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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박주영. 혹은 '주멘'이라고도 불리는 선수. 청소년 대표팀으로 경기에 나서 중국 수비수들을 무너뜨린 선수. 런던 올림픽 때는 한일전의 결승골을 기록하며 병역 혜택을 이끌어낸 선수. 프랑스 리그 진출 이후 잉글랜드 아스널까지 우리나라 축구 이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선수.

그만큼 팬들도 많았고 언론의 괴롭힘도 많이 받았으며 안티도 많았다. 유럽에 있던 박주영은 가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도 골을 넣었던 환상의 대상이었다. 인기와 논란도 많았고 본인의 말보다도 '카더라'라는 '설'이 많았다. 박주영을 인터뷰하지 않아도 박주영에 대한 기사가 포털 면을 가득 채웠던 시절이 있었다.

박주영은 국내로 돌아와 FC서울 유니폼을 입으면서 득점왕까지는 아니더라도 팀이 필요할 때 꼭 골을 기록하곤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역시 박주영"이라고 칭찬했다. 2016년 전북현대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팀의 결승골을 기록하며 K리그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서울 팬들은 그를 '주멘'이라고 불렀다.

3월 11일 강원FC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세트피스 골이 이번 시즌의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보자. 그는 좋은 능력을 갖춘 스트라이커'였다'. 드리블 능력도 뛰어났고 상대 수비 라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으며 2선으로 내려올 때는 놀라운 패스 능력도 보여줬다. 그게 유럽이 아닌 K리그에서 보여준 그의 능력이었다. FC서울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맡았다. 유럽 무대로 떠나기 전 그의 팬들은 그를 보러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몰려들었고 지금까지도 서울의 팬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러모로 상징성이 큰 선수다.

박주영이 청소년 시절 때, 프랑스 리그와 잉글랜드 무대를 거쳤을 때, 그리고 지금의 K리그 무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축구도 진화했고 선수들도 진화했다. 그 사이 '골 사냥꾼', 혹은 정통 중앙 공격수 역할의 골잡이들은 점차 경쟁력을 잃었다. 현대축구가 요구하는 중앙 공격수는 전방에서 압박을 가해주며 역습 시에는 전방에서 싸워주거나 스스로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동력과 체력이 필수다. 그리고 서울이 필요한 최전방 공격수는 진화된 현대축구의 공격수다.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라면 적어도 올리비에 지루처럼 최전방에서 위압감을 줘야 한다. 몸싸움을 하거나 앞으로 침투하는 2선 공격수들에게 좋은 패스를 주거나, 아니면 수비 라인 뒤쪽을 계속 노리며 괴롭히거나. 어떻게든 상대 수비수를 괴롭혀줘야 할 필요가 있다. 박스 안에서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공이 어느 발밑에 있든지 상관없이 골문 안쪽을 향해 슛을 때려야 골을 기록할 수 있다. 그게 공격수로서의 '일'이다.

기동력이 떨어져도 이동국은 계속 리그에서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김신욱도 박스 근처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다. 말컹은 전방에서 공을 지킬 수 있는 선수다. 제리치는 동료를 이용하기도 하고 스스로 골을 기록한다. 무고사나 주니오는 전천후로 뛰어다니며 골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다. 리그 득점 10위 안에 있는 중앙 공격수들은 어떻게든 리그에서 살아남는 법을 몸에 새기고 있다.

15경기 1골. 21번의 슈팅과 6번의 유효슈팅. 이번 시즌 K리그에서 거둔 박주영의 성적표다.

3월 11일 강원FC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세트피스 골이 이번 시즌의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는 여전히 유럽에 있는 것 같다

그는 올해 부상으로 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부상 논란에 대한 그의 반박이 오히려 엉뚱한 불똥으로 튀었다. 구단과 선수 간의 알력싸움으로까지 해석이 번졌다. 박주영의 팬들은 그를 옹호했다. 그를 기용하지 않는 코치진과 더불어 구단까지 비판의 대상에 포함됐다. 이을용 대행의 말, 언론의 귀, 팬들의 눈이 보는 박주영은 다 달랐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사실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건전한 비판이 일어나기엔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 자체가 흐릿하다.

박주영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감. 그게 오히려 본인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모두 환상이다. 실제로는 FC서울에 있지만 여전히 유럽에 있는 것 같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도 뉴스는 나온다. 모두가 그에게 분발을 요구한다. 어서 나와라. 나와서 골을 넣어라. 위기의 FC서울을 구해라. 박주영이라는 이름값을 해라. 같은.

지금까지 팬들, 언론, 그리고 박주영의 상관관계는 '가능성'으로 엮여 있었다. 박주영이 나오면 무엇인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가능성 말이다. 이제는 그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조차 별로 의미가 없다. 그가 알아서 보여줘야 한다. 경기장에서 언론을 만나고 그의 입으로 직접 말해야 한다. '언제 나올까'는 일단 제쳐두고 그가 등장했을 때 유심히 지켜보면 될 일이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수들은 너무 많다. 박주영이 아닌 단지 프로 선수로서 그를 바라본다면 경쟁에서 밀린 중앙 공격수일 뿐이다. 우리는 경쟁에서 밀린 프로 선수를 단순히 잊어간다. 그를 항상 곁에서 바라보는 건 소속팀의 코치진이다. 심지어 언론조차도 코치진보다 특정 선수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박주영은 나올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오지 못할 것이다. 프로의 생리가 그렇다. 평가는 그 이후에 해도 상관없다.

3월 11일 강원FC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세트피스 골이 이번 시즌의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제는 박주영을 내버려 두자

박주영을 향한 대중, 혹은 언론의 시선은 진부하다 못해 질리기까지 한다. 그는 수년간 언론사 트래픽을 위한 '인기 검색어'와 '어뷰징'의 희생양이었다. 경기에 나서도 문제, 나서지 않아도 문제였다. 그리고 이 모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를 향한 과도한 애정과 관심이 오히려 박주영과 그의 주변인들까지 괴롭힌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 캐서린 바이너는 "우리는 다른 기사를 찾고, 말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소홀하게 다뤄진 지역과 주제를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박주영을 내버려 두자. 그는 이미 너무 많이 시달렸다. 그 말고도 발굴해야 할 선수와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