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시체육회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12일 호주 수도 캔버라에서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바로 범세원 감독이 이끄는 대구 동부고등학교 여자축구부(교장 이성국)가 2019 호주 캉가컵 국제축구대회 18세 이하(U-18) 여자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캉가컵에 참여한 동부고등학교는 압도적이었다. 동부고는 대회 6연승을 기록하는 파죽지세의 모습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현재 한국 여자축구가 처한 현실은 좋지 않다. '지메시' 지소연을 배출한 한양여자대학교는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한양여대는 자금난을 이유로 축구부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한양여대뿐 아니라 많은 여자축구팀들 역시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부고 여자축구부가 호주까지 가서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은 흥미로웠다. <스포츠니어스>는 동부고 범세원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캉가컵 우승을 비롯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범세원 감독은 "대구광역시 체육회와 캉가컵 조직위원회가 연결이 되어 우리가 호주에 다녀올 수 있었다. 대구광역시 축구협회와 대구광역시 교육청 역시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운을 뗐다. 이어 범세원 감독은 "항공료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대구시 측에서 지원해주셨다. 현지에 도착하니 재호주한인체육회장님이 아이들에게 뷔페를 사주시기도 하셨다. 몇몇 교민 분들은 차량 운행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전했다.

이렇듯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동부고는 호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부고에게는 큰 난관이 남아있었다. 바로 숙식 해결이었다. 예산이 많지 않은 동부고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호주에서의 열흘간 숙식은 학교 측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범세원 감독은 "홈스테이를 통해 숙식을 해결했다. 캉가컵에 참여한 다른 팀들 역시 다들 홈스테이를 한 것으로 안다. 덕분에 크게 돈은 안 들었다"고 전했다.

대구에서 캉가컵이 개최된 캔버라까지는 꼬박 하루가 소요된다. 캔버라는 호주의 수도로 대도시지만 아직까지 인천국제공항에서 캔버라까지의 직항 노선은 없다. 이렇듯 약 20시간의 비행 시간이 소요되는 지구 반대편으로의 일정은 범세원 감독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이에 대해 범세원 감독은 "우리와 교토 문교대학교가 매년 한일교류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과 일본은 몇 번 다녀온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일본보다 멀리 가본 적은 없다. 선수들과 함께 이렇게 멀리 갔던 것은 처음이다"고 전했다.

낯선 곳에서의 경기였지만 동부고는 압도적인 모습으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하지만 범세원 감독은 우승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범세원 감독은 "나는 선수들이 축구만 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죽을 때까지 축구만 할 것도 아니다. 선수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길 바란다. 호주에 가기 전에는 '영어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선수들이 듣는 체도 안했다. 그런데 호주에 갔다오니 선수들이 단톡방에서도 영어로 말을 하더라"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어 범세원 감독은 "호주에 다녀온 후 다들 훈련 자세가 많이 변했다. 선수들의 의식 자체가 선진국 학생들처럼 바뀌었다. 호주에 열흘 동안 있더니 선수들의 의식이 깨었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범세원 감독은 "우리가 호주에서 머물렀던 홈스테이 집의 집주인들이 다들 축구를 시키는 부모들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한국에 있는 실제 부모님들만큼 호주에서 열흘 동안 함께했던 '호주 엄마 아빠'도 좋다'고 하더라. 그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아침 저녁으로 선수들을 차에 태워 경기장에 왔다 갔다 하셨다. 마지막 날에는 새벽 3시에 출발을 했는데 다들 나와서 배웅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다고 할 수 있는 열흘간의 일정이었지만 동부고 선수들은 함께했던 '호주 부모님들'에게 푹 빠진 모습이었다. 범세원 감독은 "일부 선수들은 한국에 도착해서도 '호주 부모님들'께 직접 선물을 사서 보내더라. 호주에 갔다온 이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열흘 동안 아이들이 축구선수로서 한단계 성장한 것 같다. 인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호주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도움을 주신 '호주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캉가컵 우승으로 위상을 높인 동부고지만 동부고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제대로 된 선수 수급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범세원 감독은 "아직도 힘든 상황이다. 선수 수급이 어려운 면이 있다"며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는 여자 중학교 축구부가 많다. 한 중학교는 올해 진학 선수가 한 명이라고 하더라. 선수단에 선수가 한 명인 것이다. 우리도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 1학년 선수들을 어떻게든 끌어모았다. 고맙게도 전국 각지에서 선수들이 찾아와줬다. 선수들에게 고맙다. 선수들을 하나로 모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동부고는 캉가컵에 참여했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캉가컵 이후 동부고 선수들은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그렇다면 과연 동부고는 앞으로도 캉가컵에 참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범세원 감독은 "내년에도 캉가컵에 초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캉가컵은 100% 초청으로 이뤄진다. 올해 주최 측에 감사 인사를 표했고 또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페어플레이상도 받았다. 그렇다 보니 내년에도 초청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범세원 감독은 "호주를 갔다 왔고 한일교류전 역시 매년 치르고 있다. 더불어 대구시축구협회가 중국 측과 접촉을 해서 우리가 중국 대회에도 초청을 받게 해주려 노력하고 있다. 국내 대회도 충실해야겠지만 아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외국을 가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동계훈련 역시 베트남, 중국 등에서 치르고 싶다. 선수들이 지금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끝으로 범세원 감독은 동부고의 캉가컵 참가를 위해 도움을 줬던 여러 인사들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범세원 감독은 "캉가컵 홍보대사 이갑순 회장님, 조종식 호주 한인체육회장님, 박재술 멜버른한인체육회장님, 대구축구협회 김성열 회장님, 대구광역시 체육회 신재득 사무처장님, 최태원 부회장님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이번 대회에 단장으로 함께 했던 대구광역시 체육회 서진범 부장님, 매니저 서영우 주임, 그리고 동부고 여자축구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이경호 동부고 후원회장님, 오창민 부회장님께도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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