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이랜드FC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골이 보고 싶습니다. 이제 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 현장 취재를 나간 세 경기에서 골을 못 봤습니다.

지난 11일 강원FC 정조국은 친정팀 FC서울 상대로 역전골을 넣으며 강원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때는 몰랐습니다. 그 골이 제가 현장에서 본 마지막 골이 될 거라곤 말이죠. 다른 종목까지 포함하면 썰매 하키 종목에서 우리 대표팀이 이탈리아 대표팀을 상대로 집어넣은 골도 있군요. 지금 생각해도 그 장면은 큰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퍽이 아닌 축구공이 골망을 흔드는 장면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감동의 올림픽을 뒤로하고 서울이랜드FC와 광주FC의 경기, 그리고 성남FC와 안산 그리너스의 경기 취재를 갔지만 연달아 골이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매주 골이 나오겠냐며 자신을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성남과 안산의 경기는 그래도 챙길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안산의 수비 지역 시프트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어쨌든 토요일 경기에 이어 일요일 경기도 0-0 경기로 끝났습니다. 그렇게 정조국의 골을 본 이후 210분이 지났습니다.

성남과 안산 경기를 같이 지켜본 송영주 해설위원은 자신의 처지는 생각도 않고 "너 때문에 득점이 안 나오는 거 아니냐"라며 제 탓으로 몰아가기도 했습니다. 하긴 송 위원은 수원FC와 부천FC1995 경기에서 전반 1분 만에 포프가 기록한 페널티킥 골이라도 봤습니다. 이러다 제가 K리그 구단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재를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웹툰 작가 샤다라빠도 직관만 하면 성남이 졌다고 하던데 괜히 동병상련의 마음이 싹텄습니다. 작년 말 서울E 구단에 합류한 관계자는 "내가 구단에 들어온 후 우리 팀 승리가 없다"라며 자책 아닌 자책을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 탓은 아닐 거라며 서로 위로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애써 마음을 잡고 서울E와 고려대의 FA컵 경기를 취재하러 갔습니다. 고려대와 서동원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서울E의 시즌 첫 승리를 기대하고 갔습니다. '설마 고려대는 이기겠지'라고 생각하고 취재에 들어간 게 사실입니다. 서울E에도 갓 프로에 데뷔한 선수들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프로팀과 대학팀의 차이는 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번엔 골 좀 보리라'고 기대하고 갔습니다. 저녁도 거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갔죠.

저보다 이 분들이 더 걱정입니다 ⓒ 서울 이랜드FC

팬들은 335분째 골을 못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골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90분에 연장전 30분까지 골이 없었습니다. 구단 미디어 관계자가 친절하게 건네준 핫도그가 아니었다면 양해를 구하고 그냥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도 고팠는데 골은커녕 슈팅 수마저 적었거든요. 경기를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서울E 팬들도 답답했는지 경기장 전체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쳤습니다. "이겨, 좀 이겨. 고대에도 질 거야?" "응원할 가치가 있는 플레이를 해야 할 거 아냐." 관중이 좀 많았다면 이 소리는 묻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 또렷하게 들린 외침이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통해 아름다운 응원 문화를 부탁했습니다.

결국 서울E는 승부차기에서 고려대에 무너졌습니다. 서울E는 재작년 성균관대에 이어 올해도 FA컵에서 대학팀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도 답답한데 팬들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서울E 팬들은 지난 부산 아이파크전 후반 10분에 터진 비엘키에비치의 원더골 이후로 골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전 시티즌, 광주FC 경기에 이어 고려대 경기까지 무려 저보다 5분이나 더 골을 보지 못한 셈입니다. 서울E 팬들은 골을 못 본 지 335분이 지났습니다.

물론 서울E의 상황은 어렵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선수단에 줄부상이 찾아왔습니다. 인창수 감독은 "동계훈련에서 계획했던 멤버들 중 절반 이상이 부상"이라면서 어려움을 고백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날 부천과의 경기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선수단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합니다. 프로팀이 대학팀을 상대로 홈에서 졌습니다. 비엘키에비치가 아니면 어느 팀을 상대하든 골을 노릴만한 선수가 없다는 게 더 절망적입니다. 최치원의 회복이 시급합니다.

