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FC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최근 K리그 창단 붐이 일고 있다. 정확히는 시민구단 바람이다. 몇 년 전부터 의지를 드러냈었던 청주를 비롯해 천안, 이천 등 여러 도시에서 창단 관련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민구단은 K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둥이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를 합친 22개 구단 중 11개 구단이 시민구단이다. 이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월드컵의 정치적 산물인 시민구단

시민구단은 2002년 월드컵의 산물이었다. 월드컵 폐막 이후 5개의 월드컵경기장이 주인 없는 땅 신세가 되자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창단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지자체와는 달리 기업들은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프로리그 탄생 이후 20년 동안 기업 위주로 리그가 돌아갔던 현실에서 기업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면 창단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컸다.

결론은 시민구단이라는 새로운 형태였다. 시민들이 구단의 소유 주체가 되어 독립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시작은 대구FC였다. 월드컵 잉여금과 기업 지원금이 투입됐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주 공모였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이 수원 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지어진 것처럼 대구는 팀을 시민들의 힘으로 탄생시켰다. (대구FC보다 창단은 대전시티즌이 더 먼저 했지만 대전시티즌의 첫 출발은 컨소시엄 형태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구단 타이틀은 대구FC의 자랑이다 ⓒ 대구FC 제공

최초의 시민구단인 대구가 2003년 K리그에 안정적으로 안착하자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시민구단 열풍이 불었다. 곧이어 인천유나이티드, 경남FC, 강원FC, 광주FC 등이 차례로 생겨났다. 시민구단은 기업구단 일색이었던 K리그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축구계의 판을 키운다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창단까지는 좋았다. 모두가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를 꿈꿨다.

현실은 시민구단 아닌 시립구단

시민구단이 K리그에 첫선을 보인 지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리그에 뿌리를 완전히 내리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민구단의 현실은 어떠한가. 임금체납, 자본잠식, 추경예산 등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가 시민구단을 감싸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11개 구단 대다수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2015년 시민구단의 본보기로 꼽히기도 했던 성남FC는 지난 시즌 강등 후 끝이 없는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성적을 빌미 삼아 시의회에서 예산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 핵심 자원인 황의조를 일본 무대로 보내야만 했다.

시민 주주들이 모아 놓은 자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창단 초반 체계적이지 못했던 운영은 빠른 속도로 자금을 소진해 나갔다. 강원FC는 2008년 말 창단 후 2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90억 중 80%를 썼다. 광주FC는 세 번째 시즌에 잔액이 마이너스(-)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렇듯 모아놓은 쌈짓돈을 다 날린 구단들은 지자체 보조금에 의존하여 팀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시민구단의 핵심은 독립성이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독립성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지킬 수 없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외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지자체 보조금에 팀의 운명을 걸다 보니 항상 정치인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 항상 터져 나오는 낙하산 인사 논란도 이런 문제에서 기인한다. 현시점에서 시민들이 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한정적이다. 상황이 이런데 K리그의 시민구단들을 진정한 시민구단들로 볼 수 있을까. 실업 리그인 내셔널리그의 시청 구단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프로축구연맹의 판단이 중요

지자체에서 팀 창단을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프로축구연맹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연맹은 일정 수준의 자금과 시설 완비 그리고 그럴듯한 운영 계획만 있다면 K리그의 양적 확대를 위해 시민구단을 K리그의 식구로 받아들였다. 오로지 창단에만 중점이 맞춰졌던 창단 프로젝트들은 창단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의 문제를 만들어냈다.

승강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K리그에 더 많은 구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동감한다. 하지만 이를 시민구단으로 메꾸는 것은 반대한다. 단기적으로는 K리그의 발전으로 비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지역 정치인들의 선거용 업적 쌓기에 이용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성남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든든한 구단주가 뒤에 있기에 강등 후에도 구단이 유지되고 있지만, 만약 그가 떠난다면 성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2014년 말 경남FC의 사례를 통해 위험성을 직접 느껴본 바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구단 타이틀은 대구FC의 자랑이다 ⓒ 대구FC 제공

들리는 이야기로는 최근 창단 움직임이 활발한 이천의 경우 한 사단법인이 운영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일본 기업의 지원까지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축구계에선 벌써부터 실현 가능성과 지속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너무 많은 실패 사례를 봐왔기에 축구인들 또한 이제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연맹은 K리그의 새 식구가 되길 원하는 시민구단에 대해 이제는 까다로운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창단 후 10년이 지났을 때 스스로 설 수 있을 정도의 계획이 없다면 가차 없이 K리그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창단을 준비하고 있는 여러 도시는 이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이미 적지 않은 팬들이 시민구단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위기에 처해있을 때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 발전의 시작이다. ‘판을 키우고 보자’는 프레임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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