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C 챔피언스리그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지난 8월 28일 일본 도쿄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규정 변경에 대한 논의가 AFC 위원회의 주관 아래 개최됐다. 중국 언론 시나스포츠에 따르면 AFC 위원회는 다섯 가지의 변경 사항에 대한 논의를 거쳤고 오는 11월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전역의 프로축구리그 우승 클럽과 자국 리그에서 상위권으로 시즌을 마치거나 FA컵 우승을 차지해 출전권 티켓을 얻은 클럽들이 참가하여 경쟁하는 대회인 ACL은 2002년 8월 AFC가 아시아클럽챔피언십(ACC), 아시안컵위너스컵(ACWC), 아시안슈퍼컵(ASC)을 통합한 이후 16년 동안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2009년부터 본선 참가 클럽 수가 32개 팀으로 늘어나면서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각각 16개 팀으로 나눠 4개 조를 편성하여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의 1, 2위 팀이 16강에 직행하게 됐고 2010년 11월 24일 AFC는 그간 중립지역에서 단판으로 개최했던 결승전을 2011년부터 진출국 중 추첨을 통해 한 곳에서 홈-어웨이 방식으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본떠 만든 ACL은 아시아 축구의 활성화와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아시아도 유럽의 선진 축구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수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UCL과 달리 스폰서와 중계권 등의 규모 자체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고 중동, 동아시아 클럽과 동남아시아 클럽들 간에 실력 차가 워낙 크고 자국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센스를 얻지 못해 정작 ACL에는 참가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축구 약소국인 섬나라 키프로스의 아포엘FC가 지난 2012년 UCL 8강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많은 축구팬들의 흥미를 돋우고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그러한 예를 보기가 매우 힘들다. 다시 말해서 동남아시아의 한 클럽 팀이 아시아의 명문 클럽들을 차례로 꺾는 사례가 나오기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AFC 위원회 역시 이 문제들을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도쿄에서 총회를 개최했다. 규정 변경에 대한 이번 논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는데 변화를 위해 이들이 내세운 사항은 무엇일까. 다음은 AFC가 논의 중인 다섯 가지 사안과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분석이다.

① UEFA처럼 ACL 조별예선 3위 팀은 AFC컵 대회로

AFC컵 대회는 ACL의 하위 대회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유형의 성격을 띠고 있다. AFC컵 대회는 AFC의 ‘비전 아시아’ 정책에 따라 개발도상국으로 지정된 국가의 클럽 팀들이 벌이는 대륙 컵 대회며 매년 평가에 따라 출전 클럽들이 달라질 수 있는 별개의 대회다. 그렇기에 아시아 축구팬들이 주목하고 있는 ACL에 비해 팬들의 관심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만약 아시아에 존재하는 축구팬들 중 아무나 붙잡고 “ACL과 AFC컵에 참가하는 팀을 5팀씩 말해보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대다수의 팬들은 ACL 팀 밖에 언급하지 못할 것이다.

AFC컵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대 ACL 중위권 팀들과 비슷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지만 아직까지 AFC컵과 ACL의 격차가 매우 큰 것이 현실이다. AFC컵에 출전하는 각 리그의 우승팀 일부는 ACL 예선에 참가하기도 하지만 대개 ACL의 높은 벽에 막혀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이러한 이유로 AFC 위원회는 ‘ACL에 참여하는 리그’로 분류되어 있는 국가의 팀은 ACL 예선에서 탈락하더라도 AFC컵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태국이다. 지난 2016년 무앙통 유나이티드와 촌부리FC가 ACL 예선에서 탈락했으나 같은 리그의 부리람 유나이티드가 ACL 본선에 진출하는 바람에 ‘ACL에 참여하는 리그’로 분류되었다. 이처럼 아시아는 유럽처럼 UCL 조별리그 3위 팀이 UEL 32강에 합류하거나 UCL 예선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팀이 UEL 조별리그에 합류하는 등의 연계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위와 같이 유럽의 선진 시스템을 받아들인 이 안건은 굉장히 좋은 취지로 볼 수 있긴 하다. 오는 11월 ACL과 AFC컵 간에 연계가 현실화 된다면 K리그의 팀이 북한의 4.25 체육단이나 횃불 팀과 맞붙게 되는 가능성이 생기게 되는 등 진기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AFC컵 참가 팀들과 ACL 참가 팀들 사이에 발생하는 실력 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의 4.25 체육단은 AFC컵 4강전에서 싱가포르의 홈 유나이티드를 1, 2차전 합계 11-1로 격파했다. ⓒ AFC컵 공식 페이스북

또한 AFC컵에 참가하는 팀들 중 과학적으로 증명된 천연 잔디가 아닌 인조 잔디를 사용하는 구단들이 많이 존재하는 만큼 외부적인 부분에서도 차이를 좁혀나가야 한다. AFC 위원회는 당장 이 안건을 현실화 시켜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보다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ACL에 집중되어 있는 아시아 축구 팬들의 관심을 고루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② 서아시아–동아시아 분리제 완전폐지

현재 ACL은 서아시아와 동아시아를 분리해 조별리그를 진행하고 있다. 토너먼트에서도 결승에 올라오기 전까지 서아시아 클럽과 동아시아 클럽이 맞붙는 일은 거의 없다. 몇몇 팬들은 카타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사비, 가비 등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이 안건을 환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부분에서 생각했을 경우다.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대륙이다. 동쪽 끝 일본에서 서쪽 끝 이란까지 가려면 경유를 해 비행기를 타고 무려 13시간이 넘는 먼 길을 떠나야 한다.

