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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아산=조성룡 기자] 이런 독특한 사제 관계가 K리그에 또 있을까.

4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아산무궁화와 FC안양의 경기 전 박동혁 감독은 또다시 이런 농담을 던졌다. "황인범 왔어? 아… 걔 진짜." 이날 아산에는 오랜만에 대전시티즌 황인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승을 한 아산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런데 박 감독은 유독 볼멘 소리를 했다. 알고보니 지난 10월 6일 경기 때문이었다.

10월 6일 아산은 대전 원정을 떠났다. 그곳에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아산에서 조기전역한 황인범이 있었다. 이날 아산은 황인범에게 뼈아픈 골을 실점했다. 후반 34분 아산이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대전은 페널티킥을 얻었다. 그리고 키커로 황인범이 나섰다. 그는 기가 막힌 파넨카 킥으로 아산의 골문을 흔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왔다'는 골 뒤풀이를 했다. 이후 아산은 후반 44분 가도예프에게 역전골까지 실점하면서 1-2로 패했다.

그 이후로 박 감독은 누군가의 입에서 '황인범'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꼭 그 탄식을 했다. "황인범이 우리 상대로 파넨카 킥을 차고 골 뒤풀이까지 하더라. 너무한 것 아닌가." 그리고 황인범의 조기전역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팀에 주세종, 이명주, 김도혁, 황인범 등 좋은 미드필더 자원이 너무 많아서 선발 라인업 짜느라 머리가 아팠다. 황인범 조기전역한 것이 오히려 낫다."

황인범은 이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래놓고 박 감독은 은근 다른 팀으로 떠난 황인범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박 감독은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황인범이 A매치 데뷔골을 넣을 때 이완 코치와 함께 현장에 있었다. 그 정도다. 말로는 황인범에 대해 '디스'를 하면서도 알고보면 황인범을 아끼고 있다. 요즘 말로 '츤데레'다. 싫은 척 하면서 사실은 애정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퉁명스러워도 애정 넘쳤던 그 때의 전화

다시 10월로 돌아가자. 황인범은 '문제의 경기'가 끝나고 박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박 감독은 그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돌아가는 길에 황인범에게 전화가 오더라 '받을까 말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받았다." 당시 황인범은 박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님 오늘 봬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아까 골 넣고 뒷풀이한 것은 정말 죄송해요." 박 감독은 황인범에게 한 마디 던졌다. "염장 지르려고 전화했니?"

하지만 제자의 전화가 박 감독은 못내 반가웠다. 그는 뒷풀이가 죄송하다는 황인범에게 "뭘 죄송해 하나. 그게 축구다"라고 답했다. 괜찮다는 이야기다.

황인범은 골 뒤풀이에 대해 "뒤풀이가 아니라 대전에 오랜만에 돌아와 첫 경기라서 '내가 다시 왔다'는 표현을 한 건 아니었고 감독님이나 선수들 자극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경기에 집중하고 몰입하다보니 생각을 못했다. 이기고 싶었던 경기여서 그랬다"라면서 멋쩍게 웃었다.

"나에게 있어서 박동혁 감독은 고마운 분"

그는 아산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잠시 이순신종합운동장에 들렀다. "정말 코칭스태프 선생님들과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우승을 축하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한 황인범은 "사실 고민 많이 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황인범은 아산 소속이 아닌 대전 소속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팀 선수가 축하하러 온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3일 대전이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지으면서 그런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었기에 황인범은 아산을 방문했다.

황인범은 이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에게 있어서 아산과 박동혁 감독은 고마움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황인범은 "아직 대전이 승격한 것은 아니기에 또다른 승격을 위해 준비해야 하지만 내게 올 시즌 많은 것을 가져다 준 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고민 끝에 오게 됐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황인범은 박동혁 감독에게 진심 어린 말을 전했다. "박동혁 감독님이 나를 믿어주고 기회를 줘서 지금의 황인범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한 분이다. 감독님이 내가 전역할 때 '서로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까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생각하자'라고 말해주셨다. 나도 그렇다. 앞으로도 잊지 못한다. 선수 생활 끝까지 감독님에게 연락도 드리고 자주 찾아뵈면서 좋은 인연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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