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송도=전영민 기자] 이윤표는 명실상부 인천유나이티드의 레전드다. 지난 2011년 인천에 입단한 이윤표는 이후 2019시즌까지 인천에서 활약했다. 그는 인천에서의 9시즌 동안 리그 214경기에 나서며 인천 수비진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난 2019년 구단과 미지급급여 지급으로 인해 소송에 돌입했고 결국 2019시즌 종료와 동시에 인천을 나왔다. 한때 '미추홀 파이터'로 불리며 인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윤표는 조용히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포츠니어스>는 12일 인천 송도에서 이윤표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봤다.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사실 인천과 계약이 끝나고 팀을 찾았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과거 내가 했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인천에서 은퇴하겠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을 한 적이 있더라. 컨디션도 올라오고 있었고 나이도 그렇고 조금 더 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내가 약속했던 건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팀에 가서 애매하게 뛸 바에는 인천에서 은퇴를 하는 게 내 자신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약속도 지키는 것 같아서 선수로는 이제 마무리를 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운동 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운동은 그만뒀지만 몸이 근질근질했다. 근처에 운동할 곳이 없을까 했는데 주변에서 권유를 받아 한 조기축구 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분들이 날 알아봐 주시고 "가입해라"라고 권유를 하셨다. 그래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가입을 했다. K7리그에 속한 아마추어 팀이다.

팀에 대해 구체적으로 더 소개를 해달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무지개라는 팀이다. 회장님도 좋아해 주시고 다들 반겨주셔서 다시 한 번 축구팀에 대한 소속감이 생겼다. 기분이 묘하더라. 주말에 한 번씩 나가서 공을 차고 어른들 만나서 장난도 치고 하고 있다.

일반인들과 축구를 하는 건 처음일 것 같다.

조기축구회지만 잘하시는 분들은 잘하신다. 선수 출신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는데 일단 재밌다. 프로에서 뛸 때는 항상 너무 치열했다. 그래서 짜증도 나고 했다. 그때는 축구가 직업이지 않았나. 생계가 달린 거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일반인들과 축구를 하게 되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너무 재밌다. 조기회 분들이 실수를 하셔도 너무 귀엽다. 70대 분들도 계신다. 열정이 어마어마하시다. 그 나이에 싱글벙글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 내가 저 나이가 되어도 운동장에 나와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배우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되게 많다. 그리고 조기축구팀이지만 어떻게 보면 인천 팀이기도 하다. 너무 재밌다.

지금 팀에서도 센터백으로 활약하나?

그렇게 하면 너무 사기 같아서 하지 않는다. 여기서 센터백으로 뛰면 할 게 많이 없어서 심심하다. 그래서 일부러 공격수를 하고 있다. 내가 공격을 아예 못한다. 평생 수비수만 했다. 내가 공격수로 나서면 조금 레벨이 떨어지니까 다른 분들이랑 상대가 되더라.

어릴 때도 공격수는 하지 않았다. 측면 수비수를 봤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되게 왜소했다. 160cm가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풀백을 보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했다. 무릎 수술을 해서 1년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1년 만에 키가 14cm가 컸다. 웨이트만 하니 덩치가 조금씩 좋아졌다. 정명고등학교 박인천 감독님이 어느날 "센터백을 보라"고 하셨다. 내가 원래 풀백을 할 때도 키는 작았지만 헤딩은 잘했다. 어쨌든 그때부터 줄곧 센터백을 봤다. 대전시티즌 시절에는 김호 감독님이 "풀백을 보라"고 하셔서 풀백으로 나서기도 했다. 나름 스로인이 긴 장점도 있고 해서 측면 수비수로도 곧잘 했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수비수로만 활약했다곤 하지만 프로 선수 출신인데 그래도 슈팅 능력이 다른 조기축구회 사람들하고는 차원이 다를듯하다.

공격적인 센스는 없다. 지금 팀에서 득점 기회가 와도 일부러 골을 넣지 않는다. 회장님이나 다른 분들은 "슈팅 때리라고. 왜 안 넣어"라고 하시는데 그래도 그냥 슈팅 대신 주변 분들에게 패스를 한다. 물론 득점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선 하지만 그렇게 많이 슈팅을 때리고 있지는 않다.

코로나19 때문에 리그가 멈췄다. 우리가 K7리그 팀이기도 하고 선수 등록도 되어있다. 시 대회에 출전을 한다. 시 대회가 끝나면 다른 시 팀들끼리 경기를 한다고 하더라. 거기서 잘하면 다른 팀에서 선수들을 스카웃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사실 주말에 나가서 공을 차는 게 힘들다. 토요일까지 일을 하다가 일요일 아침 새벽 7시에 일어나서 7시 30분까지 가서 몸을 푼다. 태어나서 축구 경기를 이렇게 오래 하는 건 처음이다. 7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축구를 하는데 공을 차는 건지 노동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힘들다. 그래도 경기에 막상 들어가면 재밌다. 처음 한두 번은 재미로 나갔다가 이제 선수 등록을 하고 경기를 뛰니깐 프로에 있을 때 그 느낌이 올라온다.

