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겸(오른쪽)은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는 K리그 팬이다. 그래서 반갑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지난 1일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인더비'가 펼쳐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도겸과 심석희가 K리그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김도겸은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의 열렬한 팬임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 적이 있었죠. 게다가 김도겸은 심석희에게도 속된말로 '영업'을 하며 FC서울을 전도하고 있다고 했는데 결국 그가 심석희를 데려왔습니다. FC서울은 두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경기 전 시축 행사에 초대했고 둘은 기쁜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심석희는 그녀의 긴 다리로 훌륭한 슈팅을 날렸고 김도겸은 시축을 하랬더니 실축을 하더군요. 김도겸은 "시축 전에 못 넣으면 머리를 감싸 쥐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안 들어가더라고요"라면서 웃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기쁨과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그야말로 '성공한 덕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끝나고 박주영 선수랑 사진도 찍을 거예요"라면서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시축 행사가 끝나자 FC서울 수호신들은 김도겸과 심석희의 이름을 외치며 호응해줬습니다. 그들도 수호신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줬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가 그들과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사실이 기뻤던 모양입니다. 시축자의 이름이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느낌은 묘하더군요. 그만큼 팬들에게나 김도겸, 심석희에게나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김도겸과 심석희는 관중석에 올라와서도 매우 바빴습니다. 축구도 봐야 했고 팬들의 사인 공세와 사진 요청에도 응해줬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게 마냥 좋았던 모양입니다. 팬들에게도 계속 웃으면서 친절한 모습을 보였고 서울이 좋은 장면을 만들어낼 때마다 팬들과 함께 환호했습니다.

심석희가 통로 쪽에 앉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메달리스트인 그녀에게 더 많은 사인 공세와 사진 촬영 요청이 오더군요. 이 부분에서 김도겸의 넉살이 빛을 발했습니다. 김도겸은 "석희 팬 사인회에 온 것 같아요"라고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더니 "저만 있으면 못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석희가 와야 더 많은 사람이 경기장에 올 거 같았어요. 잘 데리고 온 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K리그 사랑이 돋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팬들은 김도겸에게도 먼저 다가와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을 하곤 했습니다.

심석희 사인회에 참여한 지인 김도겸 씨 ⓒ 스포츠니어스

두 선수는 후반전이 시작되자 북측으로 이동해 응원 열기도 함께 체험했습니다. 다시 W석으로 돌아온 심석희는 전반전 때보다 더 축구에 빠져든 모습이었습니다. 인천의 슈팅이 골대를 맞출 때 크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고 서울이 공을 잡으면 "가즈아"를 외치곤 했습니다. 가끔 경기 흐름이 멈추면 김도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김도겸은 또 신나서 설명해주곤 했죠. 심석희는 "쇼트트랙보다 어려운 거 같아요"라면서도 또 눈빛을 반짝이며 축구를 지켜봤습니다. 인천의 부노자를 향해 "스케이트 밥 데용 코치 닮은 거 같아요"라며 나름의 관전평도 내놨습니다.

서울과 인천의 '경인더비'는 에반드로의 골에 이어 후반 막판 송시우의 동점골로 1-1로 마무리됐습니다. 심석희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느라 송시우의 골 장면을 놓쳐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심석희는 경기를 마치고 "N석? 거기 가서 팬들과 같이 뛰고 응원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머리도 다 망가졌네요"라면서 직관 첫 느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 결과를 떠나서 선수분들 진짜 다 너무 멋있고 너무 감동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축구 경기는 매주 있다는 말에 "진짜요? 선발전 끝나고 또 올 거 같아요"라면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두 선수는 박주영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축구장 나들이를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김도겸은 박주영을 만나기 전에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는 "보통 이런 경기면 선수들 분위기가 어때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이기고 있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뒀으니 아쉬움이 클 것"이라고 얘기하니 "그렇겠죠?"라면서 조심스러워했습니다. 김도겸은 그렇게 좋아하던 박주영을 만났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감정 표현을 최대한 아꼈습니다. 심석희는 "직접 보니 더 멋지시네요"라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었습니다.

첫 느낌과 '성덕' 사이

오랜 시간 서울을 지켜본 김도겸의 흥분과 새롭게 축구장을 체험한 심석희의 흥분은 조금 다르면서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축구장을 찾은 두 국가 대표에게 배울 점이 많더군요. 김도겸은 축구 관전으로 운동 스트레스를 날렸고 국가대표가 되자 동료까지 끌어들였습니다. 오랜 시간 서울 축구를 봐온 그는 서울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면서도 응원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열정은 결국 새로운 축구 팬을 만들었죠. 비단 심석희뿐만 아니라 김도겸의 팬들까지 축구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성덕' 김도겸은 자신의 방법으로 K리그와 FC서울을 알렸습니다. 성적과 관계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울고 웃고 흥분하고 슬퍼하는 체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박주영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었으니 그에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 겁니다.

한편 심석희의 흥분은 초심을 일깨웠습니다. 처음 축구 경기장을 찾았던 그 날 느꼈던 감정이 생각나더군요. 눈 앞에 펼쳐진 축구장, 경기장의 냄새, 그리고 그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기억납니다. 나중엔 일상처럼 축구장을 찾았고 처음 느꼈던 흥분은 조금씩 가라앉았던 것 같습니다. 웃었던 기억도 많은데 속상했던 기억이 더 깊게 남아 지인들에게 하소연도 많이 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는 골 좀 못 봤다고 징징거리기도 했죠. 그런데 처음 축구장을 찾은 심석희의 눈빛을 보니 많이 부끄럽더군요. 심석희를 보면서 속으로 '나도 처음엔 저렇게 축구를 봤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일이야 지금도 두근거리지만 솔직히 축구장을 찾는 일이 두근거리진 않았거든요. 이젠 좀 의식적으로라도 기대감을 품고 축구장으로 향해야겠습니다.

어쨌든 두 선수는 한마음으로 축구를 즐겼습니다. 심석희는 "TV로 보던 것과 또 다르네요"라고 했습니다. 김도겸은 "역시 직관은 사랑입니다"라면서 만족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2002년 힙합 가수 바스코와 볼트릭스는 '첫 느낌'이라는 명곡을 냅니다. '첫 느낌이란 건 아직 순수하단 것. 두 번째 느낌이란 건 여유로워지는 것. 세 번째 느낌이란 건 다시 처음의 관심, 사랑이 그리운 거'라고 합니다. 초심을 생각할 때마다 이 가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심석희가 느낀 첫 느낌, 그리고 김도겸이 느낀 세 번째 느낌 사이 두 번째 느낌으로 적당히 묻어가면서 이 칼럼을 썼습니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