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김광석(왼쪽)과 서울 고요한(오른쪽) ⓒ 포항스틸러스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김광석과 고요한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포항과 서울의 대명사 같은 선수들이다. 두 베테랑이 위기의 팀을 이끌고 있다.

4일 펼쳐진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21라운드에서 포항스틸러스는 인천유나이티드를 2-1로 꺾었고 FC서울은 제주유나이티드를 3-0으로 꺾었다. 그동안 포항과 서울은 K리그 무대를 호령했던 팀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두 팀 모두 쉽지 않다. 총 21번의 리그 경기에서 포항은 승점 29점, 서울은 승점 26점을 기록하며 치열한 중위권 다툼을 하고 있다. 두 팀 모두 현재 순위에는 만족할 수 없기에 매 경기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두 팀 모두 이번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 변화가 많았다. 포항은 손준호와 양동현이 이적하면서 핵심을 잃었다. 황지수는 은퇴했고 심동운은 군인 신분이 됐다. 알찬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긴 했지만 이적생들에게 팀을 하나로 뭉치는 역할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서울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은 윤일록과 오스마르, 데얀, 주세종, 이명주, 김치우 등을 떠나보내며 리빌딩을 외쳤다.

팀 색깔은 모두 검붉은 색이다. 그러나 선발 명단은 어색하다. 우리가 알던 포항과 서울이 아니다. 낯선 선수들 이름만큼이나 선수들도 팀을 낯설어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팀이 급변하면 조직력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 두 명의 능력이 중요하다. 새로운 선수들로 팀을 꾸린 감독, 혹은 팀의 중심이 되어 줄 선수.

성적 부진에 빠진 포항과 서울에 긍정적인 면을 찾아본다면 팀의 중심이 되어주는 선수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중심이 되는 선수들은 모두 원클럽맨이다. 원클럽맨이어서 팀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팀에 남아있는 베테랑이라면 의미가 없다. 그들이 운동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김광석과 고요한은 팀의 영혼과도 같은 존재다. 두 선수 모두 K리그에서 '스타급' 선수만큼 화제 되지 않았던 선수들이다. 그러나 그들만큼 팀을 위해 꾸준히 헌신하는 선수도 드물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어려움을 예견했던, 그래서 몸을 아끼지 않았던 포항의 주장

김광석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걱정이 컸다. 프로 17년 차, 36세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포항의 주장 완장을 찼다. 김광석은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늘 주장직을 고사해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는 동계 전지훈련에서 "아무리 선수단이 많이 바뀌어도 한 시즌에 15명 남짓한 변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11명 빼고 다 바뀌었다. 무려 25~6명의 선수들이 새로 왔다. 내가 주장으로서 변화가 큰 선수단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라면서 "변화가 너무 큰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동계 전지훈련 때부터 팀의 어려운 시즌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김광석은 "조직력도 부족하고 기존에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도 몇 명 남지 않았다.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그의 걱정과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김광석은 지난달 15일 강원FC와의 홈경기 무승부 이후 "어린 선수들이 많아 내가 해야 하는 몫보다 더 많이 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것이 조직력 문제로 이어졌고 팀의 부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말했다.

포항은 대구FC와 전남드래곤즈를 꺾으며 반등하나 싶었지만 상주를 만나 1-2로 패배하면서 또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시즌은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포항의 순위는 김광석이 예견한 팀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폭염이 이어지는 8월 인천 원정을 떠났다. 패배가 이어지면 치열한 중위권 싸움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반 22분에서 23분으로 넘어가는 시점, 인천이 먼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문선민이 박스 안쪽 측면에서 드리블과 슈팅을 시도했고 이 슈팅은 강현무에게 막히며 튀어나왔다. 문선민은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이용해 골문 앞쪽으로 공을 띄웠다. 공이 향한 방향에는 박종진이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이 공을 김광석이 몸을 띄우며 발로 걷어냈다. 이 골이 들어갔다면 포항은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컸다. 한차례 결정적인 실점을 막아낸 김광석은 후반 추가시간 1-1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팀 승리를 챙겨오는 헤더골을 터뜨렸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보여준 서울의 주장

서울도 포항과 마찬가지로 대대적인 선수단 변화가 있었다. 황선홍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견디지 못하고 월드컵 휴식기가 찾아오기도 전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번 시즌 팀의 주장으로 선임됐던 신광훈은 장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이었다. 고요한도 김광석처럼 처음으로 서울의 주장 완장을 찼다. 서울은 인천전과 경남전에서 연속으로 패배하면서 연패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서울은 연패가 추가된다면 상위 스플릿은 커녕 강등을 걱정하게 됐을 수도 있었다.

서울만큼 제주도 부진에 빠졌다. 두 팀 모두 연패를 끊고 승리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울만큼 제주도 절박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 불꽃이 튀었다. 마그노가 전방에서 공을 소유하며 서울 수비를 위협했고 찌아구는 계속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며 득점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공기를 좌우했던 선수는 고요한이었다. "월드컵 이후로 여유가 생겼다"라는 이을용 대행의 말처럼 경기를 읽는 눈과 판단 능력이 빛났다.

고요한이 가장 큰 환호를 이끌어낸 장면은 후반 막판에 나왔다. 고요한은 김원일과의 경합 과정에서 크게 충돌하며 경기장에서 쓰러졌다. 월드컵 이후로 꾸준히 선발로 나서며 90분을 소화해낸 선수였다. 서울 팬들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고요한은 급하게 지혈한 뒤 머리에 붕대를 감고 곧바로 공격에 가담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고 슈팅을 기록할 수 있었다. 고요한의 슈팅은 이창근에게 한 번 막혔지만 그 뒤에서 들어오는 신진호가 밀어 넣으며 서울의 승리를 확신하게 하는 세 번째 골이 터졌다.

경기를 마친 후 기자회견장에 모인 취재진은 "고요한이 이런 선수였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기자들은 고요한의 능력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는 의미였다. 고요한은 9바늘을 꿰매야 했을 만큼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그는 경기를 마무리하겠다며 경기장으로 뛰쳐나갔다. 그저 '붕대 투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고요한은 시즌 중반 주장 완장을 이어받으며 선수들에게 위기의식과 서울의 순위 상승을 강조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서울에서 뛰려면 이렇게 뛰어야 한다'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줬다.

절벽까지 밀릴 수는 있어도 떨어지진 않는다

고요한은 전지훈련 당시 국내 매체를 통해 "이제 선배가 됐으니 선수들을 깨우는 역할도 해야 한다. 경기 중에 흐름을 잡아줄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선수범하면 후배들도 따라올 것이다"라며 시즌을 앞둔 각오를 전했다. 김광석은 "내가 무너지면 다른 선수들도 무너진다"라고 강조했다. 검붉은 팀의 두 베테랑은 승리라는 결과까지 만들어냈다. 그들이 무너지지 않는 한 팀도 무너지지 않는다. 현재 순위는 조금 뒤처졌을지언정 그들이 버티는 한 절벽 끝에서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노련함을 넘어 팀에 영혼을 불어넣었고 선수단을 깨웠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릴 때부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운동장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팀마다 팀을 이끌 수 있는 베테랑들은 있지만 이만큼 자극을 줄 수 있는 베테랑들은 드물다. 김광석과 고요한 모두 팀의 뿌리와 같은 선수들이다. 뿌리가 단단한 나무는 산사태가 일어나도 뽑히지 않는다. 그런 나무들이 많은 산은 산사태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포항과 서울이 참 귀한 선수들을 키웠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