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지난 시즌 수원FC는 단단히 자존심을 구겼다. 2부리그 팀이고 시민구단임에도 'Again 2016'을 외치며 많은 예산을 투자했지만 리그 8위를 기록하며 팬들을 실망시켰다. 결국 시즌 막바지 김대의 감독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팀을 떠났고 김도균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다.

분위기 변화와 함께 다시 한 번 승격에 도전하는 수원FC다. 하지만 올 시즌 K리그2는 K리그1에서 강등된 제주, 경남이 가세하며 더욱 치열해졌다. 기업구단으로 변신한 대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결국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의 존재감과 활약이 절실히 필요한 수원FC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 팬들의 눈은 베테랑 수문장이자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수원에서만 활약한 박배종에게 쏠린다. <스포츠니어스>는 코로나19로 리그 개막이 연기된 17일 오후, 아직은 박형순이라는 이름으로 팬들에게 친숙한 박배종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코로나19로 개막이 연기된 상황이다. 하지만 시즌이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박배종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훈련 시간이 더 많아졌다. 컨디션 역시 굉장히 좋다"며 운을 뗀 박배종은 "언제 시즌에 돌입할지 모른다. 아마 감독님과 선생님들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실 거다. 그럼에도 우린 프로 선수다. 상황이 이렇게 됐어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선수들도 다들 열심히 하더라. 운동을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근황을 전했다.

박배종은 수원FC의 새 사령탑 김도균 감독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감독님은 체계적이시고 선수들 생각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라고 전한 박배종은 "태국에 전지훈련을 갔을 때도 감독님이 선수들의 고충을 들으려고 하셨다. 커피도 선수들과 함께 마시곤 하셨다. 조직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 수비 공격뿐 아니라 전체적인 경기 조율을 강조하신다. 그래서 선수들도 많이 따라가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올 겨울 수원 선수단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많은 선수들이 떠났고 새로운 얼굴들이 다수 합류했다. 이에 대해 박배종은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어느 팀을 가든 선수들이 많이 바뀌는 것은 흔한 일이다. 2020년을 함께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하나가 되고 조직력과 호흡이 잘 맞으려면 친해지는 게 우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선수들이 어린 선수들부터 고참 형들까지 서로 다가가며 이야기를 하려는 모습들이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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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배종은 수원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지난 2012년 박배종이 입단했을 당시 수원은 내셔널리그에 머물고 있었다. 이후 수원은 프로화를 선언하며 K리그2에 참가했고 박배종 역시 수원과 함께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2016년에는 수원과 함께 K리그1 무대를 누비기도 했다. 현 수원 선수들 중 수원 소속으로 내셔널리그 K리그2, K리그1을 모두 경험한 선수는 박배종이 유일하다.

이에 대해 박배종은 "긴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기분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좋은 일들만 가득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요즘 팀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올해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다들 열심히 운동했다. 빨리 시즌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수원 구단은 오랜 기간 박배종이 보여준 헌신에 수원 시민들을 위해 결번으로 남겨뒀던 등번호 1번을 그에게 부여했다.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프로 생활 내내 수원에만 있었던 박배종을 위한 구단의 배려다. "항상 원클럽맨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박배종은 "팀이 내셔널리그에 있던 2012년 입단했으니 벌써 수원에서 9년차다. 내셔널리그부터 K리그1까지 이 팀에서 모두 경험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어 박배종은 "구단에서 영구결번이었던 등번호 1번을 내게 주셨을 때 정말 감동받았다. 예전에 '왜 형들이 1번을 안 달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수원 시민들을 위해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의미 있는 번호를 내게 주신 것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수원이 승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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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인 박배종이기에 최근 수원의 부진은 그에게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내셔널리그 때부터 함께했던 선수들이 모두 은퇴하고 나만 남게 되었다"는 박배종은 "매년 시즌이 끝나면 팬들이 '어디 안 가시죠?'라고 한다. 사실 지난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아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렇기에 이번 동계훈련은 이 악물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팀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박배종이 올 동계훈련에 전력을 다했던 이유는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올 1월 출산한 첫째 딸 때문이다. 박배종은 "항상 형들이 '총각 때와 결혼하고 나서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거기서 아이를 가지면 마음가짐이 또 달라질 거야'라고도 하셨다. 확실히 아이가 태어나니 책임감이 생기더라. 간절함도 더욱 생겼다. 형들이 이야기했던 게 이해가 되었다"고 답했다.

팀 성적을 이야기할 때 진지했던 그의 목소리는 대화의 화두가 딸로 바뀌자 밝아졌다. "딸이 많이 울지 않는다"며 미소를 지은 박배종은 "아내뿐만이 아니라 아기도 나를 도와주려고 하더라. 아기가 그렇게 많이 울지 않는다. 밥 먹을 때랑 기저귀 갈아달라고 할 때만 운다. 아내도 나보고 몸 관리 잘하고 저녁에 잠 편하게 자라고 방을 따로 쓰게 해준다"고 전했다.

이어 박배종은 "퇴근하고 아기 얼굴을 보면 힐링이 된다. 일을 하고 집에 온 거지 않나. 그런데 집에 왔을 때 아내와 아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집에 왔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집이 안식처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요즘은 솔직히 집에 갈 때가 제일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빠가 되며 큰 변화를 맞이한 박배종은 기존의 박형순이 아닌 박배종이라는 이름으로 올 시즌에 임한다. 개명을 한 이유에 대해 박배종은 "어렸을 때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이름에 '순'이 들어가 있어서 여성스럽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름을 바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딸이 이번에 태어나며 딸 이름과 함께 내 이름도 같이 받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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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과 명예 회복이 절실한 수원이다. 하지만 올 시즌 K리그2는 경남FC, 제주유나이티드, 대전하나시티즌 등 강팀들이 연이어 가세하며 역대급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섣불리 얘기하긴 그렇지만 자신감은 있다"는 박배종은 "시즌은 들어가봐야 아는 것이다. 우리도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팀이다. 실력과 저력이 있는 선수들이 있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박배종은 "우리가 동계훈련을 열심히했다. 다른 팀들은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휴가를 가고 그런다는데 우리는 훈련을 하며 조직력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하고 있다"며 "이러한 노력이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올해는 분유랑 기저귀 값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박배종은 "코로나19 때문에 팬들께서 많이 힘드실 것이다. 빨리 이 사태가 마무리되길 바란다. 또 하루빨리 시즌이 시작되서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 팬들께서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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