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요즘 안산그리너스는 뭔가 이상하다.

올 시즌 이흥실 감독 체제일 당시 안산은 백 쓰리를 주로 썼다. 경기 전 제공되는 포메이션이 백 포여도 안산은 순식간에 백 쓰리로 전환하기도 했다. 시즌 초반 안산의 수비진은 이렇게 외우면 편했다. '3-4-5는 센터백이다.' 김연수와 이인재, 박준희는 안산 수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든든한 센터백들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졌다. 이흥실 감독 사퇴 이후다.

이영민 감독대행 체제로 전환한 이후 안산은 백 쓰리 대신 백 포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근데 유독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주장 완장을 찬 선수가 미친듯이 공격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박준희였다. 안산 구단 관계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측면 수비수로 전환했어요?"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원래 측면 수비수였는데 중앙 수비수를 잠시 맡은 겁니다. 원래 측면이었어요."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박준희는 센터백이었다. 2017년 안산에 입단한 이래로 박준희가 측면 수비수를 맡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의구심에 찬 표정으로 구단 관계자를 쳐다보자 그는 '이래도 안믿을래?'라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축구 게임 '풋볼 매니저(FM)' 한 번 해보세요. 박준희 측면 수비수로 나옵니다." 어쩐지 이 관계자 요즘 연락이 잘 안되더니 다 사정이 있었다.

박준희가 다시 정체성을 찾게 된 이유는?

본인의 정체성은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다. 박준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프로 데뷔할 때도 측면 수비수로 뛰었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계속 측면 수비수였어요. 중앙 수비는 안산으로 이적하고 나서 처음 해봤습니다. 2년 정도 그렇게 뛰니 중앙 수비수라는 이미지가 생기네요. 저는 지금 측면 수비수하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이흥실 전 감독의 지시로 그는 안산에서 중앙 수비수의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제 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제일 어색했어요. 제가 뚫리면 곧바로 골키퍼라는 부담감 또한 있었죠." 특히 박준희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약점은 센터백의 입장에서 치명적이었다. 헤더였다. "센터백으로 전환하고 나서 헤더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제가 헤더가 약하거든요."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하지만 이영민 감독대행은 그의 포지션을 다시 한 번 조정했다. 측면 수비수로 복귀시켰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 감독대행은 껄껄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센터백을 너무 못해서 측면 수비수 시켰다. 처음에는 빼려고 했는데 주장이니 경기는 뛰어야 해서 측면 수비수 시키는 거다." 하지만 이 감독대행의 진심은 따로 있었다. "충분히 중앙 수비 자원으로도 쓸 수 있지만 지금은 측면에서의 활약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체 조건도 좋으면서 공수 모두 잘 하는 자원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선수가 측면 공격수로 뛰는 등 측면에 힘 있는 공격수들이 많다. 그래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박준희를 측면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박준희에게 다시 원래의 포지션으로 돌아온 소감을 묻자 그는 "감회가 새로워요"라면서 "제 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돌아왔잖아요. 마음이 편하네요"라며 씩 웃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사실 측면 수비수도 원래 제 자리는 아닌데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 원래 공격수입니다. 공격수."

박준희의 축구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한 사람

박준희의 축구 인생은 공격수로 시작됐다. 그것도 최전방 공격수였다. 학생 시절에는 제법 골 좀 넣던 유망한 선수였다. 그렇게 건국대에도 입단했다. 2012년 U리그 챔피언십에서 5경기 4골로 득점왕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부진하더니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슬럼프가 온 것이다. 슬슬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박준희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다. 그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때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 사람이 있었다. 건국대 공문배 감독이었다. 그는 슬럼프에 빠진 제자를 불렀다. 그리고 제안했다. "너 이제 공격수 대신 수비를 해봐라." 당황한 그에게 공 감독은 말했다. "앞으로 공격수보다는 측면 수비수 자원이 더욱 필요할 거야. 네가 지금부터라도 측면 수비수 연습을 해도 늦지 않아. 측면 수비수를 잘 해낸다면 취업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다."

그렇게 박준희는 측면 수비수로 자신의 포지션을 옮겼다. 그리고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2014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포항스틸러스가 그를 1순위로 지명했다. 포항에서 그는 측면 수비수로 활약할 뿐 아니라 공격수의 경험을 살려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 또한 소화했다. 공문배 감독의 제안이 박준희를 멀티 플레이어로 성장시킨 것이다.

박준희는 그 때를 회상하며 아직도 스승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정말 공문배 감독님은 제 인생에 있어서 은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때 제가 감독님의 제안을 받고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박준희는 없었을 겁니다. 제 축구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분을 꼽으라면 첫 번째는 공문배 감독님입니다. 잊지 못할 겁니다."

그가 원하는 유종의 미, 승격 플레이오프

안산의 주장 박준희는 요즘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는 주장이다. 9연패를 당하고 이흥실 감독이 사퇴할 때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팀은 반등해 창단 처음으로 3연승을 기록했고 4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선수 본인은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측면 수비수로 뛰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처음에는 9연패를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감독님도 사퇴하시고 선수들도 어수선해서 많이 침체됐죠. 그런데 이영민 감독대행님이 '다시 한 번 해보자. 우리가 지금 밑바닥에 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라고 하셨어요. 일부러 운동도 더욱 활기차게 하려고 했죠. 게다가 새로 오신 단장님도 선수들 위해서 회식도 많이 열어주시는 등 노력해주셨어요. 구단 프런트와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쳤죠."

"지금 제 포지션에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저는 상당히 만족해요. 프로, 그리고 K리그라는 곳은 배우는 곳이기보다 무언가 보여줘야 하는 것이잖아요. 제가 제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포지션은 측면 수비수라고 생각해요. 제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은 참 편한 것 같아요."

팀도 상승세고 본인의 마음도 편하다. 이제 박준희는 올 시즌의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다시 한 번 축구화 끈을 조이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유종의 미는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이다. 하위권 안산에 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는 이룰 수 있는 꿈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세상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다. 박준희 또한 안산에서 중앙 수비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다시 측면 수비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좀 더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뛰고 있다. 모두가 '설마 안산이?'라고 하지만 그것 또한 모르는 일이다. 측면 수비수이자 안산의 주장 박준희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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