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지난 시즌 강등의 불명예를 썼던 제주유나이티드는 올 시즌 내내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한 시즌 만에 K리그1 승격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제주의 승격에는 많은 선수들이 공헌을 세웠다. 주장 이창민과 김영욱,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정운, 주전 수문장 오승훈 등 각 포지션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선수들이 제 역할을 다하며 제주는 승격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선수의 활약도 빛났다. 바로 프로 2년 차 미드필더 이동률이다.

제주 유소년팀 출신의 이동률은 프로 첫 시즌이었던 2019년 K리그1 다섯 경기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2년 차인 올해에는 리그 14경기에 출전해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꽃을 피웠다. 제주가 위기에 처했던 중요한 순간, 이동률은 천금 같은 공격 포인트들을 올리며 제주의 희망이 됐다. 이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올 시즌 K리그 2 영플레이어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한 해를 보냈음에도 이동률은 덤덤한 모습이었다. 이동률은 24일 오후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시즌 종료 후의 근황을 전했다.

프로 첫 시즌에 겪은 강등이라는 충격

"시즌이 끝났는데 딱히 지금 하고 있는 게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밖에 돌아다니지를 못해서 집에서 쉬고만 있다. 11월 12일에 서울에 있는 집으로 올라왔는데 못 봤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지내는 중이다. '런닝맨'과 '신서유기' 등을 보고 있다. 원래 집 밖에를 잘 돌아다니지 않는 '집돌이'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는 제주도에서 우승 축하연이 열려서 축하연에 참석했다. 축하연 분위기가 좋았다. 한 시즌 동안의 영상들을 보고 대표님이 한마디를 하시는 자리였다."

제주로선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이었다.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제주가 강등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많았다. 프로 첫 시즌에 강등이라는 결과를 마주해야 했던 이동률 역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에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유스 때 봤던 제주는 이런 팀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프로에 입단한 첫 시즌에 팀이 강등됐다."

"마음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로서 눈치가 많이 보였다. 하지만 올해가 되고 나서는 다들 '제대로 마음을 잡고 해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나도 올해는 눈치를 보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남기일 감독의 축구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과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는 남기일 감독의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이동률은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남기일 감독으로부터 적지 않게 꾸지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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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당근보다는 채찍 더 가하는 남기일 감독

"동계훈련 때는 내가 수비적으로 부족한 게 많았기 때문에 감독님께서 일부러 내게 강하게 말씀을 하셨다. 지금은 조금 좋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수비적인 부분이나 압박 타이밍이 좋지 않아 감독님이 내게 말씀을 많이 하셨다. 평소에도 냉정하게 말씀을 해주시는 편이다. 칭찬을 많이 하시지는 않는다.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플레이나 내 스피드를 살리는 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신다."

이렇듯 당근보다는 주로 채찍을 많이 주는 남기일 감독이기에 이동률에게 여전히 남기일 감독은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남기일 감독이 항상 무섭게만 선수들을 대하는 건 아니다. 활력이 필요한 타이밍에선 직접 선수들 품으로 들어가 훈련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 "아직도 감독님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감독님이 선수들과 함께 공 돌리기 훈련을 하실 때는 분위기를 재밌게 해주신다. 감독님이 그때는 많이 웃으시는 편이다."

"감독님의 실력이 아직 살아있으시다. 우리 팀은 공 돌리기 훈련을 할 때 벌칙이 다른 선수들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는 건데 감독님은 기프티콘을 보낼 줄 모르셔서 벌칙에 걸리면 기프티콘 대신 현금으로 주신다. 그런데 감독님이 술래에 제일 안 걸린다. 술래로 들어와야 하는 상황인데 일부러 술래로 잘 안 들어오시는 경우도 있으시다. 보통은 감독님이 술래에 걸려도 우기신다. 대신 다른 선수들이 술래로 들어온다."

"축구하기엔 제주도가 딱 좋다"는 제주 유스 출신 이동률

서울 토박이인 이동률은 서울에 위치한 세일중학교를 졸업하고 제주 U-18팀에 입단하며 제주도로 넘어왔다. 이후엔 제주시에 위치한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병행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올해가 제주살이 5년 차고 내년엔 6년 차가 된다. 집을 떠나있긴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숙소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집이 멀다고 해서 고등학생 때 제주로 오는 게 꺼려지진 않았다. 당시에 제주에서 제의가 가장 빨리 오기도 했다."

"방통고등학교에 다녔었는데 2주에 한 번 정도 학교를 갔다 오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일과도 지금과 비슷했다. 백승우 선수와 (서)진수가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생활했던 선수들이다. 나는 말이 별로 없는데 진수는 그래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진수 뿐 아니라 어린 선수들과 두루두루 잘 지낸다. 평소에 어린 선수들과 PC방에 가서 총 게임이나 '롤'을 한다.

한창 젊은 나이에 숙소에만 갇혀 생활을 하는 게 어린 선수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제주 선수들의 숙소가 있는 제주 클럽하우스 주변에는 즐길 거리가 많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동률에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숙소 생활이 지루하지 않느냐?'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나는 이 생활에 적응이 됐다. 제주가 축구 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주변에 딱히 놀 곳도 없고 운동장도 숙소 바로 앞에 있다. 숙소에서 잘 안 나간다. 가끔 게임하러 PC방에 가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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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생활 5년차 이동률의 제주 적응기

"'제주도가 답답하다'고 말씀하시는 형들도 있는데 나는 제주도와 잘 맞는 것 같다. 원래 시끌벅적한 것보다는 평온한 걸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해서 직접 운전을 해서 제주도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다니기도 한다. 혼자 차를 끌고 성산이나 애월 쪽을 갔다가 숙소에 와서 다시 잤다. 친구들과 같이 가도 좋은데 애들은 '게임 할 거야'라고 하더라."

