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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포항=홍인택 기자] 오범석이 포항스틸야드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포항에서 축구를 시작한 오범석을 포항 구단이 따뜻하게 보내줬다.

오범석은 4일 포항스틸야드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1 2021 포항스틸러스와 FC서울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섰다. 보통 은퇴식을 치르는 선수의 경우 후반 교체투입되는 경우가 많지만 오범석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팬들 앞에서 일찌감치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오범석의 선발 투입은 미리 포항 구단이 짜 놓은 시나리오의 일부였다.

이는 전반전부터 드러났다. 오범석의 등번호는 14번이다. 전반 14분 포항스틸야드에 모인 포항 팬들은 구단의 안내에 따라 오범석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다. 그 전까지 접혀있던 오범석의 대형 걸개도 때마침 N석에 넓게 펴졌다. 처음 포항을 떠날 당시 잡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범석은 포항 성골이다. 이번 시즌 다시 포항에 합류하고난 뒤 팀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고군분투하면서 포항 후방을 지켜줬다. 팬들의 차가웠던 마음도 어느 정도는 따뜻하게 녹아 내렸다.

전반 32분 오범석이 교체아웃 될 때는 포항 선수들 뿐만 아니라 FC서울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서울 선수들은 오범석을 향해 박수와 포옹을 보냈다. 오범석은 모두와 인사를 나누면서 터치라인 밖으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터치라인 밖을 빠져나간 뒤에는 안익수 감독 또한 오범석과 포옹하는 모습도 나왔다. 물론 김기동 감독과도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벤치로 들어왔다.

오범석은 교체 아웃 당시 연출된 장면에 대해서 "나는 이런 걸 외국에서나 봤다. 내가 꿈꿔왔던 은퇴식이다.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준비해준 포항 구단에 고맙다"라고 전하며 감격한 모습이었다. 오범석이 벤치로 들어온 뒤 포항이 선제골을 넣고 전반전을 마무리했을 때까지는 포항이 준비한 구상대로 잘 흘러갔다.

포항 측 관계자는 경기 전부터 취재진에 양해를 구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 일정을 미리 공지했다. 다른 날과는 다르게 오범석을 위한 행사를 모두 기획했던 포항 구단은 "경기 후 원정팀 안익수 감독 기자회견을 빠르게 진행한 뒤 시즌 마무리 인사와 은퇴식을 치르고 김기동 감독과 오범석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라고 알렸다.

포항이 오범석을 위해 다양하게 이벤트를 기획한 이면에는 공교롭게도 선수의 빠른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기동 감독은 "선수라면 모두 나이가 들어도 '더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범석이는 경기력이 안올라오면서 '자신에게 용납이 안된다'라고 하더라. 미리 말해줘서 구단도 준비를 할 수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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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범석은 은퇴를 결심한 시기에 대해 "여름이었다"라고 답했다. AFC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면서 종아리 부상을 당했는데 그 이후 본인의 경기력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 오범석은 "내가 원하는 축구 수준에 내 몸이 다다르지 못하더라"라며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전했다.

오범석은 경기 후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한동안 눈물을 참느라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오범석은 "포항 유스 출신으로 항상 스틸야드에서 경기를 보면서 컸다. 그랬던 아이가 19년 동안 축구를 하고 포항에서 은퇴를 하게 됐다. 19년 동안의 선수 생활이 순식간에 지나가더라"라며 울컥했던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팬들은 그런 오범석에게 "울지 마"라며 격려했다.

은퇴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포항 관계자도 이날 따라 많은 감정이 섞인 듯 보였다. 평소 청산유수와 같이 회견을 진행하던 관계자는 오범석의 은퇴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의미 있는 단어를 찾고자 말을 버벅이면서 오범석과 취재진에게 한차례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은퇴 기자회견이 모두 끝난 후에도 오범석과 서포터의 만남을 주관하러 일찍 자리를 떠났다. 포항은 이렇게 유스 출신의 선수에게 감동을 안겨주며 그의 선수 생활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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