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통영=조성룡 기자] 그날도 어김없이 그는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 54회 춘계대학축구연맹전 16강전이 열린 통영. 이번 춘계연맹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톨릭관동대는 수원대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비수 김기훈도 그 중 하나였다. 수비수지만 최근 그의 득점 감각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었다. 조별예선에서 두 골을 기록한 그는 이번 경기에서도 득점을 노리고 있었다. '오늘도 하나 해야지.'

비결은 아버지와 김형열 감독의 '잔소리'였다. 운동선수 출신이자 엄한 성격인 그의 아버지가 "수비수여도 골을 넣어라, 골을 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던 것이 이번 춘계연맹전에서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 김 감독은 "너희 수비수들 키도 크고 헤더도 잘 따내. 그런데 왜 세트피스 할 때만 되면 그렇게 못하는 거야? 너희 이럴 거면 공격 가담하지 마"라며 구박 아닌 구박도 했다. 적어도 이번 춘계연맹전에서 김기훈은 아버지와 김 감독의 잔소리에 멋지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 번 더 응답했다. 후반 5분, 가톨릭관동대의 세트피스 상황이었다. 김기훈은 공격에 가담해 골문 앞에서 득점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키커가 보였다. 평소 힘이 좋던 동료였다. '뭔가 길게 올라올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 그는 살짝 먼 골대 쪽에 자리를 잡았다. 공이 생각했던 대로 길게 넘어왔다. 김기훈은 펄쩍 뛰어 머리에 공을 정확히 맞췄다. 그 공은 수원대의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제골이었다.

모두가 환호했다. 그 때 김기훈은 관중석을 바라봤다. 수많은 학부모들 사이로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관중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팀 동료들이 있는 벤치와 관중석은 반대였다.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는 관중석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누군가를 꼭 껴안았다. 대부분은 골 세리머니의 주인공이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끌어안은 사람은 한 중년 여성이었다. 알고보니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 박헌옥 씨는 감격에 젖어 있었다. 주변의 학부모들은 뿌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박 씨는 그들에게 "얘가 제 생일이라고 왔네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탄식이 터져나왔다. 주심이 단호하게 "5번(김기훈)"을 부르더니 경고를 꺼내든 것이었다. 관중들은 "에이 어머니 생일이라는데"를 외쳤지만 규칙은 지켜져야 했고 판정은 단호했다. 김기훈은 씩 웃으며 경고를 받아들였다. 다행히 그는 더 이상 경고를 받지 않았고, 가톨릭관동대는 그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내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애초에 계획한 세리머니는 아니었어요"

경기 후 가톨릭관동대 김형열 감독은 제자의 돌발 세리머니에 대해 판정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렇게 감동적인 볼 거리를 대학축구에서 보여주기는 쉽지 않아요. 이럴 때 주심이 운영의 묘를 살렸으면 어땠을까 해요. 솔직히 아쉬움이 남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자의 효심이 내심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물론 주심 또한 심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자연인이었다면 경고 대신 박수를 쳐줬으리라. 하지만 옆에서 김동민 코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얘 경고누적인 것 같은데…" 이것은 기우였다. 사실 그는 세리머니로 받은 것이 이번 대회 유일한 경고였다.

