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위기 탈출을 위해 잔류 전문가 이윤표 선생을 모셨습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인천은 매력적인 팀이다. 항상 강등권에서 생존경쟁을 하면서도 늘 살아남아 '생존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난 5월 12일 <스포츠니어스>가 실시한 '100초 토론' 설문조사 결과에도 63%의 축구 팬들이 "인천은 K리그 클래식에서 잔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때만 해도 인천은 긴 부진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도 팬들은 인천의 '잔류'를 확신했다. 그리고 인천은 지난달 24일 울산 현대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꼴찌 탈출에 성공하더니 광주FC에도 승리하며 강등권을 벗어나 10위에 안착했다. 인천의 반등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대표팀을 비롯해 위기에 빠진 팀들이 많다. 광주는 최근 9경기 동안 승리가 없다. 대구FC, 서울이랜드FC도 최근 5경기 동안 승리가 없다. 안양FC는 최하위 대전시티즌에 패하면서 무승 기록을 6경기로 늘렸다. 팬들은 답답하다. 해결책을 찾아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윤표는 매년 치열한 잔류경쟁을 하는 인천에서 7년 동안 인천의 뒷문을 지켰다. 이쯤 되면 '잔류 전문가'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에게 위기 탈출 비법을 물었다.

그 많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는 계속 인천에서 뛰고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제공

위기 탈출 비법 1. 포기하지 않는 투혼, 'Keep out Spirits up'

이윤표가 밝힌 첫 번째 위기 탈출 비법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이었다. 이윤표는 "인천은 솔직히 스쿼드가 두터운 팀이 아니에요. 팀에 중심이 되는 선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선수들이 하나하나 이뤄나가야 할 부분이에요. 힘든 상황이지만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보기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라며 경기가 끝난 후에도 투지를 보여줬다. 그는 광주전 승리 이후에도 "다음 주 대구전은 저희가 한 단계 더 올라갈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만 승리를 만끽하고 내일부터 또 승리를 노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다음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팀이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승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인천의 반등이 시작됐다"라고 말해도 그는 "아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점을 더 쌓아야 해요. 여름에 많이 이겨서 순위를 올려놓아야죠.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전했다.

위기 탈출 비법 2. 영웅이 아닌 'One Team'

팀이 부진한 상황에서 반전을 일으킬만한 영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남 드래곤즈의 연패를 끊어낸 최재현, 수차례 극적인 골로 FC서울을 수렁에서 구해낸 고요한, 팀이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을 수 있는 박지성 같은 존재. 이기형 감독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힘들 때마다 이윤표를 찾는다"라고 밝혔다. 인천의 반등은 이윤표라는 영웅이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윤표의 대답은 영웅을 찾던 이들을 머쓱하게 했다. 그는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팀이 상승세를 탄 이유는 "팀이 하나가 된 것이 포인트고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가 두 번째로 밝힌 위기 탈출 비법은 영웅이 아니었다. 바로 'One Team'이었다. 광주 남기일 감독도 잔류를 위한 전략이 있냐는 질문에 "전략보다도 팀을 더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기형 감독이 이윤표에게 요구한 것도 선수단의 '응집'이었다. 이기형 감독은 이윤표에게 선수단을 하나로 묶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윤표도 이에 공감하며 선수단을 하나로 묶으려 노력했다. 그는 "작년에도 (김)태수형님, (조)병국 형님이 팀을 하나로 잘 이끌어 주셨어요"라고 전하면서 "최고참이 올해가 처음이라 초반엔 힘들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선수들이 서로 생각하고 의지하는 부분이 생기더라구요"라고 밝혔다. 얇은 스쿼드에도 끈끈하고 열정적인 축구를 보여준 인천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많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는 계속 인천에서 뛰고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제공

위기 탈출 비법 3. 희생과 존중, 'Respects for All'

그는 팀을 위해 희생했다. 이윤표가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 이기형 감독은 미안한 마음에 그에게 전화까지 하며 신경을 썼다. 그래도 자신은 괜찮았다고 말했다. 울산 현대 원정을 앞두고 이기형 감독이 그를 찾았을 때는 "진심으로 팀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잘되는 팀에 있는 선수들의 공통점을 '희생'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축구 외적으로 시끄러운 전북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이유도 팀의 주축이 되는 선수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노장 선수들이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희생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다 보니 어려운 시기에도 쉽지 않은 경기들에서 이길 수 있었지 않았나, 그렇게 승리를 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지요"라며 팀이 성공 가도를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을 밝히기도 했다.

희생은 곧 존중으로 이어졌다. 이윤표는 광주전에서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김도혁을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찼다. 그는 "(김)도혁이가 워낙 잘해요. 주장으로서 충분히 자질이 있는 선수예요. 도혁이가 복귀하면 팀을 더 잘 이끌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에요"라며 팀의 주장을 치켜세웠다. 그는 이어 "도혁이가 도움이 필요 할 때 뒷받침이 돼줄 수 있는 형이 되어야죠"라고 전했다. 철저하게 뒤에서 서포트 하겠다는 희생과 존중의 마음이 드러났다.

