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밖에 모르는 서울 바보 고요한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FC서울은 화려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긴 다리로 낫처럼 상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는 오스마르, FC서울의 종교이자 상징 박주영, 시즌마다 두 자릿수 득점을 해주는 살아있는 전설 데얀… 한편 오직 서울만을 위해 뛴 이 선수는 상대적으로 헤드라인에 등장한 횟수가 적었다. 서울밖에 모르는 '서울 바보' 고요한이다.

계속 함께 자리를 지킬 것 같았던 고명진마저 팀을 떠났지만 고요한은 서울에 남았다.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디도 8년을 뛰었는데 그는 2004년 FC서울에 입단하고 자그마치 14년째 뛰고 있다. 고요한은 잦은 포지션 변경에 한때는 부진에 빠져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귀신같이 공간을 찾아서 파고드는 자신의 플레이처럼 이번 시즌도 선발 명단의 한자리를 꿰찬다.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해낸다. 'FC서울'이라는 수식어 말고는 그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인천전 선제골 기록한 FC서울 고요한 ⓒ SPOTV 중계화면 캡쳐

고요한은 또 서울을 구했다

서울에서만 300경기 이상을 뛴 고요한은 서울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마다 서울을 구했다. '서울극장 극장골'하면 고요한이다. 너무 많으니까 대표적인 세 경기만 읊자. 그는 2013년 4월 강원에 0-2로 뒤쳐지던 후반전, 추격골과 동점골을 기록한 후 역전골을 도우며 팀을 패배의 수렁에서 구해냈다. 2014년에는 수원 삼성과의 슈퍼매치에서 0-0으로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을 당시 후반 추가 시간 수비 뒷공간을 찾아 들어가며 결승골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AFC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연장전에서 연장 후반 추가 시간에 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부차기로 이끌더니 결국 승부차기 최종 스코어 7-6으로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서울은 최근 포항과 제주를 연달아 잡으며 2연승을 거두고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서울은 강팀만 이긴다는 '강팀 판독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다. 유독 서울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인천을 맞아 3연승을 달성해야 진짜 분위기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황선홍 감독도 비장한 표정으로 "강팀, 약팀,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라고 밝혔다. 황 감독은 더불어 인천전을 준비하며 "기선을 제압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요한은 황 감독이 밝힌 '기선제압'을 결과로 만들었다. 전반 6분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헤더로 정확하게 인천 골망을 흔들었다.

고요한은 주세종에게 크로스를 달라고 손짓하고 김동민을 어깨로 툭 치더니 바로 뒤로 빠져들어 가 공에 머리를 맞추며 골을 기록했다. 고요한의 골에 부담을 던 서울은 인천을 완전히 제압하며 4골을 더 넣었다. 이쯤 되면 좀 으쓱해질만도 한데 고요한은 주세종을 칭찬했다. 자신은 그저 "공간이 있길래 '좀' 파고 들었다"라고 말하며 "(주)세종이 킥이 워낙 좋아서 내 머리에 맞춰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요한은 키가 크지 않다. 헤더 골이 "4번째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수비수는 당신이 헤더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는 기자단의 질문에 머쓱해 하며 "안보였었나보다"라며 농담을 던졌다. 서울을 위기에서 구하며 3연승을 이끈 골을 기록했는데 그저 '허허'하고 웃었다.

인천전 선제골 기록한 FC서울 고요한 ⓒ SPOTV 중계화면 캡쳐

고요한은 또 빈자리를 채운다

서울은 시즌마다 꼭 한 포지션에 대한 고민이 커지곤 한다. 2013년 차두리가 서울에 입단하기 전까지 서울의 오른쪽 수비는 늘 골칫거리였다. 최용수 감독은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고요한을 과감히 수비로 내렸다. 고요한은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정말 열심히 뛰었다. 수비할 땐 상대 윙 포워드들을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서울이 공격 작업을 펼칠 땐 어느새 최전방까지 전진하며 공간을 찾는 고요한을 볼 수 있었다. 고요한은 2012 시즌동안 윙백으로서 서울 측면을 지킨 보상으로 국가대표까지 뽑혔다.

