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C안양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FC안양의 창단멤버 주현재가 은퇴식을 치렀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주현재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지난 20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FC안양과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가 열리기 전, 특별한 행사가 마련됐다. 안양의 창단 멤버이자 주장으로서 활약했던 주현재가 33살의 나이에 축구화를 벗기로 해 구단이 은퇴식을 준비한 것이다. 그동안 찾아가서 인사만 하면 안양에서 일어난 주요 소식들을 바쁘게 읊어주던 구단 관계자도 이날 만큼은 "주현재의 은퇴식 준비에 매우 바쁘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 정도로 주현재의 존재는 안양에 있어서 각별했다. 2013년 안양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때로는 공격 포인트도 기록했고 때로는 수비 진영에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등 많은 기여를 했다. 잠시 군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나고 원소속팀을 상대로 골을 넣으며 무의식(?)중에 세레머니까지 한 이야기도 있다. 주현재가 제대하자마자 15시간 만에 선발 명단에 포함시키기 위해 구단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 이야기도 있었다. 2018년 주장으로 선임되고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킬레스가 끊어지는 큰 부상으로 잠시 운동장을 떠났지만 2019년에도 다시 주장으로 임명되며 팀의 큰 신뢰를 받았다.

하지만 아킬레스 말고도 다른 잔 부상이 그의 선수 경력에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운동장에서 주현재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현재는 구단과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였다. '창단멤버'라는 팀의 상징성을 떠나 '인간' 주현재로서 안양에 헌신하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선수단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은 주현재를 이야기할 때 "개인보다 팀을 위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주로 한다. "프로에서 이런 선수는 본 적이 없다"라는 말도 덧붙인다.

보통 하프타임 때 치러지는 은퇴식과는 달리 모든 관중들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주현재의 은퇴식은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 치러졌다. 안양 구단이 준비한 팀 동료, 관계자, 부모님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틀었고 최대호 안양 시장과 서포터즈 대표가 직접 공로패와 꽃다발을 전달했다. 주현재는 안양 경기장 사면을 돌며 팬들과 직접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주현재가 경기장을 도는 동안 선수들도 입장을 준비하며 주현재와 인사를 나눴다. 주현재는 특히 골대 뒤쪽에 있는 서포터즈들에게 큰절로 인사했다. 서포터즈도 박수와 클래퍼로 화답했다. 뒤이어 홈 팀 라커룸에서 빠져나오는 코치진과도 인사를 나누고 다른 팬들에게도 인사를 하며 본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전반 16분에는 주현재를 위한 1분의 기립 박수 시간이 있었다. 주현재는 처음엔 어쩔 줄 모르다가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자기도 박수를 쳤다. 그렇게 온전히 주현재를 위한 시간이 지나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날 안양이 대전에 0-1로 패배하면서 주현재와 함께 선수들이 승리 사진을 찍지 못한 점이다. 이날 결승골을 기록한 박진섭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곧바로 주현재를 찾아갔다. 팀의 결과가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주현재의 표정에는 여전히 감격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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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현재에게 본인은 어떤 선수였는지 물었다. 주현재는 "착한 척하고 겸손한 척하려는 건 아니다"라면서 "내 능력보다 더 인정받고 더 사랑받는 선수였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주현재는 이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잘했던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출난 것도 없다. 특출난 게 없으니까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했다. 개인적인 걸 버리고 팀에 필요한 걸 찾아서 하려고 했다. 그게 내가 살아남을 길이었다"라고 말했다. "팀에 헌신하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라고 하자 "그냥 모르겠다. 안양은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팀이고 내 팀이었다. 내가 선수를 그만두고 다른 팀을 갔더라도 사랑하는 팀으로 기억에 남았을 거다"라고도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안양 서포터스에게 큰절한 장면을 묻자 뒷이야기를 전했다. 주현재는 "원래는 은퇴식에서 마이크를 한 번 준다고 했었다. 그동안 내가 서포터스나 구단주님, 단장님께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다. 어쨌든 자리가 마련된다고 하니 미리 감사의 말을 준비했는데 뭔가 꼬여서 마이크가 안왔다. 그렇게 서포터스석을 갔는데 그냥 순간적으로 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이크도 없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데 뭔가 표현해야겠다 싶어서 그렇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를 많이 못 뛰지 않았나. 그래서 더 팬들에게 감사했다. 안양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아껴주고 잘 대해주셔서 더 고맙다"라고 전했다.