저보다 이 분들이 더 걱정입니다 ⓒ 서울 이랜드FC

대학팀에 배울 점이 더 많아 보이네요

고려대 서동원 감독은 "프로팀과 맞붙을 수 있는 FA컵이 큰 배움의 장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엔 서울E 구단 전체가 고려대와 서동원 감독에게 배워야 할 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고려대도 춘계대학연맹전 40강에서 용인대에 패배하면서 탈락의 쓴맛을 봤습니다. 지난주 개막한 U리그에서는 전통의 라이벌 연세대에 0-2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번 FA컵에서도 최정예 멤버를 꾸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려대는 서울E를 상대로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매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서울E의 공격을 틀어막고 측면 공격수들의 빠른 발로 역습을 노렸습니다. 그야말로 고려대식 철퇴 축구를 보여줬습니다. 비록 득점은 없었지만 고려대의 경기력이 더 뛰어났습니다. 팀의 명성, 팀이 속한 리그를 생각한다면 이번 경기 결과는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경기 내용만 생각한다면 고려대가 올라갈 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고려대는 꽤 오래전부터 선 굵은 축구를 해왔습니다. 어느새 그게 고려대 축구의 전통이 됐습니다. 고려대식 철퇴 축구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서동원 감독은 코치로 부임했던 2008년부터 고려대를 이끌어왔습니다. 매년 좋은 선수들을 배출했고 또 매년 그 좋은 선수들이 팀을 떠나 시즌 초반에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고려대만의 답을 찾고 훌륭한 활약을 펼칩니다. 고려대를 졸업한 송범근도 "고려대는 초반에 힘들다. 그러나 감독님이 워낙 팀을 잘 만드신다. 시즌이 지날수록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며 모교를 향한 신뢰를 밝혔습니다.

서동원 감독은 하루 이틀, 한두 시즌도 아니고 무려 10년째 고려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고려대에 어떤 좌절이 있었고 그때마다 어떤 교훈과 어떤 각오가 새롭게 다져졌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서울E는 바로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구단이 장기적인 비전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릴 때마다 감독을 바꾸면 팀은 매번 신생팀이 됩니다. 전통이 세워질 틈이 없습니다. 한 시즌 동안 감독이 배운 교훈과 유산은 감독이 교체되면서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좌절이 팀을 찾아오게 됩니다. 매시즌 팀과 함께하는 팬들만 그 좌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매년 비슷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나아지는 게 없으니 팬들 마음은 더 답답할 겁니다.

이제 막 시즌을 시작한 인창수 감독과 서울E 선수단에 어떻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인창수 감독은 코치 시절 포함 이제 3년째 이 팀을 맡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년엔 비자 문제로 시즌 도중 팀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감한솔은 마지막 승부차기 실축 후 환호하는 고려대 선수들 사이에서 멍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내내 꽤 거칠게 욕을 했던 팬들도 그런 감한솔의 모습을 바라보니 또 마음이 아팠답니다. 감한솔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서울E가 이번 경기에서 고려대와 팬들에게 맞은 따끔한 매는 다음 시즌, 또 그다음 시즌에 이어 쭉 교훈으로 남겨야 합니다.

저보다 이 분들이 더 걱정입니다 ⓒ 서울 이랜드FC

어쨌든 골 못 본 게 제 잘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즌은 깁니다. 오히려 이 부분은 서울E가 더 위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대로 시즌을 끝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시즌을 헤쳐나갈 다양한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비엘키에비치를 쓰지 못할 때, 상대가 깊이 내려앉을 때, 상대가 강하게 올라올 때마다 가동할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서울E의 다음 상대는 부천입니다. 부천도 지난 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정갑석 감독은 지난 시즌 서울E의 홈에서 플레이오프 진출 좌절을 겪었습니다. 정 감독은 그 경기를 잊지 않았을 겁니다. 부천 선수들도 잠실 원정을 벼르고 있습니다. 서울E는 이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고비를 넘겨도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서울E는 고비를 통해 얻은 교훈을 계속 물려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힘들게 고비를 넘은 흔적을 지우고 다음 시즌 또 새로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로 맡기게 될까요?

어쨌든 당장 이 고비부터 해결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골이 터지길 바랍니다. 저는 수비력이 뛰어난 팀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축구는 결국 골이 터져야 승리합니다. 저는 이번 주도 잠실로 갑니다. 부천과의 경기는 오히려 골이 없어도 뉴스거리가 되거든요. 그래도 기왕이면 골이 터졌으면 합니다. 기사는 제가 어떻게든 쓸테니 골을 넣어주세요. 부디 '노골' 400분은 넘기지 않길 바라봅니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