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 무궁화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너 진짜 안올 거야?"

2일 수원FC와 아산무궁화의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경기가 있기 전 아산 한의권은 가족들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한의권은 단호했다. "못 가요. 경기 뛰어야 해요." 가족들이 그에게 잔소리를 했던 이유는 바로 친형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수원FC 원정 경기가 열린 이날은 둘째 형의 결혼식 날이기도 했다. 형의 결혼식에 한의권은 참석해야 했지만 그는 서울 가는 KTX 대신 수원 가는 원정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실 그는 형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군경 팀의 특성 상 청원 휴가를 신청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코칭스태프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만일 코칭스태프에게 말했으면 무조건 결혼식에 보내주려고 노력하셨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일부러 말 안했어요"라고 한의권은 말했다. 섭섭해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어쩔 수 없어요"라면서 "대신 골로 보여주겠다"라고 다독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은 팀의 사정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였다. 그가 이번 경기에 나오지 않아도 될 이유는 충분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말년에 가족 행사 일정이 잡혔다. 축구 선수가 아닌 일반인이어도 휴가를 썼을 법 했다. 하지만 한의권은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골까지 넣었다. 안현범의 크로스를 받아 아산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승리를 확정 짓는 골이었다.

그는 특별한 세리머니 대신 평소에 하던 대로 경례를 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경기 전에 세리머니를 어떻게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와…그런데 답이 안나오더라고요. 결혼에 대한 의미를 담아서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골을 넣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어요. 형에게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골 넣는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아서 갑자기 까먹은 것도 있어요." 한의권은 멋쩍게 웃었다.

"감독님이 네 명 있다"고 말한 이유는?

그렇다고 한의권이 가족들과 원만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두 명의 형이 있다. 제법 나이 차가 많이 난다. 큰 형이 10살, 작은 형이 8살 위다. 한의권은 형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동생이었을 것이다. 형들은 애정 어린 이야기도 동생에게 듬뿍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한의권 또한 그 이야기들을 애정보다는 '잔소리'로 들은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제게는 감독님이 네 명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 명은 아산 박동혁 감독이다. 나머지 세 명은 한의권의 집에 있다. 그의 아버지와 형 두 명이다. "어릴 때부터 축구 하느라 숙소 생활을 했어요. 집에 가면 세 분의 감독님이 기다리고 계셨죠. 밖에서도 축구 얘기 하는데 집에서도 축구 얘기 밖에 안해요. 저한테 개인 지도 수준으로 '잔소리'를 하고 많이 가르쳐 주시기도 했어요."

덕분에 한의권이 이렇게 K리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팀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에 그가 이렇게 당당한 팀의 일원이 됐을 것이다. 가족들도 이 사실을 아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그가 '결혼식 불참' 통보를 했을 때 그의 가족들은 "어쩔 수 없지"라고 받아들였다. 물론 시간이 지날 수록 "그래도 안올 거야?"라고 물었지만 말이다. "인터뷰 끝나고 집에 전화할 예정인데 혼날 것 같다"라고 한의권은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순간적으로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온 사람의 걱정 비슷한 것이 살짝 비쳤다.

'말년' 한의권이 외치는 "요즘 군대 좋아졌어"

그는 아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산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2014년 경남FC에서 K리그에 데뷔한 이후 2016년까지 그는 리그에서 총 3골을 넣었다. 하지만 아산에서만 11골을 넣었다. 박동혁 감독도 만족감을 표했다. "요즘 한의권 경기력이 정말 물이 올랐다. 아는 축구 관계자가 '한의권 쟤 완전 다람쥐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만큼 장점인 스피드를 살리면서 팀에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한의권은 박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박 감독님이 믿어주시니 제가 골로 보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박 감독은 한의권에게 형같이 대하면서 농담으로 자극을 주곤 했다. "형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운동할 때도 굉장히 장난을 많이 치세요. 경기력이 좀 좋지 않으면 '의권아, 너는 이제 '삐꾸'다. 끝났다. 나가라'고 농담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시니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그러니 경기장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 그도 공이 있다. 골을 기록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산 선수들을 하나로 모으는 최고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올 시즌 새로 들어온 신병들도 완전히 적응했어요. 신병과 고참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 신병들이 속칭 '(군기가) 빠지기' 시작했어요. 이제 일경인데 하는 행동 보면 상경 같아요. 특히 고무열과 이명주가 그래요."

웃음이 넘치는 선임 한의권, 물론 믿거나 말거나 ⓒ 아산 무궁화 제공

그래도 한의권은 내심 팀에 잘 융화되는 신병들의 모습이 흐뭇해 보였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휴 아직 그 계급에 벌써부터 빠지기는 이르죠"라면서도 "최고참 기수가 됐을 때 동기들과 모였어요. '병영 선진화'를 이루자고 다짐했죠.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신병일 때는 선임들 눈도 못마주쳤는데…"라고 '요즘 군대 좋아졌어'를 외친다. 가장 어려웠던 선임을 꼽아달라고 하니 별로 망설이지 않고 한 사람의 이름을 댄다. "김은선."

'말년' 한의권의 마지막 목표, 그리고 미래는?

이제 한의권은 전역이 1개월 가량 남은 '말년'이다. K리그2가 휴식기에 돌입하기 때문에 그는 아산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빌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6월 10일 경기가 끝나면 더 이상 '아산 한의권'을 볼 수 없다. 국방부 시계는 그래도 돌아간다지만 한의권은 지금이 제일 시간이 흘러가지 않을 때다. "시간이 너무 안가요. 진짜 안가요."

그가 남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수다'다. 틈만 나면 후임들의 방을 급습한다. 그리고 후임들과 신나게 수다를 떤다. 물론 그의 주장이다. 후임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주로 신병들 방을 많이 돌아다녀요. 떠들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더라고요." 취재진이 '신병 입장에서는 마음의 편지를 쓸 수 있겠다'라고 지적하자 그는 생각에 빠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네요."

'말년' 한의권의 목표는 간단하다. 몸 건강히 전역하는 것이 아니다.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군 생활을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성남FC전과 서울이랜드전을 모두 이겨서 감독님께 보답하고 싶어요." 그리고 후임들에게 좋은 선임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전역하고 나서도 후임들에게 연락이 오는 그런 선임으로 남고 싶어요. 적어도 김현과 안현범은 전화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아산에서 군 생활이 끝나면 그는 원소속팀으로 돌아간다. 대전시티즌으로 간다. 그는 "제가 60번째 선수일 것 같아요"라고 농담을 던지더니 "선수들이 많아서 경쟁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대전이 중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대전에서도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가 대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아산을 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그는 "뛰기 싫어요. 워낙 아산의 선수들이 막강해서 뛸 맛이 안날 것 같아요"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박 감독님께 멋지게 한 방 보여드리고 싶네요. 워낙 수석코치 하실 때부터 제게 희노애락을 맛보여주신 분이라 제가 작은 복수를 해도 될 것 같아요." 아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던 한의권은 벌써부터 아산에 대한 복수혈전을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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