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데얀이 슈퍼매치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슬기로운 축구’는 전직 K리그 선수 출신인 이슬기 SPOTV 해설위원의 공간입니다. 대구FC에서 데뷔해 포항스틸러스와 대전시티즌, 인천유나이티드, FC안양 등 다양한 팀에서 활동했던 그는 현재는 은퇴 후 SPOTV에서 K리그 해설을 맡으면서 서울이랜드FC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과 해설위원, 스카우트의 냉철한 시각을 덧붙여 <스포츠니어스>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신선한 칼럼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이슬기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슈퍼매치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 K리그 최고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는 데얀과 조나탄이 나란히 페널티킥 골을 기록했다. 누군가에게는 페널티킥이 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슈퍼매치에서 페널티킥을 차는 건 대단한 배짱이 필요하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도 페널티킥에 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다.

내가 처음 본 승부차기는 1994년 미국월드컵 결승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경기였다. 당시 나는 베베토를 굉장히 좋아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의 세리머니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기가 끝난 뒤에는 베베토보다 한 선수가 더 기억에 남았다. 바로 이탈리아 로베르토 바조였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그는 이 경기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하며 우승컵을 브라질에 내주고 말았다. 미국월드컵이 열리기 전 1993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동도르를 싹쓸이 했던 바조도 이렇게 실축을 한다.

그는 마라도나의 뒤를 잇는 최고의 선수 후보로 거론될 만큼 이 대회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결승에 오르기까지 무려 5골을 넣었다. 하지만 그의 뼈아픈 실축으로 이탈리아는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이전까지 보여준 활약상을 인정받지 못한 채 패배의 주범으로 몰리게 됐다. 월드컵 MVP와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모두 빼앗기며 바조는 조금씩 추락했다. 실축 한 번으로 이렇게 꼬여버린 것이다. 당시 동네에서 축구를 하다 페널티킥을 놓치면 “네가 바조냐”면서 비아냥거렸던 기억이 난다. 바조가 비아냥의 주인공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만큼 축구에서 페널티킥은 너무나 쉽게 느껴졌다. 오히려 못 넣으면 이상한 것이었다. 나도 정식으로 처음 축구를 시작하면서 페널티킥을 너무 쉬운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승부차기 연습을 하게 됐는데 감독님께서 친절히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일단 공에 바람 넣는 곳으로 공을 세워 놓은 뒤 골키퍼는 절대로 쳐다보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기 등번호 만큼 뒤로 물러나라고 하셨다. 나는 7번이어서 일곱 발자국 뒤로 가야 했다. 그리고 옆으로 세 걸음을 이동하라고 지시하셨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생각한 코스대로 차라는 것이었다. ‘절대, 절대’ 코스를 바꾸지 말라고 하셨다.

학창시절 내내 페널티키커로 단 한 번도 실축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2009년 대구FC 시절에도 페널티킥 담당이었다. 그런데 개막전 성남과의 경기 후반전 추가시간에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포포비치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신인이라 너무 긴장됐지만 내가 이걸 넣으면 결승골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설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외국인 공격수 음밤바가 내 공을 빼앗아가며 “내가 차겠다”고 하는 것이다. 화가 나 코치진을 쳐다보며 내가 차려고 했는데 코치진이 “그냥 음밤바가 차게 놔두라”고 했다. 코치진의 지시였으니 어쩔 수 없이 음밤바에게 기회를 내줬다.

그런데 음밤바가 때린 슈팅은 성남 골키퍼 정성룡에게 막히고 말았고 그대로 경기는 끝났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그렇게 비기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 코치진은 “음밤바 기를 살려주기 위해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말라”면서 “다음에는 꼭 네가 차라”고 했다. 그리고 그해 시즌 막바지 대구는 4연승을 내달리고 있었다. 승승장구하는 와중에 경남과 경기를 했는데 전반에만 두 골을 허용하면서 경기가 어려워졌다.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페널티킥을 얻게 돼 추격의 기회를 잡았다. 이걸 성공하면 완전히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음밤바가 아니라 내가 페널티킥 기회를 얻었다. 초,중,고,대학 시절까지 페널티킥을 놓쳐 본 적 없는 페널티킥 100% 성공률의 내가 나섰다.

골키퍼는 김병지 형님이었다. 그 전에 FA컵에서 만난 적이 있어 그 경기 승부차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자신있었다. 하지만 난 너무나 급한 마음에 빨리 골을 넣고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감독님께서 알려줬던 룰을 깼다. 공을 놔두고 골키퍼를 쳐다본 것이다. 김병지 골키퍼와 눈이 마주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는 원래 차지 않던 방향으로 공을 찼다. 실축이었다. 내 수가 완전히 읽히고 만 것이다. 결국 0-3으로 패했고 경기 내내, 그리고 남은 시즌 내내 충격이 컸다. 처음으로 느낀 완벽한 실축이었기 때문이다. 그 경기가 시즌에 있어서 큰 영향도 없었기에 기억하는 분들은 거의 없겠지만 나에게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됐다.

페널티킥은 넣어야 본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 한 번의 페널티킥으로 팀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으니 키커의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슈퍼매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페널티킥을 쏘는 데얀과 조나탄을 보니 그들이 얼마나 대담한 선수인지를 알 수 있었다. 페널티킥, 그거 아무나 찰 수 있는 게 아니다. ‘골키퍼는 쳐다보지 말고 뒤로 일곱 걸음, 옆으로 세 걸음, 절대 방향을 바꾸지 말 것’ 초등학교 감독님께서 이 공식을 주문한 건 공식대로 움직이면서 부담감을 느낄 겨를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