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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부산=조성룡 기자] 2월 9일 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글로리 콘도 18층.

이곳에서는 서울이랜드의 부산 팸 투어 저녁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구단이 사전에 준비한 조 편성에 따라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단, 팬들이 섞여서 각각 테이블에 앉았다. 식사 이후 열릴 레크리에이션까지 생각해 준비한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삼삼오오 뒤섞여 이야기하며 밥을 먹었다.

그 때 갑자기 새로 영입된 베테랑 수비수 이경렬과 창단 멤버 윤성열의 눈이 커졌다. "저기 좀 봐봐." 그 순간 자리에 함께 앉아있던 신인 김민서와 2년차 미드필더 한지륜도 밥을 먹다 말고 어느 한 곳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 "큭큭. 큭큭큭큭." 윤성열이 두 사람에게 한 마디 했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이 행복한 거야. 그러니까 과일 가져와." 두 사람은 잽싸게 팬들에게 과일을 갖다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가리킨 곳에는 신인 공격수 고준영이 앉아 있었다. 천안제일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이랜드에 입단한 고준영은 돌파와 슈팅 능력이 일품인 선수다. 그는 다른 선수들처럼 앉아서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다. 그것이 뭐가 이상하다고 웃는 것일까? 알고보니 고준영이 아닌 고준영 '옆 자리' 때문이었다. 고준영의 왼쪽에는 김현수 서울이랜드 감독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박공원 서울이랜드 단장이 앉아 있었다. 마치 사단장과 연대장 사이에 앉은 이등병의 느낌이었다.

만찬이 이어지는 내내 고준영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같은 날 열린 연습경기에서 고준영이 활약했지만 주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고준영이 감독과 단장 사이에 앉았다'는 것이었다. "체하지 않을까?"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또다른 선수도 말했다. "그 와중에 밥을 먹긴 먹고 있네." 고준영은 김 감독과 박 단장이 팬들과 쉴새없이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묵묵히 입 안에 밥을 밀어넣고 있었다. 과일과 케이크로 구성된 후식까지 완벽하게. 뷔페 서너 접시를 소화했다. 배짱도 이런 배짱이 없다. 자연별곡과 애슐리가 CF모델로 눈독 들일 정도다.

고준영의 고충 "저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고준영은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신인 고준영은 아직 하라는 대로 해야하는 선수다. 그는 만찬장에 입장해 테이블을 확인했다. 자신이 앉게 될 테이블 위에는 명찰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명찰이 놓여있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해 그 자리에 앉았다. 몇 분 뒤 그는 깜짝 놀랐다. 바로 옆에 박공원 단장이 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김현수 감독이 자신의 명찰을 들고 고준영의 다른 옆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은 연출됐다.

"김 감독과 박 단장 사이에서 정말 잘 먹더라"고 <스포츠니어스>가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네자 고준영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제가 뻔뻔해도 그 자리에서 잘 먹을 수가 있나요. 정말 긴장하면서 먹었습니다." 물론 본인 주장이다. 긴장한 상황에서 고준영은 계속해서 뷔페 음식을 가져왔고 끝없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긴장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이 먹는 것일까. 알 수 없다.

그래도 그 불편한 자리에서 신인 고준영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당시 그 테이블에 있었던 팬은 김 감독과 박 단장을 향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구단 최고위층에게 직접 무언가를 물어볼 기회는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팬의 궁금증을 열심히 해결했다. 고준영 또한 이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제가 모르던 많은 것들을 들었습니다. 구단 사무국과 팬들의 고충을 들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고준영은 서울이랜드 팬과 코칭스태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벌써부터 "고준영 물건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동의대와의 연습경기에서도 형들을 상대로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줬다. 게다가 김 감독과 박 단장 사이에서도 넉넉히 밥을 먹는 배짱까지. 서울이랜드에 또 하나의 예비 스타가 탄생할 조짐이다. 하지만 고준영은 마지막으로 다짐했다. "내년에는 꼭 다른 자리에서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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