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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성남=임형철 기자] 성남FC는 2015년 선수 강화위원회 발족 후 해마다 선수 입단 공개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프로팀에서는 당장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2015년, 2016년 공개테스트를 통해 합격한 (최종적으로 프로축구연맹에 선수 등록이 된) 총 9명의 선수는 끝내 K리그에 데뷔하지 못했다. 대부분 합격 직후 R리그에서 기회를 잡았으나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해 경쟁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물론 입단테스트로 뽑힌 선수가 대박을 터트리는 일은 국내외 통틀어 대단히 드문 사례이기는 하다.

그러나 올해 심상치 않은 선수가 등장했다. 255명의 공개테스트 지원자 중 유일하게 합격한 홍익대 최병찬이 리그 데뷔도 모자라 두 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당당히 팀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3월 28일 대전과의 FA컵 경기를 통해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4월 1일 아산전을 시작으로 리그 5경기에 출전 중이다. 나올 때마다 존재감을 보이는 최병찬에 대해 팬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 중 "저 선수 드리블 굉장하다" 싶으면 대부분 최병찬이다 ⓒ 성남FC 페이스북

‘255:1’의 사나이, 마지막이라 생각한 공개테스트

홍익대에 입학한 최병찬은 새내기 시절부터 두각을 내며 윙 포워드, 셰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기량을 뽐냈다. 그러나 3학년 재학 중 7~8개월가량의 장기 부상을 당해 거침 없는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재활 기간을 거치고도 쉽게 감각을 회복하지 못한 그는 프로팀 스카우터들의 외면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26일 대전전을 마치고 인터뷰를 가진 최병찬은 괴로웠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상을 당할 때가 한창 몸이 올라왔을 때였다. 상승세를 이어가 그대로 프로팀에 입단하는 것이 그려졌는데 장기 부상으로 모든 계획이 꼬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런 그에게 성남FC 공개테스트는 마지막 기회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섰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성남FC에서 뛸 기회라 더 특별한 마음으로 임했다”고 최병찬은 말했다.

서류 심사와 네 번의 실기 시험으로 진행된 공개테스트에서 최병찬은 255: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성남FC에 입단했다. 어느 때가 가장 힘들었냐는 말에 최병찬은 처음 테스트에 나설 때라고 답했다. “설렘이나 기대도 잠시였다. 위기가 먼저 찾아왔다. 1차 테스트부터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때문인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긴장감이 더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네 번의 실기 시험까지 살아남은 최병찬은 “장점을 골고루 갖춘 선수다. 테스트 내내 기복 없는 플레이가 돋보였다”는 심사위원의 평가와 함께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최병찬을 향한 주위의 주목도나 기대치가 미비했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공개테스트를 통해 합격한 선수가 1군 팀에서 두각을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최병찬은 공개테스트 후 반년 만에 성남FC의 주전 선수로 성장했다.

최근 그가 팀에서 입지가 달라졌음을 스스로 실감한 사건이 있었다. 운동 시작 전 다 같이 기합을 넣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새롭게 한 주를 시작하면서 운동하기 전에 다 같이 모여 파이팅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감독님이 나를 불러 선배들과 같이 구호를 외치라 하셨다. 드디어 감독님의 신뢰를 받는구나 싶어 기쁘면서도 책임감이 들었다”. 최병찬이 소개한 팀 구호는 “우리는 하나다”였다. 최근 최병찬은 1군 팀에서 당당히 하나가 됐다는 사실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 듯했다.

경기 중 "저 선수 드리블 굉장하다" 싶으면 대부분 최병찬이다 ⓒ 성남FC 페이스북

성남팬 최 씨(22), 제2의 황의조를 꿈꾸다

인터뷰 중 최병찬은 본인 자신을 당당히 성남팬이라 소개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가 성남FC 팬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말에 처음에는 립 서비스라 생각했지만, 그 말이 진심임을 알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병찬의 집은 5~6년 전 수원으로 이사했다. 게다가 부상 회복 후 재활 치료도 분당 모 병원에서 진행했다. 집에서 가깝고 병원 위치까지 맞물리니 성남FC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간이 될 때마다 탄천종합운동장을 찾아 성남을 응원했다.

최병찬은 성남팬 자격으로 '직관'하러 다닌 시절을 얘기하는 내내 황의조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황의조에 대해 “경기장에 갈 때마다 눈에 들어왔다. 대표팀이나 성남에서 뛰는 모습을 보니 존경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와 비슷한 플레이를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제2의 황의조’라는 별명을 권하자 그는 부끄러운 듯이 손사래 쳤다. “제2의 황의조가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별명이 붙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며 냉정함을 유지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 최병찬은 75점에서 80점 사이라고 점수를 매겼다. “주위에서 잘했다고 많이 얘기해주지만, 사실 스스로 만족 못 한 경기가 더 많다. 공격 포인트도 쌓고 특히 골로 더 존재감을 보이고 싶다”고 소망을 밝힌 그는 “수비적으로도 나는 더 공헌할 수 있다. 내가 뛰고 있는 자리는 팀에서 경쟁 중인 모두에게 소중한 자리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 중 "저 선수 드리블 굉장하다" 싶으면 대부분 최병찬이다 ⓒ 성남FC 페이스북

왜소한 체구? 그러나 최병찬은 문제 없다

178cm에 74kg. 최병찬의 체격 조건은 다른 선수들보다 왜소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최병찬의 플레이에서 연약하다는 느낌은 없다. 볼 키핑 중 몸을 활용해 버티는 모습을 꽤 보여주고, 특유의 센스를 살려 밀집된 수비를 풀어 나오는 탁월한 드리블 능력도 발휘한다. 왜소한 체구가 문제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병찬은 당당히 “내가 잘하는 플레이를 선보이는데 큰 제약은 없다”고 답했다.

최병찬은 “신체적으로 왜소한 게 다른 선수들에 비교해 많이 불리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볼을 관리하고 많이 뛰는 플레이는 원래부터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난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원래 많이 뛰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체력 운동이 큰 무리가 없어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장점은 더 살리려 하고 부족한 부분도 끊임없이 만회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리그 데뷔전부터 세 번째 출장 경기까지 4~50여 분을 소화한 그는 네 번째 출장 경기인 안산전부터 풀타임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대전전도 풀타임으로 그라운드를 누빈 그는 확실한 주전으로 더욱 입지를 다진 듯 보인다. 최병찬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욱 많은 것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엔 힘이 잔뜩 들어가 무리해서 잘하려는 마음만 강했었다. 근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팀 전술에 더 융화되고 팀의 승리를 위해 뛰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물론 여전히 긴장된다. 하지만 요즘은 책임감을 더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팬들이 날 응원해주는 목소리가 들리면 이기겠다는 집념이 더 생긴다. 많은 분이 기대하고 계신 걸 알기 에 그 기대에 부응하자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경기에 나서게 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최병찬은 ‘책임감’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공개테스트를 통해 합격한 자리, 팀원들과의 경쟁을 통해 먼저 확보한 자리, 팬들의 응원을 받는 자리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이 남다른 듯 보였다.

공개테스트 합격은 물론이요. 합격한 팀에서 주전으로 살아남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최병찬은 그 희박한 가능성을 열고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두 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출전하며 이제 K리그2 단독 선두 성남FC에 없어서는 안 될 공격 자원임을 입증하고 있다. 스스로 확보한 자리에 책임감부터 느낀다는 최병찬이 그동안 걸어온 이력이나 자세는 분명 남다르다. 최병찬의 활약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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