새로운 운동 센터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천에서 선수로 뛸 때 시즌이 끝나면 운동을 할 곳이 없었다. 특히 인천 같은 경우는 클럽하우스가 없기에 더욱 그랬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할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원래는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다. 은퇴를 하더라도 인천 유스팀에 들어가서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안됐고 상처를 받았다. 은퇴도 했고 '이제 뭘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재밌게 봤다. '스토브리그'가 운영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나. '그걸 보고 그럼 내가 직접 운영을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3개월 동안 센터가 입점할 공간을 찾아다녔다. 우선 송도에서 찾았는데 비싸기도 하고 송도 지반이 갯벌로 만들어져서 건물들이 기둥이 크고 간격도 좁았다. 또 '그래도 인천 레전드 선수가 만드는 센터인데 없어 보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엄청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을 다 다녔다. 송도는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다리 건너 연수구로 넘어갔다. 우연치 않게 연수 롯데마트 옆에 롯데시네마 자리가 있었는데 건물이 높고 넓고 깊더라. 그래서 부동산에 들어가서 여쭤봤더니 "아 거기 2년 전에 망해서 2년 동안 공실이었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대답을 듣고 "아 그러면 거기 들어가서 좀 볼 수 있을까요?"해서 딱 들어갔는데 '아 이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건물주에게 부탁을 했다. 공사가 이번 주에 시작됐다. 어린 아이들부터 프로 선수들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운동을 하고 싶다고 문의가 온다. 나도 인천에 있을 때 2군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때도 운동이 끝나고 나면 운동할 장소가 없었다. 지금 월급을 많이 받지 못하는 프로 선수들이 있다. 그 선수들에게 "와서 운동해라"라고 한다. 공간 자체가 크기 때문에 오전에 할 프로그램도 만들려고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공간이 커서 비용이 많이 들어갔을듯하다.

건물주 분이 많이 이해를 해주셨다. 그래도 비용은 많이 든다. 나도 돈이 많이 있었으면 그냥 했을 텐데 비용 견적도 3~4군데에서 받아서 흥정도 하고 있다. 원가를 절감하고 가격을 측정하고 서비스는 어떻게 할 것이고 홍보는 어떻게 할지 공부하고 있다. 자료도 직접 만들어서 하고 있다.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권정혁 형님도 사업을 하고 계시는데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우선은 자만하지 않고 천천히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다.

사실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초중고 학생들이 운동을 못하고 있다. 한 번은 조기축구회에 나갔는데 근처 중고등학교 엘리트 선수들이 와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네 다치면 안되는데 왜 조기축구회에 나왔냐"고 물어보니까 "운동할 곳이 없어서 왔어요"라고 애들이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무료로 가르쳐주겠다"고 하고 아이들을 일대일로 가르쳐줬다. 이후에 인터넷 카페에다가도 글을 남겼는데 조회수가 엄청났다. "나도 레슨받고 싶다"고 문의가 너무 많이 와서 스케줄이 꽉 찼다. 오전 오후에는 공사 장소에 가고 계속 이것저것 알아본다. 은행에도 간다. 저녁에는 레슨을 한다. 정신이 없다. 바쁘다. 레슨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니까 다른 카페에서도 연락이 오더라.

인천을 나왔지만 은퇴식을 하진 못했다.

은퇴식만 생각하면 화도 나고 안타깝고 억울하다. 내 불찰이다. 팀 탓은 하지 않는다. 아직 구단과 소송 중에 있다. 그 부분은 조심스럽다. 인천을 너무 사랑했고 너무 인천에서 뛰고 싶었고 어떻게든 인천에서 은퇴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수로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남자로서 축구인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소송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 가정의 가장이자 축구인으로서 내가 받아야 할 건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브리그'를 보면서 울었다. 고참 선수들이 연봉 협상을 하며 은퇴를 하네 마네 하는데 그 모습이 내 상황과 데칼코마니 같았다. 드라마 속 고참 선수가 고민하는 것과 내가 그 당시 고민했던 점이 똑같았다. 그 장면을 보며 눈물이 났다. 저 사람의 심정을 내가 겪었기에 얼마나 마음 아프고 자존심이 상했을까 고심을 했을까 눈물이 났다. 거기서 단장이 이런 말을 했다. "선수들이 느끼기엔 저희가 양아치 같았죠?". 이해는 간다. '스토브리그'를 보면서 '구단 운영하기 힘들었겠구나' 이해가 됐다. 다만 이런 상황을 만든 건 구단이었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건 나였다.

