하게 홈 경기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9일 열리기도 한 하나원큐 FA컵 4강 인천과의 경기도 홈에서 치를 수 없게 됐다. 전북현대는 5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12일 잼버리 콘서트가 열릴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일단 예매를 중단시켰다. 전북은 당장 9일 FA컵과 12일 K리그 경기를 치를 장소를 섭외해야 한다.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됐다. 국가에서 찍어 누른 행사라 정부에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볼 법한 상식 밖의 일이 2023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천전을 앞두고 만난 전북현대 관계자는 “너무 당황스럽고 힘들다”면서도 “불만은 많은데 불만도 공개적으로 내세울 수가 없다”고 전했다. 나라 망신 중인 행사를 수습하기 위해서 ‘치트키’인 K팝을 꺼내 들었고 그러면서 이미 약속된 프로경기를 팽했다. 혹시라도 추후 불이익을 우려한 전북현대는 코멘트도 아끼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까지 직접 전북현대에 연락을 해 양해를 구하고 있으니 전북이 거부할 권리(?)는 없다. 

전북현대는 ‘통보’를 받았다. 여기에 원래는 6일 열리기로 한 공연이 12일로 미뤄지면서 K팝 공연에 나설 가수들로 새롭게 섭외해야 한다. 6일 공연이 전격 취소되는 것도 기획사에 ‘통보’였다. 12일에 열릴 공연도 사실상 국격(?)에 맞는 행사를 위해 일방적으로 출연자를 섭외해야 한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행사에 거부권은 사실상 없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항의를 하려면 ‘용산’에 해야하는데 그럴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결정은 기본이지만 나라 망신 앞에서는 찍어 누르고 통보를 한다. 아무도 거부하지 못하고 피해 구단도 눈치를 본다. 

전북현대는 FA컵 일정 변경과 K리그 장소 변경 등을 논의 중이다. 그런데 상대팀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상대팀 입장도 복잡하다. 6일에 이어 9일까지 전주성에서 2연전을 준비한 인천은 이미 두 경기에 대비한 선수단이 전주에 왔다. 6일 K리그 경기와 9일 FA컵에서 선수단 변화를 주기 위해 선수단을 끌고 왔다. 원래는 18명의 선수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만 인천은 20명의 선수가 왔다. FA컵 4강전에서는 변화를 주겠다는 의도였다. 지난 5일 전주에 와 11일 경기 때까지 묵는 장기간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FA컵 4강은 전주에서 여는 게 불가능해졌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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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선수단은 6일 경기 직전 9일 경기가 전주에서 열릴 수 없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 인천 선수는 “우리도 당황스럽다”면서 “당장 오늘 경기가 끝나면 전주에 더 남아 있어야 하는지 인천으로 올라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인천은 규정상 전북 홈 경기가 어려우면 인천에서 경기를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도 맞다. 12일 수원삼성전도 파행이 불가피하다. 전북도 피해자인데 그렇다고 대놓고 피해를 주장할 수도 없고 상대팀 입장을 들어보면 그들도 피해자다. FA컵 4강이라는 중요한 경기를 모두가 대책 없이 기다려야 한다. 당장 사흘 뒤 경기인데 누구도 어디에서 언제 경기를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인천 선수단은 6일 밤 전주에서 묵은 뒤 FA컵 4강 장소가 최종 결정되면 7일 이동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망신을 당한 국제 행사 수습을 위해 이미 수 많은 팬들과 약속된 공식 경기는 갈 곳을 잃게 됐다. 전북은 다가올 두 경기를 홈에서 열지 못하면 아무리 못해도 1만 5천여 명의 관중 수익이 사라진다. 금전적으로 따져도 수억 원이다. 여기에 혹여라도 중립 지역에서 경기를 치르면 그 비용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연간회원권 소시자에게는 환불 등의 보상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공연 당일 전북현대 홈경기가 예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구장으로 옮겨 경기를 하고 경기장을 내준 구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상황을 따져보면 그 누구도 경기장을 내주려고 내주지 않았다. 

이날 인천과의 K리그 경기장에는 ‘죽은 잼버리에 쫓겨나는 축구’라는 항의성 걸개가 내걸렸다. 또한 ‘관영씨! 협조? 협박으로 조짐?’이라는 메시지도 걸렸다. 대승적 차원에도 그 선이 있다. 프로축구가 정착되지 못하고 연고지 의식이 부족했던 19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준비 부족으로 지탄을 받는 국제 행사를 K팝으로 만회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전세계에 더 큰 망신이다. 여기에 이미 약속된 프로스포츠 경기장까지 내줘야 한다는 건 정말 더 창피한 일이다. 죽은 잼버리를 인위적이고 억지스러운 행사로 살릴 수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볼 법한 상식 밖의 일이 2023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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