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세안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명재영 기자] 1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했을까. 박항서 매직이 대한민국과 베트남 양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15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미딘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18 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1-0으로 꺾으며 종합 3-2로 우승을 차지했다. 베트남이 이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건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박 감독 개인적으로도 프로축구에서 실업축구로 무대를 옮기며 잊혀갔던 과거를 딛고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이날 결승전은 토요일 황금시간대에 열린 해외 팀 간의 경기였지만 TV에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상파 채널인 SBS가 생중계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은 해설진을 현지에 급파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축구에 대한 국내 인식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다.

모험의 결과는 대박이었다. 지상파 편성에서는 광고가 완판됐고 합산 시청률 21.9%(SBS 18.1%, SBS스포츠 3.8% / 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뤄진 생중계에서도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몰렸다. 베트남 현지 또한 축제의 장이 열렸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국내에서 히딩크 감독의 조국인 네덜란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처럼 베트남에서도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박 감독의 민간 외교가 큰 성과를 낸 셈이다.

박 감독과 베트남에 대한 축하와는 별개로 일각에선 아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특히 이번 대회를 중계한 SBS에 대한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내 리그는 소홀히 다루면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동남아 축구엔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았다는 이야기다. SBS는 지난 8일 대구FC와 울산현대의 2018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을 중계했는데 이 경기 직전의 마지막 프로축구 중계는 2014년으로 4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렇듯 팬들은 K리그에 대한 차별 대우를 거론하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크게 벌어져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명분만 남은 K리그를 중계하는 것보다 FIFA 랭킹 세 자릿수의 팀들이 참가하는 스즈키컵을 띄우는 것이 올바른 선택에 가깝다. 사업의 관점에서 실력과 수준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흥행이 보장되는 브랜드로 자리 잡은 박 감독의 베트남 대표팀은 놓칠 수 없는 카드다.

축구 내용 자체가 돈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국내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반대로 여러 조건이 불리한 K리그2에 있으면서도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국가대표 김문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부산아이파크는 올해 후반기 관중 수가 수직으로 상승하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다른 산업군과 비교할 때 K리그의 혁신 속도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 브랜드 파워 또한 하락세다.

올해 첫 슈퍼매치는 단 13,122명의 관중 수를 기록했다 ⓒ 스포츠니어스

K리그의 대표적인 상품인 수원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가 최근 흥행 부진을 겪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에게 내세울 만한 한 방이 없었던 것이 관중 하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 르네상스로 불리던 시절 귀네슈 감독과 차범근 감독은 TV CF에서까지 대립했다. 당시 두 팀의 맞대결은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파급력을 가져왔었다. 이름값만 남은 지금은 '억지 슈퍼매치'에 가깝다. 경기 전 별도의 기자회견까지 꾸준히 열며 풍선을 띄워보고는 있지만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연맹을 중심으로 SNS 마케팅을 강화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마니아층에서나 반응을 얻는 수준이다. 올해 리그 MVP를 수상한 경남FC의 말컹이 경쟁자이자 같은 외국인 선수인 울산현대의 주니오보다 큰 인기를 끈 것은 그의 브랜드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튀는 발언과 행동이 없었다면 '잘했던 외국인 선수'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K리그가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야 한다. 좋은 사례는 홍보대사 BJ 감스트다. 감스트는 1인 미디어 트렌드를 정확히 관통하는 인물이다. K리그와 감스트의 조합은 어느 때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역설적으로 홍보대사 선임 당시 조롱에 가까웠던 일부의 시선은 K리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비 같은' K리그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콘셉트지만 평생 잊히지 않을 동영상 한 편이 K리그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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