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승부조작범의 은퇴식까지 치러준다고?


조형익은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식을 치른다. ⓒ천안시청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2011년 한국 축구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바로 승부조작 파문이었다.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승부를 조작했고 이로 인해 한국 축구는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 남겨진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뛰었고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선수들의 부모는 구치소 주변을 매일 같이 청소하며 잘못 키운 자식의 죄를 대신 사과했다. 승부조작 가담자 중에는 목숨을 끊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많은 게 안정됐다. 승부조작 이후 퇴출된 선수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갔다. 쇼핑몰을 차려 대박이 난 선수도 있고 지금도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이도 있다. 개명을 해 과거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도 많다. 대한축구협회는 영구 퇴출 징계를 받은 이들에 대해서는 축구계에 종사할 수 없도록 했지만 자기 이름을 걸고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이들도 꽤 있다. 협회가 강제할 수 없어 눈 뜨고 보고만 있는 상황이다.

승부조작 일으킨 조형익, 오늘 은퇴식 한다고?
승부조작범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축구교실까지 한다는 게 화가 나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눈 감아 주는 분위기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들의 지도자 활동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칼럼을 쓰려다가 ‘그 사람들도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는 생각에 접은 적도 있다. 물론 내가 자식을 낳으면 나는 절대 승부조작을 한 이들이 하는 축구교실에 우리 아이를 보낼 생각은 없다. 승부조작범들이 축구계에서 일하는 건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또 한 번 화가 나는 일이 벌어질 예정이다. K3리그 천안시청의 조형익이 성대한 은퇴식을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형익은 승부조작 가담자로 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사회봉사 200시간, 보호관찰기간 2년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연맹이 명한 사회봉사 활동을 준수하고 보호관찰기간을 성실히 이행했으며 자진신고 했다는 이유로 보호관찰기간이 2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었다.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선수가 그라운드로 복귀한 것이었다.

당시 조형익을 비롯해 오주현(제주), 안현식(경남FC, 고양 Hi FC, 강원FC, 서울이랜드) 등이 승부조작을 저지른 뒤 복귀했다. 안현식은 이후 안지호로 개명했다. 조형익은 징계가 풀린 뒤 대구로 복귀해 2년을 뛰었고 이후 내셔널리그 대전 코레일로 이적했다. 그리고 2017년 천안시청에 입단해 4년을 뛴 뒤 이번에 은퇴를 결정했다. 승부조작을 저질렀지만 단순 가담자라는 이유로, 성실히 보호관찰기간을 이행했다는 이유로, 자진신고했다는 이유로 선수 생활을 꽉 채울 수 있었다.

천안시청, 조형익 위한 사진전까지 개최
조형익은 올해 36세다. 승부조작범이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나이를 꽉 채워 은퇴한다는 건 화가 나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 천안시청은 보도자료까지 내며 그의 은퇴식 소식을 알렸다. 천안시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영원한 맏형’ 조형익의 은퇴식을 연다”면서 “조형익은 개인 통산 255경기 35골 29도움을 가진 공격수로 그의 커리어의 시작은 대구FC였다. 2008년 대구에 입단해 2014년까지 프로 통산 169경기 21골 19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던 중 그가 실업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건 2015년으로 대전한국철도를 거쳐 2017년 천안시축구단에 입단했다”고 그의 경력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경력에서 승부조작 적발 이후 징계로 뛰지 못했던 2년 넘는 시간은 아예 설명을 생략했다. 천안시청은 “천안에서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형익은 69경기에 출전해 8골 7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다”면서 “항상 맏형으로서 솔선수범했던 조형익은 2019년에는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헌신하는 모습과 그라운드 위에서 늘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천안에서 행복했던 추억을 뒤로한 채 은퇴를 결정한 조형익은 양주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매듭짓는다”고 전했다. 누가 보면 조형익이 축구팬들의 박수를 받을 만한 훌륭한 선수라고 받아들일 만하다.

심지어 천안시청은 오늘(31일) 열리는 양주와의 경기에서 조형익의 사진전을 준비했다. 은퇴 기념 사진전은 오후 12시부터 관람객 출입구에서 진행되며 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받아 경기가 종료된 후 조형익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공식 은퇴식도 하프타임에 진행된다. 3D 피규어로 만들어진 공로패와 기념액자, 가족들과 함께하는 사진촬영, 기념영상 감상 순으로 진행된다. 진작에 축구계를 떠났어야 할 선수가 선수로서의 생활은 다 누리고 성대한 은퇴식까지 치르며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게 황당하다.

시간이 지나도 잊어서는 안 될 ‘그 일’
단순 가담자이면서 자진신고를 했으니 정상이 참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죄도 아니고 승부조작을 저질렀던 축구선수가 은퇴식까지 치른다는 건 축구에 대한 모독이다. 2011년 당시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고 가슴 아파했다. 화도 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이 승부조작 가담자가 성대한 은퇴식까지 치르는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런 기본을 벗어나면 언제든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가뜩이나 K리그에 황망한 소식이 전해져 다들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이런 시기에 뭐가 잘났다고 승부조작범의 은퇴식가지 열어준단 말인가.

승부조작을 저지른 뒤 축구계를 떠나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이들을 보면 여러 감정이 든다.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에서는 잘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들은 영원히 축구를 떠나야 하는 큰 죗값을 치렀다. 축구계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들에게는 인간적으로 응원을 보낸다. 그들도 사람인데 축구계를 떠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10년 전 그 당시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지만 그래도 축구계를 떠났으면 다른 일은 꼭 잘 풀리길 응원한다.

하지만 은퇴식까지 여는 선수는 응원할 수 없다. 승부조작을 저지르고도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조용히 떠나야 한다. 그 누구도 승부조작을 저지른 이들에게 축구로 속죄하라고 한 적 없다. 이기적인 선수 생활이 끝났으면 10년 전 그때 그 기억을 꺼내기 싫으니 그냥 조용히 퇴장 했으면 한다. 또한 이런 은퇴식을 계획한 천안시청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승부조작범에 대한 축구팬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고 있다면 이런 행사는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 시즌 천안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한 김준태도 이날 은퇴식을 치른다. 그는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선수였다. ⓒ천안시청

진짜 관심 가져야 할 건 김준태의 은퇴식
이날 조형익 외에 한 명의 선수가 더 은퇴식을 연다. 이 선수의 은퇴식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바로 김준태다. 2008년 창원시청을 시작으로 성인 무대에 데뷔한 그는 이후 강원FC, 고양Hi FC, 서울이랜드 등을 거치며 프로 무대에서 107경기 3골 9도움의 기록을 쌓았다. 이후 화성FC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한 뒤 올해에는 천안시청으로 옮겨 플레잉코치로 일했다. 김준태는 은퇴 후 본격적인 지도자 도전에 나선다. 비록 이름이 많이 알려진 선수는 아니지만 늘 헌신했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던 선수였다.

김준태는 “지난 선수 생활의 모습들을 정리할 수 있는 자리를 갖게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천안의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를 뛰고 은퇴를 한다니 감회가 새롭고 어느 자리에 있든 응원해 주셨던 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라며 소감을 전했고 “앞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지도자가 되도록 노렸하겠다”며 각오도 함께 전했다. 김준태의 은퇴에는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김준태와 조형익이 같은 그라운드에서 은퇴식을 치른다는 건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두 선수의 마지막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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