그의 어머니 박 씨는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부터 통영을 찾아 아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요"며 감동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기 며칠 뒤 생일이지만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네요"라고 말한 그녀는 "이번 대회에서 아들이 잘해주고 있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요즘 식단 조절을 하느라 치킨이 먹고 싶다고 아들이 항상 말해요. 대회 끝나고 돌아오면 원없이 치킨을 먹이고 싶어요. 대신 최대한 늦게 돌아왔으면 좋겠네요"라고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린 돌발 세리머니, 당사자는 어떻게 준비한 것일까? 김기훈은 세리머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쑥쓰러운 듯 웃었다. "예전부터 부모님 생일이 되면 형과 연락해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그렇게 어머니에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골라놓으라고 얘기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어머니 생일과 춘계연맹전이 겹쳤어요. 덕분에 대회에서 골을 넣어 어머니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세리머니는 조별예선에서 할 수 있었다. 연세대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도 그는 헤더로 골을 넣었다. 이 때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가 경기장에 찾아와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때도 (세리머니)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었어요"라고 밝힌 김기훈은 "달려가려고 봤는데 너무 멀더라구요.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그곳까지는 갈 수 없었어요. 대신 그날은 감독님에게 달려갔죠"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계획한 세리머니는 아니었다. 골을 넣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한 번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에서 골 세리머니까지 준비할 정도로 여유롭지도 못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은 눈 한 번 마주쳐도 통하는 사이다. "어머니가 눈에 띄자마자 달려가고 싶었어요. '골도 넣었는데 한 번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경고 생각은 일단 안했어요. 어머니께 이런 선물을 해드리는 것도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았어요."

김기훈에게 가족이란?

평소 김기훈은 가족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이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아버지는 집을 떠나 타지에서 일을 한다. "아버지께서 2주에 한 번 집에 오세요. 솔직히 자식들, 특히 축구선수인 저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 거잖아요. 죄송한 마음이 커요." 그가 부모님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축구로 성공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간절하게 축구를 한다.

부모님도 애틋하지만 그는 형에게 더 깊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축구선수인 자신을 위해 사는 동안 형은 소외됐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었다. "형도 저처럼 꿈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봤을 때 부모님이 제게 신경 쓰느라 형에게는 저만큼의 투자는 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 형은 직장에 다니는 사회인이에요. 형은 이제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자신의 꿈을 향해 가고 있어요. 저는 아직 학생이라 여전히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요. 혼자서 열심히 길을 개척하는 형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항상 미안해요. 더 편하게 꿈을 꿀 수 있는데 저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요."

그래도 형제의 우애는 남달라 보인다. 앞서 그가 말한 것처럼 올해 어머니의 생일에도 두 형제는 서로 연락하며 선물을 의논했다. "항상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라는 김기훈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지금은 저를 도와주시는 스폰서지만 나중에는 제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존재"라고 말한다. 김기훈이라는 축구선수를 만들기 위해 그의 가족들이 많은 희생을 했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했다 하더라도 어머니에게 줄 선물은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가톨릭관동대는 연습경기, 공식경기를 가리지 않고 골을 넣은 선수가 룸메이트에게 간식을 사는 전통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김기훈은 벌써 세 골을 넣었다. 벌써부터 룸메이트들이 "세 골이나 넣었는데 간식이 아니라 소고기를 사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외치는 상황이다. 기쁜 일이 많아질 수록 김기훈의 지갑은 바짝 메말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씩 웃으며 "다 사야죠"라고 말한다. "사실 (손)광채가 선방 수당을 받는 것처럼 저도 골을 넣으면 아버지께 골 수당 명목으로 용돈을 받아요. 대학생이니 많이 받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머니 선물 사드리고 친구들 맛있는 것 사줄 수 있는 정도는 될 것 같아요. 이번 대회 끝나면 모두 정산해야죠." 효심을 지극히 드러내더니 골 수당을 생각하며 웃는 걸 보면 또래와 다를 바 없는 영락 없는 대학생이다.

통영에 있는 수많은 대학 축구선수들은 모두 무언가를 위해 뛴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팀의 영광을 위해, 또는 우리가 모르는 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경기장에 나선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준비된 선수 만이 경기장에서 빛날 수 있고 고난과 역경이 녹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어필할 수 있다.

김기훈은 가족을 위해 뛰고 있다. 그는 이번 춘계연맹전에서 세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생애 최고의 생일선물을 선사했다. 그 선물을 위해 김기훈은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어떤 선물보다 땀이 녹아있었다. 때로는 그가 부럽다. 그는 축구선수이기에, 그리고 축구선수 밖에 할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어머니에게 선사한 훌륭한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