이윤표는 팀의 주장뿐만 아니라 상대 팀의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는 광주전이 "6점짜리 경기"였다며 "광주도 너무 멋진 경기를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종료 휘슬이 울릴 때 주저앉은 광주 선수들을 토닥이며 독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팀을 위한 희생은 상대 팀에 대한 존중까지 이어지며 왜 인천이 잘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위기 탈출 비법 4. 퍼포먼스의 진화, 'Evolution of Performance'

이윤표는 수비수다. 인천 팬들에게 '미추홀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광주전에서 그의 별명과 포지션에 걸맞게 광주의 화끈한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는 결과에 힘을 보탰다. 광주는 좋은 찬스들을 인천의 수비수들 때문에 다 골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남기일 감독도 "결과로는 졌지만 경기력은 괜찮았습니다. 광주 선수들이 기죽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인천 수비수들의 높은 집중력이 빛났던 경기였다.

이날 K리그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Video Assistant Referee, VAR)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VAR은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아 모두가 반기는 분위기지만 수비수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 고요한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승기의 팔을 잡아당겨 전북에 PK를 헌납했다. 그러나 이윤표는 수비수로서 VAR을 동기부여로 삼았다. 위축되기는커녕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VAR을 의식하고 선수 피하고, 공 피하고, 몸싸움 피한다면 축구선수 그만둬야 합니다"라고 강하게 얘기했다. 이어 "오히려 VAR 때문에 경기 집중력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축구판에 발맞춰 그도 진화하고 있었다. 불리할 수도 있는 상황을 역으로 유리하게 이용했다. 그가 밝힌 네 번째 비법이었다.

그 많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는 계속 인천에서 뛰고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제공

위기 탈출 비법 5. 승리를 향한 축구, 'Achieve Winning'

광주전이 끝난 믹스드존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인천의 락커룸에서는 환호 소리가 들렸다. 이윤표를 비롯한 인천의 선수들은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그만큼 승리가 소중했다. 이윤표는 광주전 승리 요인을 "저희가 준비도 많이 했고 그만큼 경기장에서 하고자 했던 것들이 잘 나타났습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준비는 이기형 감독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기형 감독은 "광주는 전방에 공격 가담 숫자를 늘리면서 패스로 풀어가요. 그만큼 뒷공간이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수비 안정감을 가져간 후에 발 빠른 선수들의 단순한 공격으로 역습하길 원했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승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기형 감독의 접근이 잘 맞아떨어졌다. 광주는 4-1-4-1 포메이션으로 끊임없이 인천을 공격적으로 위협했다. 반면 인천은 백3로 대처하며 한껏 웅크려있다가 전방으로 빠르게 공을 배급했다. 발이 빠른 김용환과 웨슬리는 틈틈이 역습 기회를 엿봤다. 김용환의 선제골은 측면으로 침투한 김진야의 크로스에서 나왔다. 인천은 승리를 위한 초석을 단단히 다졌고 그 결과를 가져왔다. 이윤표는 공격수들을 믿고 수비라인에서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광주 송승민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을 때도 몸을 날려가며 송승민의 슈팅을 막아냈다.

그의 간절함이 승리를 원했고 승리를 만들어냈다. 홈에서 첫 승리를 거둔 그는 환호하던 팬들의 얼굴 또한 승리를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는 "팬들도 너무 좋아해 주시니까 저도 기쁩니다. 다음 대구전도 승리해서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하겠습니다"라고 전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믹스드존을 빠져나갔다.

그의 위기 탈출 비법에는 한국 축구의 철학이 담겨있다

지난달 30일 파주NFC에서는 의미 있는 세미나가 열렸다.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는 '2017 제1차 KFA & K리그 유소년 육성 세미나'를 개최하며 한국 축구의 철학을 세웠다. 필요한 작업이었고 의미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협회는 전술적 틀로 골키퍼를 포함한 1-4-3-3을 제시했다. 한국 축구를 관통하는 철학은 'KOREA'라는 스펠링에 맞춰 소개됐다. ▲Keep out spirits up(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축구) ▲One team, One goal(팀으로 하나 되어 도전하는 축구) ▲Respects for all(우리 모두를 존중하는 축구) ▲Evolution of performance(흐름을 선도하는 창의적인 축구) ▲Achieve winning(승리를 향한 감동축구)이 그것이다.

이윤표와의 인터뷰를 조목조목 따져보니 협회가 발표한 한국 축구의 철학과 맞아 떨어졌다.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협회가 제시한 철학은 이윤표의 위기 탈출 비법과도 일맥상통하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위기에 빠진 대표팀과 부진을 이어가는 다른 팀들도 이 철학 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윤표의 말처럼 시즌은 아직 반 정도가 남았다. 어쩌면 인천은 다시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존왕' 인천에서 7년간 뛰고 있는 '잔류 전문가' 이윤표의 말이니 믿어도 되지 않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인천 팬들의 걸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게 난다."

intaekd@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