주현재는 "사실 은퇴식 제안에 망설였다"라고 했다. 그는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난 국가대표를 하거나 이런 선수가 아니다. 은퇴식의 의미가 퇴색될까 봐 '사양을 해야 하나' 했는데 구단과 팬들이 생각을 많이 해주신 거 같더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은퇴식을 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래서 은퇴식을 준비할 때도 안 운다고 호언장담했다. 절대 우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감동 분위기도 연출하지 말라고 했는데 은퇴식 영상을 보면서 좀 찡하더라. 울뻔했다. 겨우 참았다"라면서 "안양이 그런 거에 엄청 신경 쓴다. 스토리라고 해야 하나.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게 있다. 다른 선수들도 팀을 나가거나 그만두더라도 FC안양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은퇴를 결정한 건 결국 아킬레스 부상 여파다. 그때부터 주현재는 "재기 못 하면 언제든 그만둬야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으로는 복귀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회복하고 재활하는 과정에서 다른 잔 부상이 계속 따라왔다. 경기를 뛰지 못하는 동안 주현재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해왔다. 2019 시즌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도 경기에 나서지 못할 때 "기분은 좋았지만 '오늘 나는 뭐 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심적으로 힘들었다"라고 회상했다. 동시에 "다음 팀이 없을 수도 있겠다. 안양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다. 프로 선수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도 했다.

2021 시즌이 되자 안양은 창단 당시 초대 감독이었던 이우형 감독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주현재는 "한편으로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선생님을 위해 마무리를 좋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 번 운동장에서 재기하는 것도 생각했는데 감독님도 그렇고 구단에서도 그렇고 좋은 제의를 해주셨다. 그래서 진지하게 은퇴를 생각하게 됐다. 구단에서 좋게 얘기해줬다. 그래서 결정하게 됐다"라며 은퇴를 결정한 마음을 전했다. 은퇴를 결정한 뒤 주현재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동안 자신을 지도해준 지도자들에게 모두 연락을 돌렸다. 은퇴 이후 구단에서 제의한 제2의 진로에 관해서도 빠짐없이 알렸다.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잘됐다"라며 덕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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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재는 이번 시즌부터 구단의 스카우트로 일한다. 다행히 선수 은퇴와 동시에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안양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팀을 지원했던 주현재의 노고를 구단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우형 감독을 비롯한 구단 인사들이 은퇴를 앞둔 주현재에게 스카우트 자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현재는 "감사한 일이다. 프로 엠블럼을 달고 제2의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게 진짜 쉬운 것도 아니다"라면서 "선생님들이 내 장래를 많이 생각해주셨다. 학창 시절 지도자분들도 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 잘됐다는 이야기를 엄청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오래 버텼나? 빨리 그만두기를 원하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웃었다.

이렇게 '선수' 주현재의 축구 인생은 막을 내렸지만 동시에 주현재의 축구 인생 '제2막'이 시작됐다. 뒤에서 묵묵히 팀을 위해 헌신하던 '선수'는 이제 '인간'으로서 똑같이 팀을 위해 헌신할 예정이다. 이미 은퇴와 동시에 FC안양 스카우트라는 명함도 새로 받았다. 최근 주현재는 선수 시절의 긴장감을 내려놓은 탓에 야식과 함께 맥주를 즐기기도 하면서 체중이 10kg 늘었다. 그래서 "한두 달간 너무 좋았다. 살이 찌는 데 한도가 없더라. 그래서 요즘은 조금 자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달 뒤에는 아빠가 될 예정이다. 축구 인생뿐만 아니라 주현재의 인생에도 2막이 시작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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