연봉 조정 신청을 했는데 조정 결과가 좋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주변에서 후배들도 "형 힘내세요" 응원을 해줬다. 그걸 보고 '그래 나도 돈을 떠나서 이런 선례를 만들어보자'했다. 나름 상처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겉으로는 강해보여도 속으로는 상처를 많이 받는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 나도 자리를 잡고 당당해졌을 때 내가 구단에 은퇴식 요청을 먼저 할 거다. 구단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내가 내 돈 주고 티켓을 사서 경기장에 들어가서 팬들 앞에 서면 된다. 은퇴식이 별 거 있나. 마지막 인사이지 않나. 인사는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카페를 한 채 빌려서 인스타그램으로 "놀러오세요. 저랑 인사 나누시고 담소 나누시죠"라고 할 수도 있다. 이것도 은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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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감독과 불화를 겪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찌라시가 사실이었다면 내가 당당하게 소송을 했겠나. 항명이라고 이야기가 나오는 게 내가 수술을 하네 마네 이거였다. 안데르센 감독이 내년에도 계속 당연히 지휘봉을 잡고 있을 텐데 과연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선수가 경기에 뛰고 싶다면 영어로 욕을 하고 싸우고 그랬겠나.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때까지 허정무 감독님과 김봉길 감독님 등 다른 감독님들 아래에서 경기를 뛸 수 있었겠나.

프로에서 오랜 기간을 뛰었다.

전남에서 1년 대전에서 1년 FC서울에서 1년 인천에서 9년을 뛰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 뛰었다. 엄청 치열하게 했다. 전남에 드래프트 2순위로 갔다가 대전에서 최저 연봉을 받고 뛰었다. 이후에 서울로 갔는데 빙가다 감독님이 좋게 봐주셨다. 그런데 그때 부상으로 6개월을 못 뛰었다. 서울에서 나오고 은퇴를 하려고 했다. 그때 김봉길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다. 인천에 허정무 감독님이 오시면서 김봉길 감독님도 오셨다.

인천에 처음 왔을 때 거의 최저 연봉을 받았다. 이후에 차근차근 올랐다. 중간중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15년에 FA컵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해보지 못했을 경험들을 많이 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하늘을 찍은 거지 않나. 나는 어릴 때부터 바닥과 천장을 반복해서 찍었다. 그래서 모든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12년 프로 생활을 마무리했는데 은퇴 소감을 듣고 싶다.

아직은 소감을 말할 때가 아니다. 은퇴식을 안했기 때문이다. 친구인 황진성도 그렇고 선배들도 그렇고 서로 하는 이야기가 "은퇴식을 해라"라는 것이다. 그래야 미련이 없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은퇴를 했다. 은퇴를 하긴 했지만 요즘도 운동을 열심히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레슨을 한다. 내가 몸으로 보여줘야지 이 친구들도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라면서 받아들인다.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니지만 지금 K3리그와 K리그2를 가도 제 기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량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체력 운동을 하고 공도 차고 있다.

아직은 은퇴라는 말을 정확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은퇴식에서 할 거다. 구단 때문에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인천 팬들이 있어서 내가 있는 거다. 나는 원래 고향이 부천이고 부천이 더 좋다. 이번에 사업도 부천에서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 고향 같은 곳은 인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서 하게 됐다. 요즘 서울이나 김포에 사시는 분들도 "레슨 받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 하지만 "죄송하다"고 거절하고 있다. 인천 분들에게만 레슨을 하고 있다. '인천 분들하고만 레슨을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타지 분들이 연락이 오면 "죄송하다. 센터 오픈하면 나중에 오시라. 그때는 무료로라도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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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떠났다.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그저 눈물나게 감사할 뿐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어느 순간 상황이 되어서 인천에서 은퇴식도 하고 그런 순간이 온다면 "멋진 놈이었네"라는 말을 팬들에게 듣고 싶다. 선수 생활 때 친하게 지냈던 가족 분들이 있다. 아빠, 엄마, 아들, 딸 이렇게 네 분이 경기장에 항상 오신다. 너무 멋있으시다. 나이가 지극하신데 경기장에 오셔서 경기를 보시는 분도 있다. 내가 백발이 되었을 때 손자들과 손을 잡고 인천 경기장에 가서 "내가 여기서 뛰었었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팀들은 성적이 좋아서 팬들이 많이 오시겠지만 인천은 성적이 좋지 않아도 팬들이 많이 오신다. 왜냐하면 인천을 내 팀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멋있다. 너무 존경한다. 평일에 원정 경기를 하면 저녁 7시~8시에 하는데 팬들이 따라오신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에서 지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맨날 질 때는 진짜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뛰었다. 팬들은 그런 존경스러우면서 대단한 존재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상황이 되어서 은퇴식을 하게 되면 인천에서 하게 될 거고 그때 다시 인사드리고 싶다. 이제 선수로 그라운드에 나설 수는 없지만 은퇴 선수로 경기장에 나서든, 열심히 공부해서 감독으로 가든, 혹은 프런트로 가든 운동장에 당당하게 발을 들이고 싶고 그때 팬들에게 박수받고 싶다.

그리고 내가 센터를 열면 굳이 운동을 하러 오지 않더라도 놀러오셨으면 좋겠다. 이젠 '레전드'란 소리가 너무 좋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만한 노력을 했고 가치를 입증했다. 몇 경기만 더 뛰었으면 인천 소속으로 가장 많은 경기를 뛴 선수가 되었을 텐데 기록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팬들에게 감사하다. 팬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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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인천에서의 9년과 프로에서의 12년을 뒤로한 채 이윤표는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선수 이윤표가 아닌 대표 이윤표가 된 그는 수면 시간조차 아껴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젠가 인천 팬들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과연 '미추홀 파이터'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henry412@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