서울은 현재 부상으로 신음하는 선수들이 많다. 하대성은 몸이 완벽하지 않다. 이명주도 재활을 선택하며 시즌 막바지에나 돌아올 것으로 알려졌다. 고요한은 이 빈자리를 또 채워줬다. 그것도 어설프게 자리만 차지하지 않았다. 중원을 높은 활동량으로 커버하며 서울의 3연승을 이끌었다. 제주를 상대할 때는 제주의 패스를 죄다 쓸어 담았고 팀의 공수를 연결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인천을 상대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반에 교체되기 전까지 전후좌우 뛰어다니며 서울 살림에 힘을 보탰다. 후반 12분에는 데얀을 향해 그림 같은 롱패스를 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황선홍 감독은 최근 공격과 수비에 변화를 주며 선수단의 체력을 안배하고 있다. 언론은 매번 "박주영이냐, 데얀이냐"를 질문한다. 그러나 서울이 3연승을 거두는 동안 고요한은 계속 뛰었다. 황 감독은 그런 고요한에게 "미안하지만 계속 그렇게 고생해줬으면 한다"라는 진담 섞인 농담을 하며 그를 향한 전폭적인 신뢰를 나타냈다. 고요한도 "감독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항상 서울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발 벗고 나서준다.

인천전 선제골 기록한 FC서울 고요한 ⓒ SPOTV 중계화면 캡쳐

고요한은 또 팀만 생각한다

한 팀에서 오래 자리를 지키며 뛰는 것도 대단한데 고요한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살림꾼까지 도맡았다. 그는 윙 포워드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팀에서 "윙백이 필요하다"라고 하면 윙백이 됐고 "중앙 미드필더가 필요하다"라고 하면 중앙 미드필더가 됐다. 이렇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하는 말을 들으면 짜증 날 법도 한데 그는 "네" 한마디 하며 순순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이번에는 하대성, 이명주를 대신하는 역할을 맡았다. 고요한은 명백하게 "(이)명주나 (하)대성이형과 내 스타일은 다르다"라고 얘기하며 자신은 "체력적인 부분을 잘 살려 저돌적으로 플레이하며 공간으로 많이 빠지려고 한다"라고 그들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어 이상호와의 스위칭, 측면 수비수들의 자리를 조절한 모습에 대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기 때문에 도와주는 플레이가 편하다. 황선홍 감독님이 중원에서 풀어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잘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최근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설명했다.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워낙 포지션 변경이 많다 보니 "아, 이 자리는 고요한 자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팀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고 싶을 때마다 "이것도 하나의 좋은 기회다. 그리고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고요한은 이런 마음가짐이 "여태 FC서울이라는 팀에서 버티고 있는 힘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말 서울밖에 모르는 서울 바보다.

사람들은 곧잘 그를 '언성 히어로(unsung hero)'라고 표현한다. 팀에서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그런 그를 밖으로 꺼내보고 싶었다. 2004년 구단에 입단하고 14년째 팀의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아직도 '보이지 않는 영웅'이라니. 그러나 그는 또 팀을 챙겼다. 고요한은 "어느 선수나 골을 넣으며 튀고 싶어 하지만, 나는 일단 경기에 나가서 팀이 이기는데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팀이 많이 개편된 상황에서 후배들이 박주영이나 곽태휘 얘기만 하더라는 질문에도 "형들이 워낙 경험도 많고 잘 컨트롤 해준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롤모델을 묻는 말에 그는 "항상 이니에스타"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팀을 위해 헌신하는데 스포트라이트는 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는 모습이 약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이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잘 이어가고 싶다"고 전하며 "전북전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선홍 감독 또한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 경기 체력 안배를 위해 후반에 고요한을 뺐다"라며 그를 향한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고요한이 팀에 꼭 필요하다"라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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