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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합천=이정원 인턴기자] "못 뛰어서 아쉽긴 해요. 공격수로라도 나갈 수 있어요."

선수가 존재하는 이유는 경기에 뛰기 위해서다. 경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팀의 승리를 이끌고 동료들의 환호를 받는다면 선수의 존재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이에 반해 경기에 투입되지 않는 선수는 이러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뛰지 못해 은퇴를 선언하고 다른 팀으로 이적해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기에 뛰지 못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은 비단 남자 축구뿐만이 아니라 여자 축구에서도 존재한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 대학교, WK리그 그리고 더 잘 된다면 해외 진출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여 동안 실전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자신의 출전 시간을 기다리는 선수가 있다. 바로 고려대학교 골키퍼 4학년 채민희의 이야기다.

채민희는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이채빈과 함께 번갈아가며 뛴 2016년이 채민희의 축구 인생 전성기였다. 주전으로 뛴 춘계연맹전과 전국선수권 대회에서 팀에 우승을 이끌뿐만 아니라 U-20 월드컵 대표팀에도 선발될만큼 가능성을 인정 받는 선수였다.

그리고 이듬해 채민희는 새로운 도전을 꾀한다. 바로 필드플레이어로서의 변신이었다.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 필드플레이어로 뛴 경험이 있는 그녀였기에 이번에도 잘 적응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2017년 동계훈련에서 수술을 해야될만큼의 큰 부상을 당했고 그해 추계연맹전에서야 시즌 첫 경기를 뛸 수 있었다.

부상 복귀후에는 채민희는 본래 포지션인 골키퍼로 돌아왔지만 18학번 강혜림이 굳건하게 골키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혜림은 매 경기 눈부신 선방을 이어가며 팀의 상승세를 이끈 반, 채민희는 그저 벤치에서 경기만을 바라만 보며 2년여의 세월을 흘러 보냈다.

채민희는 이날도 어김없이 수비수 강수진, 미드필더 최영주와 함께 후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골키퍼는 부상 혹은 퇴장이라는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교체되기 힘든 자리이다. 더군다나 경기가 박빙으로 가거나 팀이 밀리고 있는 상항에서는 출전 기회에 대한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채민희는 언제 부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혹시라도 들어갈 수 있을까 봐 몸을 풀었다"라는 채민희는 자신의 출전 기회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후반전에 팀이 3-1로 앞서가자 같이 몸을 풀던 강수진과 최영주는 교체 투입돼 경기장을 밟았다. 그렇기에 내심 채민희의 출전도 기대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옆에서 훈련하던 문경대 임지아가 채민아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한테 한 번 가서 말해봐. 투입해달라고." 하지만 친한 친구의 조언에도 채민희는 그저 말없이 웃으며 계속 몸을 풀고 있었다. 결국 고려대 고현호 감독은 두 장의 교체 카드만을 사용한 채 경기를 마무리했고 채민희의 출전은 다음 경기로 또 한 번 미뤄졌다. "대학교 2학년 때 추계연맹전이 마지막 실전 경기였다"라고 말하는 채민희의 얼굴에서 연신 아쉬움의 표정이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쉬워도 열심히 준비를 한다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라는 채민희는 "지금 팀에 교체 선수가 많이 없어서 열악하다. 경기에 나설 수 있다면 필드 플레이어로라도 나가고 싶다. 수비수도 자신있고 공격수도 할 수 있다"라고 자신을 깨알 어필했다. 선수라면 언제든지 경기에 뛰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채민희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도 동생들과 훈련하고 팀을 응원하는 게 감사한 일이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20세 무렵 축구선수 생활을 접고 일반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20살 때 대덕대 축구부에 들어갔다. 동계훈련만 갔다가 개인 사정으로 인해 그만 뒀다"고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물론 '대학 축구 선수 채민희'가 아닌 '일반인 채민희'의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일년 동안 밖에 있으면서 견문도 넓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축구라는 끈은 놓을 수가 없었다. 축구 심판 자격증, 지도자 D급 자격증 등을 따며 축구인으로서의 삶은 이어갔다.

"일 년 동안 울산 현대고에서 자율적으로 훈련했다"는 채민희는 "현대고 홍주영 감독님이 뷔페 서빙 아르바이트도 추천해 주셔서 그것까지 해봤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 아르바이트, 공부 등 다양한 분야를 많이 시도했지만 축구 선수로서의 삶이 가장 좋았다. 결국 묵묵히 뒤에서 준비하던 채민희에게 다시 한 번 도움의 손길이 왔고 결국 고려대학교와 손을 잡았다.

"좋은 학교라서 처음부터 오고 싶었다"는 채민희는 고려대가 손을 내밀었을 때 단번에 잡았다. 풍족한 지원과 배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최근 뛰어난 성적까지 거둔 고려대이기에 채민희가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당시 고려대 유상수 감독은 최민희를 특기생으로 선발했다.

그렇게 15학번 채민희가 아닌 일 년 늦은 16학번 채민희로 새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채민희는 2016년도의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부상이라는 시련만 없었다면 지금도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선수다. 그러나 2017년에 당한 부상과 재활 등으로 마음고생을 해야했다.

채민희가 힘들어 할때 옆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은 역시 팀 동료들이었다. "여기와서 전혀 불편한 점도 없고 다들 힘이 되어준다"라는 채민희는 "동생들도 잘 챙겨주고 친구처럼 지내니까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중 채민희가 가장 뽑은 친한 동생은 7번 정수연이다. 채민희가 한 살 언니이지만 같은 16학번이자 4학년이다. 정수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채민희는 인터뷰 중 가장 큰 웃음으로 "정말 재밌는 친구다"며 "장난치는 것을 서로 좋아한다.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가 대학 와서 친해졌다"고 덧붙였다.

채민희는 이제 마지막 대학 생활 1년을 남겨 두고 있다. 과연 채민희가 졸업 직전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일단 이번 대회 우승이 목표다. 그리고 WK리그 드래프트에 뽑히고 싶다"라는 채민희는 인터뷰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정말 1분도 괜찮고 필드도 괜찮으니 경기에 뛰어보고 싶어요"라고.

채민희는 경기 출전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그녀는 1분, 1초의 짧은 시간이라도 출전하기 위해 오늘도 훈련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과연 채민희가 2년 만에 경기에 투입 될 수 있을지도 이 대회의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팀 동료의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감독님한테 한 번 가서 말해봐. 투입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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