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대구와의 중요한 승부에서 0-1로 패하고 말았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인천=김현회 기자] 인천유나이티드와 대구FC의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경기 후반 41분. 0-1로 뒤진 인천에서 남준재와 주장 고슬기를 빼고 한석종과 김보섭을 투입했다. 시간이 없었다. 고슬기는 급하게 주장 완장을 빼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던지듯이 건넸다. 이 주장 완장을 받은 선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급하게 그 완장을 자신의 팔에 찼다. 이 선수는 남은 4분의 시간 동안 주장 완장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바로 정동윤이었다.

정동윤은 만24세의 어린 선수다. 거기에다 지난 7월 인천으로 이적해 이제 막 팀에 적응을 마친 선수다. 주장 완장이 그렇게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다. 지금껏 인천의 주장은 임중용이나 이윤표처럼 팀을 위해 오랜 시간 헌신하고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의 몫이었다. 경기 도중 급한 상황에서 짧은 시간 임시로 맡은 주장이었지만 정동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팀은 0-1로 패했고 선수들의 표정도 굳어졌다. 짧은 임시 주장을 소화한 정동윤의 표정도 어두웠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정동윤은 쑥스러워했다. 잠시 주장을 맡았을 때의 심정을 물으니 머뭇거렸다. 그는 “주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면서 “그냥 어쩌다보니 주장 완장이 나에게 왔다”고 했다. 정동윤은 “슬기형이 나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장 가까이 있던 나에게 주장 완장을 던졌다”면서 “주변에 있는 형들 중 한 명에게 건네줄 생각이었다. 우리 팀 부주장이 (한)석종이 형인데 그 형도 교체 투입되자마자 급하게 뛰어 들어와 경기를 시작했다. 석종이 형한테 주려고 하다가 주변에 주장 완장을 찰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냥 내가 차게 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정동윤은 여름이적시장에서 인천으로 이적한 뒤 줄곧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정동윤은 “대학교 3학년 때 주장을 꽤 맡기는 했지만 이렇게 프로팀에 와 주장 완장을 차 본 건 처음”이라고 어색해하면서 “내가 이 팀에서 주장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급해서 그냥 주장 완장을 차고 뛰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반 들어서는 경기력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대구가 우리를 앞서고 있어 여유가 있었다. 그런 대구를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 “남은 네 경기에서 모든 걸 걸고 팀이 생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동윤은 1994년생으로 이제 갓 프로 3년차다. 2016년 광주에서 데뷔해 두 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 광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뒤 7월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인천에 합류했다. 그는 이적 후 이번 경기까지 11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정동윤은 “외국인 감독님이 있는 팀이라 분위기가 광주에 비해 자유로운 측면도 있다”면서 “하지만 그러면서도 꼭 생존해야 한다는 간절함도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인천에는 분명 ‘생존DNA’가 있다”고 했다.

‘어쩌다’ 잠시 주장을 맡게 됐지만 정동윤에게는 목표가 있다. 그는 언젠간 이 팀에서 ‘진짜 주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정동윤은 “오늘은 잠깐 주장 완장을 찼지만 앞으로는 정말 팀에 오랜 시간 기여하는 선수가 돼 팀을 이끌고 싶다. 그때는 정말 당당하게 주장 완장을 찰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잠깐이지만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게 된 그와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혹시 손에 들고 있는 그건 첫 주장을 기념하는 선물을 받은 거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건 빨래다.” ‘어쩌다 주장’ 정동윤은 한 손엔 빨래를 들고 한 손엔 어린 선수가 챙겨야 하는 콘을 들고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정동윤은 여름이적시장에서 인천으로 이적한 뒤 줄곧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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