현재 K리그의 일정을 미루어 볼 때 서아시아-동아시아 분리제 완전폐지는 그야말로 선수들을 혹사시키게 된다. 지난해 4월 서정원 전 수원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K리그 팀들의 ACL 부진 이유를 빡빡한 스케줄이라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은 FA컵과 리그까지 꽉 차있기 때문에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ACL에 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K리그를 예로 들었을 경우지만 중국 슈퍼리그와 일본 J리그 팀들 또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AFC컵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서울에서 싱가포르로 원정을 떠난다고 치자. 이때 거리는 런던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카라바흐까지 가는 것보다 멀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AFC컵은 개발도상국으로 지정된 국가의 클럽 팀들이 벌이는 대륙 컵 대회다. 즉, 아직 정세가 불안정한 나라가 많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북한,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경기를 하게 되면 선수들의 신변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서아시아-동아시아 분리제를 완전하게 폐지하기에 앞서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북한의 4.25 체육단은 AFC컵 4강전에서 싱가포르의 홈 유나이티드를 1, 2차전 합계 11-1로 격파했다. ⓒ AFC컵 공식 페이스북

③ 조별리그 홈 & 어웨이 제도 폐지, 한 장소에 모두 모여 조별리그 3경기 소화

이 안건은 어쩌면 위에 ②번의 서아시아-동아시아 분리제 완전폐지가 가지고 있는 빡빡한 경기 일정과 먼 원정 거리 등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장소에 모두 모여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게 된다면 기나긴 시간 동안의 비행으로 인해 컨디션이 저하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먼저 한 장소에서 조별리그를 소화하게 되면 약 10일에서 14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엔 각국의 리그 일정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다. 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들이 자국 리그를 중단시키면서까지 조별리그를 치르는 것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흥행 문제다. 자국 팀이 ACL 경기를 자국에서 보는 것은 팬들에게도 큰 기쁨 중 하나다. 하지만 갑자기 다른 나라에서 조별리그 3경기가 열린다고 가정해보자.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유니폼을 입은 채 직접 경기장을 찾아가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소 수천 명에서 많으면 수만 명이 찾아가던 관중들의 발길이 뚝 끊길 수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2주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하고 왕복 비행기 표를 구매하면서까지 원정을 떠날 수 있는 이들은 몇 안 될 것이다.

④ UEFA 슈퍼컵과 비슷한 유형의 대회를 신설

유럽은 매년 UCL 우승팀과 UEL 우승팀이 시즌 시작 전 우승컵을 놓고 겨룬다. 이를 통해 구단들은 많은 수익을 내고 축구 팬들은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하기에 앞서 ‘애피타이저’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아시아에서도 유럽과 같이 이 대회가 현실화 된다면 아시아 축구 팬들은 AFC 슈퍼컵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봤을 때 축구 팬들은 ACL 챔피언과 AFC컵 챔피언 간의 기량 차이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실력 차이다.

아시아의 명문팀이 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조호르 다룰 탁짐이라는 팀은 2015년 AFC컵 우승을 차지한 클럽이다. 이들은 ACL 출전권을 얻었지만 이듬해 2차 예선에서 태국의 무앙통에 패배해 탈락하고 말았다. 만약 2016년 시즌 시작 전에 AFC 슈퍼컵이 열리게 되었다면 조호르 다룰 탁짐은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광저우 헝다를 만나게 된다. 아시아 축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을 갖고 있는 팬이라면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⑤ 외국인 선수 제도 개편 (4+1 또는 5+1)

AFC 위원회는 이번 총회에서 외국인 선수 제도를 현재의 3+1에서 4+1 또는 5+1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대회에 출전하는 모든 팀들이 반길만한 안건이다. 전력이 약한 팀은 더 많은 외인 선수들을 스쿼드에 포함시킴으로써 공백을 메울 수 있다. AFC컵과 ACL의 연계가 현실화 된다는 전제 하에 생기는 문제인 실력 차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4.25 체육단은 AFC컵 4강전에서 싱가포르의 홈 유나이티드를 1, 2차전 합계 11-1로 격파했다. ⓒ AFC컵 공식 페이스북

AFC 위원회가 내세운 이 안건들은 ACL과 AFC컵을 유럽의 UCL과 UEL처럼 함께 연계하면서 적극적으로 교류하도록 만들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실력 차이와 먼 원정 거리 등의 높은 산들이 ACL과 AFC컵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AFC 또한 이 사실들을 잘 알고 있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두 대회의 간극을 좁혀나가기 위해서는 AFC와 대회에 출전하는 리그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오만,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등 가장 아래에 위치한 팀들부터 서서히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AFC 차원에서 그 환경을 마련해줘야 아시아가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두 대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서로의 실력을 겨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시행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AFC 위원회가 이러한 안건들을 생각하면서 유럽의 선진 축구 시스템을 따라가고자 하는 취지는 매우 긍정적이다. 현재 세계 축구의 흐름은 유럽을 필두로 다른 대륙들이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아시아가 월드컵 등의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직까지 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리그가 국가대표팀의 기반이 되고 안정적인 대륙 대회가 그 대륙에 속한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다. AFC 위원회가 내놓은 이 안건들이 먼 훗날 아시아가 세계 축구를 이끌어나게 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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