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보다도 우리는 한국 축구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기록사진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조국을 위하여. 우리는 그렇게 스포츠를 시작했다.

분노가 이 나라를 뒤덮었다. 더는 배곯고 굶어 죽게 하지 않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몰아낸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낀 노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광장에 모인다.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치고 언론을 불신하며 유튜브로 달려든다.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 있는 여성을 죽이고 시장직에 출마한 젊은 여성 정치인의 포스터를 뜯어낸다. 여성들을 향한 된장녀와 김치녀 프레임은 정치 정당이 선거 참패 후 이름을 바꾸듯 메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당하다고 한다. 타당하다고 한다. 자신들의 말이 옳다고 한다. 분노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동의하지 않는 당신은 이 땅에서 버려야 할 '쓰레기'다. 그렇게 증오하고, 혐오하고, 괴롭힌다. 4년 전 그들은 브라질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온 선수단을 향해 엿을 던졌다. 1승도 거두지 못한 선수들과 감독, 코치진을 위로하기보다 속된 말로 '엿을 먹였던' 사람들은 4년 후에도 나타났다. 동일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달걀이다.

'가짜 뉴스'에서 이들은 늘 '악의 무리'가 된다. ⓒ유튜브 영상 캡처

소방수를 죽이는 나라

냄비라고 한다. 독일전 승리로 또 여론을 몰아간다고 한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을 잊었다고 한다. 우린 그 이전부터 계속 말해왔다. 신태용 감독의 선임부터 희생이었다. 모두가 맡지 않으려 했던 독이 든 소주잔을 혼자 들이켰다.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강호를 남겨두고 승점을 얻어냈고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 땅을 밟으니 국민은 히딩크 감독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신태용 감독의 조력자였던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스페인 코치들의 선임을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민은 환호했다.

이어진 평가전에서 포지션도 다 갖춰지지 않은 해외파 선수들을 모아 유럽 원정을 떠났다. 출전 시간이 현저하게 부족했던 선수들이었다. 경기력을 파악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졌다. 국민은 또 분노했다. 이후 권창훈, 이근호, 고요한, 손흥민을 앞세워 콜롬비아를 꽁꽁 묶었다. 일본으로 떠나 일본을 4-1로 격파하고 동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김호곤 위원장이 선임한 토니 그란데 코치에게 감독을 맡기라고 말했다.

2018년 3월, 두 번의 평가전에서 모두 패하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신태용 감독이 생각하는 최상의 전력이 하나둘 이탈했다. 일찌감치 김민재와 김진수가 부상으로 몸 상태를 확신할 수 없었다. 러시아로 떠나기 직전 염기훈, 이근호, 권창훈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겨우 꾸린 대표팀으로 온두라스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도 그를 향한 찬사는 없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패배, 볼리비아에 무승부, 세네갈과 스웨덴 멕시코에 패배하면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신태용 나가라. '축협'을 물갈이하자. 독일을 상대로 감동적인 결과를 얻었지만 이 비난은 여전하다. "그들을 죽이자. 그러면 '좋아요'와 '추천'이 내 생각을 지지해 줄 거야."

선수들만 잘 뛰어서 독일을 이겼다고? 전술이 없었다고? 이란과 아이슬란드, 파나마가 보여줬던 축구는 그럼 뭐였지? 그럼 차라리 감독과 코치진 없이 선수들만 비행기에 태워 대회에 나가면 되나? 그럼 선수들은 '프로듀스23'으로 뽑아야 하나? 다 공격수만 있으면 어떡하지? 다 수비수만 있으면 어떡하지? 다 전북 선수들만 뽑히면 리그는 어떡하지? 국민이 뽑은 수비수가 페널티킥을 허용하면 어떡하지? 멀티플레이어라면 어디에 세워야 하지? 의문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가짜 뉴스'에서 이들은 늘 '악의 무리'가 된다. ⓒ유튜브 영상 캡처

찾을 수 없는 분노의 뿌리

우리 대표팀을 향한 분노의 뿌리를 찾기가 힘들다. 고려대? 연세대? 4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모습? 정몽규 회장? 신태용? 장현수? 김호곤 위원장? 히딩크? 노제호? 이 분노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러시아 한복판에 내던져진 그들은 그들의 힘으로 세계 1위 독일을 무찔렀다. 외신의 호평 속에도 그들은 여전히 분노한다.

국민은 그들을 러시아에 던졌다. "못하면 맞아야지"라면서 갖고 놀았다. 학대했다. 이 학대를 지켜본 차범근이 참다못해 화를 냈다. 왜 선수들을 괴롭히냐고. 국민은 차범근의 일갈에도 여전히 장현수와 신태용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한다. 그들을 불태우면 축구협회의 목을 기요틴으로 쳐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과 과가 반이다. 축구협회의 법인카드 문제, 특정 회사 유착 관계, 무능한 소통 등 여전히 의혹이 해결되지 않은 과가 많다. 정몽규 회장은 축구협회 조직을 개편했고 김판곤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 선임 위원장직을 맡겼다. 그는 대표팀 지도자를 선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표팀 지원 체계를 구체화한다고 밝혔다. 지도자 육성 커리큘럼도 준비한다고 했다. 과정과 결과를 두고 봐야겠지만 포부와 비전은 나쁘지 않다. 이 공은 없어지고 과만 남았다. 월드컵 2패와 두 개의 페널티킥만이 남았다.

대한축구협회는 변화하고 있다. 국민이 외친 '변화'를 수용한 지 이제 6개월이다. 농사를 위해 땅을 뒤집어 놓은 지 6개월째 쌀가마니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알려달라고 외치기 이전에 쌀도 내놓고 보리도 내놓으라고 한다. 밀도 내놓고 사과와 배 등 오곡 과일을 자기들 밥상에 차려 놓으라고 한다. 이게 논인지 밭인지 과수원인지 양계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희가 농사를 지었으니 어디 한 번 가져와 봐라. 우리는 이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먹고살 수 있지 않으냐.

골리앗을 상대로 돌팔매를 던진 다윗은 영웅이 됐다. 나라의 왕이 됐다. 우리는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온 다윗에게 달걀을 던졌다. 조국을 위해서. 조국의 축구를 위해서. 장현수도 조국을 위해서 뛰었다. 신태용도 조국의 축구를 위해 지휘봉을 잡았다. 궁지에 몰렸던 패잔병들은 진을 짜고 제일 강한 적에게 창을 찔렀다. 고국으로 돌아온 전사들에게 던진 것은 엿인가. 달걀인가. 돌인가.

intaekd@spors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