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팬들은 서울이랜드전에 이런 걸개를 내걸었다.

[스포츠니어스 | 천안=김현회 기자] “다 말해도 돼요? 그냥 ‘아 네’라고 짧게 말했다고 써주세요.” 아산무궁화 박동혁 감독은 말을 아꼈다. 2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2 서울이랜드와 아산무궁화의 경기를 앞두고 만난 박동혁 감독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지만 서운한 감정은 숨기지 못했다. “지난 시즌 아산이 K리그2에서 우승했을 때도 경기장에 오지 않던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서울이랜드 천안 홈 경기에 올 예정인데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천안과 아산의 관계는 묘하다. 충청남도에 위치한 이 두 도시는 지리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대단한 경쟁 관계에 있다. ‘천안아산역’과 ‘아산천안역’을 놓고 싸운 적도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아산 지역 관계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천안 것들하고는 상종도 안 해유”라고 말하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그 동네가 그 동네 같지만 아산과 천안은 친해질 수 없는 동네다. 의경 모집 중단 선언 이후 아산무궁화가 천안과 합쳐 충남도민축구단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도 아산 측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우리와 천안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하고 비슷하다”고 하기도 했다.

이는 천안도 마찬가지다. 인구수에서 아산에 비해 압도적인 천안은 아산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두 지역의 경쟁 관계는 더 극심해졌다. 물론 아산과 천안 사람들은 핏대 세워 상대 지역을 욕한다기보다는 우스갯소리로 상대 지역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역 연고가 중요한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천안과 아산의 감정은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천안은 모든 면에서 아산을 압도하는 대도시라고 자부하고 있고 아산은 충남의 유일한 프로팀은 아산에 있다면서 축구 만큼은 천안을 이긴다고 한다. 천안은 이따금씩 국가대표 경기를 유치하며 맞불을 놨다.

그런 천안에 프로축구팀이 들어왔다. 연고 이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단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다. 홈 경기장 문제로 서울에서 경기를 할 수 없는 서울이랜드가 올 시즌 일부 경기를 천안에서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천안시는 서울이랜드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측이 수도 요금만 내면 된다”고 할 정도로 홈 경기장 사용에 적극 협조했다. 연고지에 민감한 K리그 팬들도 서울이랜드의 사정을 잘 알고는 크게 비난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이랜드는 올 시즌 천안에서 홈 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런데 2일 경기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서울이랜드와 아산무궁화와의 경기가 열리는 천안종합운동장을 방문한 것이다. 지난 시즌 아산이 K리그2 우승을 차지할 때도 경기장을 찾지 않았던 그가 서울이랜드의 천안 임시 홈 경기에 등장한 건 아산 입장에선 섭섭할 수밖에 없다. 경기 전 박동혁 감독이 말을 아끼면서도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산 홈 경기장은 한 번도 찾지 않은 충남도지사가 아산을 상대로 하는 서울이랜드 홈 경기장에 등장한 건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경기 전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격려한 뒤 시축을 하기 전 마이크를 잡았다.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천안의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 1순위 확정에 대해 자축했고 이후 서울이랜드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작 충남에 있는 유일한 프로축구 팀인 아산은 뒷전이었다. 충남도지사가 서울이랜드를 외치고 충남 아산 팀은 그 상대로 나서는 ‘웃픈’ 상황이 벌어졌다. 마케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도지사까지 초청한 서울이랜드 구단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의 언행과 아산 팀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시축을 한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곧장 벤치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향한 벤치는 ‘충남’ 아산 쪽이 아닌 ‘서울’ 이랜드였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일일이 우성용 코치, 유병훈 코치와 악수를 나눴고 이후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 순간 아산 쪽 벤치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 ‘충남’ 아산 팀을 위해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격려 인사를 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산 관계자가 벤치 앞에 도열했다. 하지만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서울이랜드 선수단을 격려한 뒤 아산 벤치는 외면한 채 VIP석으로 올라가 버렸다.

아산 입장에서는 섭섭한 일이다. 더군다나 의경과 일반인이 섞여 임시방편으로 운영되고 있는 아산은 이달 말까지 내년 시즌 운영 계획을 확립해야 존속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산은 시예산 편성이 이뤄지는 9월은 돼야 내년 시즌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 연맹을 통해 내년 시즌 존속 마감 시한을 6월 말에서 9월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예산 심사에서 아산시민축구단 운영 비용이 통과되건 되지 않건 일단은 9월이 돼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충남도지사가 서울이랜드 경기장을 방문해 이 팀을 격려하는 모습은 섭섭할 수밖에 없다. 지금 아산은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다.

충남도는 최근 천안의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 1순위 확정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비 4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정부 예산도 200억 원 가량 따 오기로 했다. 실질적으로 충남도가 천안에 600억 원을 지원하는 모양새가 됐다. 충남도가 천안에 이같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건 투자를 위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충남에 위치한 유일한 프로팀인 아산무궁화는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서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서울’이랜드를 외치며 ‘충남’ 아산무궁화를 상대팀으로만 취급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이날 경기장에는 아산의 이런 서운한 감정을 담은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팬들과 아산무궁화 유소년 학부모회 등은 ‘아산에도 시민구단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도지사님’이라는 걸개와 함께 뼈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은 ‘충남 유일의 프로축구 아산! 함께 키워가요~’라는 걸개와 ‘천안시민들 반갑습니다. 아산무궁화프로축구단입니다’, ‘충남 도민은 여기서 응원하세유~’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충남도지사의 서울이랜드 경기 방문에 맞춰 충남에는 아산무궁화라는 유일한 프로팀이 있다는 걸 어필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나는 충남도지사지 천안시장이 아니다”라며 “아산도 충남도의 똑같은 일원이다. 언제든지 아산이 대화를 원하면 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지난 시즌 아산의 K리그2 우승 당시를 포함해 단 한 번도 아산 경기장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산 구단이 올 시즌 개막전에 양승조 충남도지사를 초청하려고 했지만 도에서도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산’무궁화와의 경기에서 ‘서울’이랜드를 외친 충남도지사는 아산 축구계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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