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수 코치와 함께 한 최현일(사진 우). 투구에 대한 조언을 받아들이는 속도 역시 빠르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목동야구장=김현희 기자] 지난 19일, 목동구장에서는 서울고와 성지고의 봉황대기 64강전 경기가 한창이었다. 양 교 전력의 차이가 컸던 만큼, 콜드게임으로도 경기가 종료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되려 가볍게 질 수 없다는 성지고의 투지로 이어졌다. 경기가 종료되었을 때 전광판에 나타났던 숫자는 2-0으로 박빙이었다. 만약에 성지고가 수비에서 잔실수가 없었다면, 경기는 또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서울고 유정민 감독은 마무리 투수로 에이스를 내면서 컨디션을 점검했다. 우완 최현일(18)이 그 주인공이었다. 최현일은 2이닝을 소화하면서 탈삼진 4개를 곁들이는 역투 속에 팀의 박빙 승리를 책임졌다. 이미 1학년 때 최고 구속 148km를 기록하면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최현일이었지만, 3학년 진학 이후 팔각도를 조금 더 높이면서 구속도 증가했기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자체 연습 경기에서는 151km까지 측정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의미에서 최현일은 이번 2차 지명회의 최고의 블루 칩 중 하나였다.

LA 다저스 팬이었던 소년의 꿈

그런데, 성지고와의 경기가 끝난 이후 프로 스카우트팀 사이에서 최현일의 미국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구단은 LA 다저스이며, 계약금은 30만 달러에서 결정됐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다만,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아 발표는 늦어질 수 있다는, 다소 구체적인 이야기도 전달됐다. 제자들의 해외 진출을 크게 반대하지 않는 서울고 유정민 감독 역시 시즌 전부터 제자가 어떠한 선택을 하건 간에 잘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표출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단 하루가 지나지 않아 바로 수면 위로 올랐다. '일간스포츠'에서 단독으로 최현일의 LA 다저스 계약을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필자도 최현일의 모습을 촬영한 독사진을 제공하며 해당 보도를 돕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사인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통상적으로 메이저리그의 국제 유망주 스카우트가 5월 이내에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 8월에야 계약이 이루어진 것도 꽤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여기에 최현일이 이미 지난해 오프시즌부터 미국행에 대한 고민을 해 온 터였다. 3~4월 이내에 계약을 할 법했지만, 그만큼 오랜 기간 고민을 해 왔던 것은 자신의 장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최현일의 미국행을 눈치 챈 것은 지난겨울,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야구 소년 발표회에서였다. 당시 우연치 않게 그 자리에 초대되었던 필자는 작은 소모임에서 크게 깨달았던 것이 많았을 만큼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에도 LA 다저스 팬임을 드러내 보였던 최현일은 "부모님을 포함하여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비행기 태워드리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라며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LA 다저스의 팬이었던 그가 동경하던 팀에 입단하는 꿈을 이룬 셈이다.

최현일은 동문 선배인 이형종(사진 좌)과 꽤 닮았다. 그래서 별명도 '리틀이형종'이다. 둘은 LG에서 한솥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 ⓒ스포츠니어스

다만, 계약금 30만 달러에서 보듯이 대우는 그렇게 좋지 않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도전자라는 입장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최현일의 모습 자체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모습은 두산 1차 지명을 받고도 헐값에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했던 남윤성(현 SK)이나 상무 전역 후에도 미련 없이 다시 LA 에인절스로 떠난 장필준(현 삼성)을 떠올리게 한다. 당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어디까지 도전해 볼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최현일이 계약한 구단이 LA 다저스라는 점도 꽤 유의미하다. 박찬호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처음으로 몸담았던 곳이 LA 다저스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던 선수들이 대부분 시카고 컵스행을 결정지었던 데 비해 LA 다저스에 몸담았던 이들은 대부분 메이저리그를 거쳐갔다. 최희섭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여기에 투수 이지모(두산)를 비롯하여 KT의 남태혁도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특히, 토미 라소다 고문이 한국인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 "언제든지 나를 아빠라고 불러라."라고 할 정도다. 적어도 이 점이 최현일에게는 플러스가 될 전망이다.

쓰리쿼터/사이드암 투수가 태평양을 건넜던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잠수함 스타일이었던 김병현이 성균관대 중퇴 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을 맺었던 경험이 있기 하지만, 그가 최현일처럼 쓰리쿼터와 사이드암을 오가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이러한 유형의 선수가 어떻게 미국 땅에 적응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정통파가 대세인 메이저리그에서도 150km를 던지는 쓰리쿼터/사이드암 투수는 드문 편이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거론할 수 있지만, 어찌되었건 최현일은 국내에서 2차 1라운드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과감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박봉에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했다. 분명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하여 야구와 인생을 모두 배워 온다면 이 또한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스포츠니어스는 쉽지 않은 도전을 선택한 최현일의 앞날을 응원한다.

eugenephil@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