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위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무고사와 김도혁ⓒ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03년 K리그에 새로운 팀이 탄생했다. 바로 인천유나이티드였다. 이 팀은 인천 시민들의 염원 속에 첫 발을 내딛었다. <비상>이라는 영화로 주목을 받기도 했고 요즘에는 ‘생존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끈질긴 수비와 투혼으로 감동을 준다. 벌써 인천이 창단한지도 16년이 됐다. 이 16년의 세월 동안 많은 역사가 쌓이고 쌓였다.

조자경-송익수 부부는 인천유나이티드가 맺어준 커플이다. 이 둘은 창단 당시부터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사랑을 키웠다. 인천의 경기를 응원하다가 커진 사랑으로 이 둘은 2014년 결혼에 골인했다. 인천의 많은 선수와 관계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 부부는 매 시즌 감동적인 경기를 선사한 인천과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지난 시즌까지도 이 둘은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응원했다.

하지만 인천을 15년째 응원해 온 이 둘이 올 시즌부터는 경기장에 통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아내 조자경 씨가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것이었다. 늘 골대 뒤에서 함께 웃고 울던 팬들은 조자경 씨의 쾌유를 진심으로 빌었다. 병문안도 가고 응원의 메시지도 보냈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어제(25일) 故조자경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상주 원정길에 오르려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일단 상주 원정에 함께 하지 않은 팬들이 곧바로 빈소로 향했다. 상주 원정에 오른 팬들은 “오늘은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을 기리자”고 약속했다. 인천유나이티드 서포터스 ‘파랑검정’ 신상우 콜리더는 구단 매니저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경기 전 일렬로 도열해 추모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기회가 된다면 선수들이 이 팬을 추모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단에서도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이라 구단 관계자가 선수에게 일일이 상황을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상주전 킥오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도혁은 경기 후 빈소에 다녀왔다.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구단 매니저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경기 바로 직전 김도혁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워낙 촉박하게 전달된 이야기였고 경기 준비 중이라 김도혁은 제대로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할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바로 경기가 시작됐다. 골을 넣고 고인을 위한 추모 세리머니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경기는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더군다나 원정에서 치르는 경기였고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팀으로서 골을 터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수단 전체에도 이 사실이 전해지지 않았으니 추모 세리머니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경기는 의외로 잘 풀렸다. 무고사가 전반 3분 만에 페널티킥 골로 앞서 나갔다. 무고사는 골을 넣은 뒤 특유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그 순간 김도혁이 무고사에게 말했다. “우리의 팬이 하늘나라로 갔어. 추모하자.” 이야기를 전하자 무고사가 바로 알아들었다. 무고사는 하늘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고인을 추모하는 세리머니였다. 인천은 전반 9분에도 다시 한 골을 뽑아냈다. 이번에도 무고사였다. 이 상황을 잘 알게된 무고사는 한 번 더 두 손가락을 치켜 세운 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봤다.

외국인 선수였지만 무고사는 인천 팬들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평소에도 “우리 팬들은 1부리그에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만큼 무고사는 인천 팬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방금 들은 소식이었지만 진심을 다해 고인을 추모했다. 그와 함께 이 사실을 전해들은 동료들도 세리머니에 합류했다. 좀처럼 터지지 않던 인천 공격이 전반 10분도 되지 않아 두 골을 뽑아냈고 두 번째 골 이후 또 다시 2분 뒤에도 득점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이우혁이 상주 골망을 갈랐다. 이우혁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은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미처 전해듣지 못해 세 번째 골 상황에서는 추모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

김도혁은 경기 후 빈소에 다녀왔다. ⓒ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이렇게 인천은 세 골을 뽑아내며 그동안 응원해준 팬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후반에 두 골을 내주며 가까스로 3-2 승리를 거둔 인천은 이로써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됐다. 하늘로 간 한 팬을 챙기는 또 다른 팬들과 이를 어려운 상황에서도 허투루 듣지 않고 선수들에게 사실을 전달한 구단 관계자, 진심을 다해 추모의 의미를 전한 선수 모두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상주까지 달려간 응원을 한 인천 팬들은 곧바로 인천으로 올라와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김도혁을 비롯한 선수단과 코치진도 함께였다. 하루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훈련에 돌입, 사흘 뒤 강원 원정을 치러야 하는 이들에게 빈소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은 이때뿐이었다. 이들은 피곤함을 무릅쓰고 그 동안 자신들을 응원해준 팬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오늘(26일)은 구단 차원에서도 빈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경기 후 곧바로 빈소를 찾은 김도혁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팬이 가장 소중하다. 특히나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버틴다. 안 좋은 일을 당하셔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인천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또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낼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다. 아울러 인천의 역사와 함께해 온 고인의 명복을 빈다. 4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은 그 누구보다도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축구장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축구장에서 청춘을 보내고 축구장에서 선수들의 추모를 받으며 떠났다. 또한 지금 누구보다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남편께도 위로의 말을 전한다. 감히 이 슬픔을 가늠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인천 팬들의 말을 빌리자면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게 날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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