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공식 SNS 계정을 통해 8일(토) 오전 10시 파주NFC에서 열리는 '파워에이드 오픈트레이닝데이'에 팬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우리 대표팀과 코스타리카의 경기가 끝난 이후 오후 11시 50분경 대한축구협회는 "대기하는 팬들이 이미 한정 인원인 500명을 훌쩍 넘어 행사 입장이 어려울 것"이라며 "다음 기회에 참여해주기 바란다"라는 공지를 띄웠다.

협회의 공지문을 접한 소위 '축구팬'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축구판이 아이돌 판이 됐다"라면서 "언제부터 오픈 트레이닝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갔다고, 진짜 걸러야 하는데"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한축구협회의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이와 같은 불만의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들의 불만을 이해한다. 그들은 어쩌면 박탈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평소에 좋아하고 즐겼던, 꾸준히 관심을 보였던 보통의 일상을 '뉴비'들에게 빼앗겼을 테니 말이다. 그들이 꾸준히 대표팀과 선수들, 더불어 K리그를 향해 보여준 사랑과 응원을 알고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선수들과 웃는 모습으로 만나 소소한 보상을 받고 그로 인해 기뻐해야 한다고 믿는다.

즐거운 표정으로 팬들과 사진을 찍는 벤투 사단 ⓒ 대한축구협회

'올드비'들도 한 때는 '뉴비'였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단상은 조금 불편하다. 그들도 한때는 '뉴비'였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들은 공지 게시물에 불만 댓글을 적는 과정에서 자신을 '진정한 축구팬'으로 격상하고 아이돌과 같은 팬덤 문화를 격하시켰다. 요즘 젊은 꼰대들이 많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다. "절반이 축알못"이고 특정 연도에 열린 오픈 트레이닝 행사는 "8시 50분에 도착해도 그냥 들어갔다"라고 한들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밤을 꼴딱 새운 500명의 열정과 사랑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

이건 텃세다. '축구판의 물을 흐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새로운 팬들의 유입을 막는 행위다. 기존에 누리던 행위를 자연스럽게 누리지 못하는 '올드비'들의 박탈감 표현이다. 다른 이들의 열정을 격하시키는 팬들은 종종 "내가 언제부터 축구를 봤는데"라며 자랑하곤 한다. 전형적인 기득권 세력의 논리다. 팬들이 팬들을 혼내고 있다. 이건 분명 옳지 않다.

이런 현상을 지켜본 한 올드팬은 "팬덤 문화 어느 곳에나 있는 '완장질'"이라고 표현했다. 그 팬은 정조국의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파주NFC를 오갔던 사람이다. 그는 "야구판이나 아이돌 판이나 마찬가지다. 자기가 언제부터 무엇을 봤는지가 왜 자랑인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이어 "야구판도 베이징 올림픽 때 새로운 팬들이 많이 늘고 여성 팬 숫자가 무서울 정도로 증가했다. 그때 유입된 팬들이 지금의 야구 1,000만 관중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그들의 입장 수익과 상품 구매력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K리그를 종종 보러 가는 팬들도 간혹 해외 경기장의 가득 찬 모습을 부러워할 때가 있다. 축구와 K리그가 마냥 좋아서 지역 연고 팀이나 스타 선수가 있는 팀을 응원하러 다니다가도 새벽에 중계되는 해외축구를 보며, 또 해외 축구만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며 속으로 "왜 우리나라는 저렇게 축구팬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안고 산다. 지금 대표팀 멤버들을 향한 이 관심과 열정을 이어 간다면 이 지긋지긋한 고민을 끝낼 가능성이 있다.

즐거운 표정으로 팬들과 사진을 찍는 벤투 사단 ⓒ 대한축구협회

선수들이 아이돌처럼 되어도 괜찮다

7일 A매치 취재를 위해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철에는 손흥민의 응원 피켓을 손에 쥐고 친구와 즐겁고 설레는 마음을 가득 품은 채 경기장으로 향하는 청소년 팬들이 많았다. 대화역에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붉은 옷과 응원 도구를 품고 들뜬 표정으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곧 경기장에 가득 찼고 열렬한 환호와 함성을 지르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분명 여성 팬들의 목소리가 더 컸고 선수들이 아이돌이 됐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지만, 우리 대표팀 선수들을 향한 뜨거운 응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이승우와 손흥민, 황의조, 황인범 등이 조명됐다. 그들은 벤투호 1기에도 이름을 올렸고 팬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는 놀랍게도 여성 팬들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그만큼 축구와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직접 경기장으로 찾아왔다. 코스타리카와의 경기는 5년 만에 티켓 매진으로 '대박'을 쳤다. 팬들의 숫자와 흥행은 즐거워하면서도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던 그 모습은 여간 불편했던 모양이다.

선수들이 아이돌처럼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축구 시장에 참 오랜만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승우와 손흥민, 황의조, 기성용 등 해외파는 칠레전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나지만 황인범과 김문환, 김민재는 여전히 한국에 남아있다. 이들은 국내에 남아서 '입덕 루트' 역할을 해줘야 한다. '입덕 루트'로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고 그 팬들이 다른 선수들과 팀을 향해 관심을 나타내면 새로운 선수가 보이고 팀이 보이게 된다. 그렇게 시장은 커진다. 우리가 원하는 만원 관중의 청사진이 될 수 있다.

즐거운 표정으로 팬들과 사진을 찍는 벤투 사단 ⓒ 대한축구협회

'뉴비'가 '올드비'로 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오픈 트레이닝 행사에서 보여준 벤투 사단과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K리그에서도 최고의 스타로 손꼽히는 선수들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그들을 향해 뜨거운 관심과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선수와 팬의 스킨십은 이렇게 탄생한다.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친구들과 K리그 경기장에도 와달라"라고 말한다면 그게 최고의 마케팅이다. 프로축구 선수들의 팬 서비스가 곧 마케팅이며 그들은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편 500명이라는 선착순 행사에 의한 여파는 대한축구협회로서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청소년 팬들이 쌀쌀한 가을 날씨에 파주에서 밤을 꼴딱 새우는 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협회 측의 초조함이 컸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부분은 아이돌 팬덤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올 수도 있다. 아이돌 팬덤의 경우 행사 바로 전날 신청자를 받아 선착순으로 자른 뒤, 불참자들을 대비해 대기 번호를 나눠주기도 한다. 현 상황에서는 협회가 밤 늦은 시간에라도 "다음 기회를 이용해달라"라고 공지한 일이 최선이었다고 본다.

또한 협회와 연맹, 선수들은 새로 유입된 팬들을 고정 팬으로 잡아둬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그렇게 많았던 김남일의 팬들을 잡아두지 못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협회 측은 '인사이드캠'으로 훌륭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연맹 측도 경기 하이라이트를 친숙하고 재밌게 포장해 스토리를 불어 넣고 있다. 팬들은 그저 이 현상을 즐기면 된다. 가뜩이나 관중이 줄어 불만이라던 팬들이 새로 유입된 팬들을 혼내며 내쫓을 필요는 없다. 경기장이 콘서트장처럼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K리그의 매 경기가 콘서트처럼 흥이 넘치고 즐겁다면 그게 더 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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