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아’ 대신 “얼어 죽어도 서울이랜드” 외친 팬들의 부산 ‘팸 투어’


[스포츠니어스|부산=조성룡 기자] 혹시 ‘얼죽아’를 아는가.

요즘 추운 겨울에 곧 죽어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카페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면서 추운 날씨에도 얼음이 동동 떠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킨다. 그들을 가리켜서 ‘얼죽아’라고 부른다. 현재도 전국의 ‘얼죽아’ 회원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각광받는 여름을 기다리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여기 ‘얼죽아’까지는 아니어도 참 독특한 사람들이 있다. 지난 시즌 대한민국 프로축구팀 중 가장 축구를 못했던 팀은 바로 서울이랜드다. 2부리그인 K리그2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나름 ‘프로’라고 불리는 팀 중 성적이 제일 좋지 못했다. 게다가 관중 동원 또한 최하위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이랜드는 평균관중(1,938명)과 유료관중(616명) 모두 프로축구팀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쯤 되면 서울이랜드의 겨울은 추울 법 하다. 지난 시즌 성적도 좋지 않았고 관중 수 역시 아쉬운 수준이었다. 새로 김현수 감독이 부임하고 파이팅을 외쳐도 마음 한 구석은 쓸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예상보다 서울이랜드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랜드를 향해 응원을 보내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얼죽아’를 외치는 사람들처럼 ‘얼어 죽어도 서울이랜드’를 외치는 팬들이 이번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긴 여정에 나섰다. 서울이랜드의 ‘부산 팸 투어’다.

짧지만 작은 희망을 보여줬던 기장의 첫 모습
서울이랜드는 전지훈련을 참관할 팬들을 위한 ‘팸 투어’ 참가자를 모집하면서 10만원이라는 참가비를 내걸었다. 그리고 약 20명의 팬들이 팸 투어에 합류했다. 1박 2일간의 일정은 조촐했다. 부산으로 내려가 서울이랜드의 연습경기를 참관하고 선수단과 함께 저녁식사와 레크리에이션 행사를 소화했다. 다음 날에는 선수단과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한 이후 올라오는 일정이었다. 솔직히 선수단과 함께한다는 점을 빼고 큰 메리트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팬들의 모습은 즐거워 보였다. 오전 8시에 모인 팬들은 부산까지 가는 약 다섯 시간 가량 걸리는 버스 안에서 투어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 어린 팬은 서울에서 버스를 탑승한 이후 내내 서울이랜드의 지난 시즌 경기 영상을 스마트 패드를 통해 보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며 문득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저 경기는 보면 심리적으로 좋지 않을텐데…’ 하필 그 순간 그는 서울이랜드와 아산무궁화의 시즌 막바지 경기를 보고 있었다. 10월 27일 열린 그 경기는 서울이랜드가 0-4 대패를 하며 아산의 K리그2 우승을 내줬던 한 판이었다.

부산 기장 월드컵빌리지에서 열린 서울이랜드와 동의대학교의 연습경기는 비주전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표정은 밝았다. 서울이랜드가 지난 시즌과 다른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신인 고준영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박공원 단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친구가 일을 한 번 낼 것 같아.” 팬들 생각도 마찬가지었다. “우리 팀에도 드디어 저런 선수가 왔구나.”

서울이랜드는 이날 동의대를 1-0으로 꺾었다. 승리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만족스러운 스코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 팬은 이렇게 말했다. “올 시즌은 기대 좀 해봐도 되겠는데?” 그러더니 황급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차, 설레발은 금지.” 짧은 경기였지만 선수들이 무언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약간의 희망을 맛볼 수 있었다.

말로 몸으로 그들은 서로 마음을 열어갔다
팬들과 선수단은 해운대에 위치한 ‘글로리 콘도’에서 다시 만났다. 이곳은 이랜드 모기업이 운영하는 콘도다. 창문을 열면 해운대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해운대 포장마차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해운대를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서울이랜드를 만나기 위해 왔다. ‘의식주휴미락’을 표방하는 이랜드 답게 글로리 콘도의 최상층에 푸짐한 뷔페가 차려졌다. 팬들과 선수단은 뷔페를 함께하며 조금씩 친해져갔다.

선수단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신인 선수들은 조금씩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반면 고참 선수들은 여유 있게 팬들과 대화하며 밥을 먹었다. 팬들이 신인 선수에게 말을 걸자 그들은 부끄러운 듯 “네?”를 연발했다. 팬과 선수들, 구단 프런트가 섞여 조를 이뤄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한 팬은 박공원 단장, 김현수 감독과 한 테이블에 앉아 시종일관 서울이랜드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박공원 단장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간의 고민과 미래를 위한 방향에 대해 답변했다.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자 신인 선수들도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팬과 선수단은 하나가 되고 있었다. 올 시즌 새로 서울이랜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따로 앞에 나와 팬들에게 인사하는 시간도 가졌다. 2017년 서울이랜드에서 뛰었던 알렉스는 FC안양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이랜드로 이적했다. 10년 동안 무려 국내에서 8번째 이적을 한 알렉스가 신입 선수들 사이에 껴 있자 한쪽에서 농담이 터져나왔다. “알렉스는 저기 왜 있어? 기존 선수 아니야?” 웃음이 번졌다. ‘이래서 팸 투어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랜드’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쉽게 마음이 열리다니.

ⓒ 서울이랜드 제공

다음 날 선수단과 팬들은 사회공헌활동에 나섰다. 보육시설과 양로원에서 땀을 흘렸다. 솔직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비까지 받고 노동을 시키다니. 심각한 근로기준법 위반 아닌가.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됐을 것 같다.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또다른 소통법이다. 창문을 닦으면서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중학생 팬은 벌써 선수들을 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형은 키가 몇이야?” 아마 이 팬들은 올 시즌 서울이랜드 선수들이 부진할 때면 질책보다는 따뜻한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인 선수들의 노래 장기자랑은 덤이었다. 포항스틸러스에서 올 시즌 서울이랜드로 임대를 온 권기표는 포항 시절 보여줬던 끼를 이곳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했다. 박상철의 ‘무조건’을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 사이 쭈뼛거리던 다른 선수들도 치매 어르신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행사형 스트라이커’, ‘예능형 공격수’ 권기표는 지난 시즌 R리그 득점왕이다. 그의 현란한 무대 매너를 지켜본 뒤 능숙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행사를 진행하던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올림픽도 나가고 금메달도 따이소. 응원합니데이.”

1박 2일 간 짧지만 빡빡한 일정이 모두 끝나자 선수단은 콘도 정문 앞에 두 줄로 도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팬들을 배웅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기에 표정은 모두 웃고 있었다. “다음에 또 만나요. ‘퍼스트 터치’ 때 또 봐요.” 박공원 서울이랜드 단장은 선수단과 팬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축구단은 팬이 있어야 합니다.” 2019년 서울이랜드는 팸 투어를 통해 팬들과 함께 했다. 지난 시즌 K리그2 꼴찌 서울이랜드의 올 시즌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서울 것이 있을까.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 ‘얼어 죽어도 서울이랜드’를 외치며 부산을 찾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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