하지만 제주 생활 5년 차 이동률이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도 있다. 바로 비행기 탑승이다. "원래 흔들림 때문에 비행기 타는 걸 정말 싫어한다. 제주에 온 이후에 비행기를 많이 타봤지만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한 번은 원정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번개를 네 번이나 맞은 적이 있었다. 정말 많이 흔들리더라. 무서웠다. 승무원들도 '번개를 네 번이나 맞아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다시 올 시즌으로 흘렀다. 올해 이동률은 K리그2 영플레이어상 후보에 오르며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올 시즌 초반 이동률은 부상을 당하며 한동안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개막 후 1주일 정도 있다가 부상을 당해 시즌 초반에는 근육이 좋지 않았다. 2라운드 로빈 때 있었던 대전과 원정 경기에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다치지 않았으면 초반에 기회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지금은 잘 됐으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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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좌절, 2020년의 성공

야심차게 동계훈련을 준비하고 시즌 개막만을 기다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을 당하며 슬럼프에 휩싸일 법도 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좀처럼 받지 않는 성격 탓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내 성격이 쿨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원래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또 축구장 밖으로 나오면 축구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지면 잠을 못 잔다. 그래서 웬만하면 축구 생각을 안 한다. 책을 읽거나 숙소에 있는 노래방을 가는 정도가 내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나는 진짜 숙소에만 있는다."

쿨한 그의 성격은 2019 U-20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하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동률은 지난해 여름 있었던 2019 U-20 월드컵 대비 국내 소집 최종 훈련 명단에 포함됐었다. 하지만 최종 엔트리에서는 탈락하며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탈락이 아쉽지 않았다. 원래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다. 당시에 몸이 많이 좋지 않았었다. 대표팀 소집 이전까지 부상으로 두 달을 쉬었기 때문에 최종 훈련에 소집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었다. 그저 소집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제 시선은 그의 영플레이어상 수상 여부에 쏠린다. 그는 수상을 두고 이상민(서울이랜드), 하승운(전남), 최건주(안산) 등과 경합을 펼친다. 모든 투표는 이미 마무리된 상태로 수상 결과는 오는 30일 오전 열리는 시상식에서 공개된다. "형들이 '너 말고 영플레이어상 받을 사람이 있냐'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 영플레이어상을 받은 적이 있는 현범이 형은 내게 따로 조언을 해주셨다. 감독님은 '그거 받아서 뭐하게?'라고 농담을 하시더라."

"솔직히 영플레이어상은 제가 탈 것 같아요"

팀 성적으로 보나 개인 기록으로 보나 수상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인만큼 이동률은 벌써부터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본인이 상 탈 것 같으세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한 그는 이내 보다 더 솔직한 대답을 전했다. "영플레이어 후보에 내 이름이 있을 때 신기하긴 했지만 후보에 오를 줄은 알고 있었다. 공격 포인트나 임팩트에서 자신이 있다. 수상 소감도 준비 중이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한 그의 세심함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정장이다. "어차피 필요할 것 같아서 정장을 사뒀다. 12월부터 형들의 결혼식이 있기 때문이다. (안)현범이 형 같은 경우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세 곳으로 결혼식장을 나눠서 한다고 하더라. 작년에는 여행을 가느라 형들 결혼식에 못 갓는데 이번에는 갈 생각이다. 팀 동료들이 축의금 내는 액수가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많이 내지는 않더라. 어쨌든 겸사겸사해서 정장을 맞췄다."

전쟁 같았던 한 시즌을 끝낸 이동률은 이렇듯 시상식과 동료들의 결혼식 등에 참여하며 바쁘게 비시즌을 보낼 예정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마냥 쉴 수는 없다. 동계훈련을 가기 전까지 어느 정도의 몸을 만들어놔야만 새 시즌 준비도 착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재유행이 심각해지며 상황이 난감하게 됐다. "12월 29일까지 휴가라 아직까지는 쉬고 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 가서 운동을 할까 생각 중이다. 아직 날 가르치셨던 감독님이 그곳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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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으로 향하는 제주, 설레는 이동률

아직 영플레이어상 수상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혹여 영플레이어상을 타지 못해도 그가 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이동률은 이내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60~70점 정도다. 경기 수에 비해 공격포인트는 많이 올렸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이동률은 말을 아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그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제주 관계자 역시 이동률과의 인터뷰 일정을 최종 확정해 전달하며 걱정이 됐는지 "동률이가 아직 어려 숫기가 없어 단답이 많이 나올 텐데 집요하게 물어봐 주세요"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을 정도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동률은 가장 중요한 영플레이어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내 망설임 없이 "제가 탈 것 같아요"라며 당돌한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이제 제주는 K리그1으로 향한다. 이동률 역시 프로 3년 차의 어린 나이에 보다 더 강력한 K리그1에서 도전을 하게 됐다. 끝으로 "너무 이르긴 하지만 내년 시즌은 어떻게 준비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이동률 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K리그1으로 올라가게 됐는데 우선은 가서 부딪쳐봐야 할 것 같다. 다른 목표는 세워놓지 않았다. '올해보다 더 경기를 많이 뛰자'는 목표만 세워놨을 뿐이다."

henry412@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