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민축구단과 화성FC가 '오렌지 더비'라는 이름으로 맞붙는다 ⓒ 각 구단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K3리그에는 꽤 흥미로운 매치업이 많았다. K3리그에서 가장 팬이 많았던 서울 유나이티드와 부천FC1995의 '서포터 더비'도 있었고 고양시민축구단과 파발FC의 '3호선 더비'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비도 변하는 법이다. '서포터 더비'는 부천이 K리그 챌린지에 진출하며 사라졌고 '3호선 더비'는 파발FC가 해체되며 그 명맥이 끊겼다.

오랜만에 K3리그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5월 21일 K3리그의 전통 강호 포천시민축구단과 신흥 강호 화성FC가 맞붙는다. 그런데 그냥 맞붙는 것이 아니다. '오렌지 더비'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붙는다.

매치업의 탄생, '이슈 한 번 만들어보자'

사실 '서포터 더비' 이후 K3리그에 흥미를 끌 만한 매치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이 경기는 가면 정말 재밌다'거나 'K3리그 안봐도 이 경기는 봐야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경기가 없었다. K3리그에 대한 축구계의 관심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뭔가 볼 거리도 없었고 이야깃거리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는 두고두고 K3리그 구성원들의 고민거리였다. K3리그의 구단들은 구단협의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대한축구협회, 각 구단과 교류를 한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고민은 공통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K3리그가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프로축구에 비해 열악한 K3리그의 사정 상 뭔가 화려한 이벤트를 하기는 어려웠다. 각 팀의 감독들이 'XX는 죽어도 우리 못이긴다'는 식의 날 선 발언으로 주목을 끌기도 어려웠다. 그 발언을 보도하는 매체는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매치업'이었다. 과거 성남FC와 수원FC가 '깃발 더비'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걸어 동기부여를 극대화시켜 흥미를 끌어보자는 것이었다. K3리그의 강호로 꼽히는 포천과 화성이 적극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양 팀의 유니폼 색깔이 같았기 때문에 경기의 명칭은 자연스럽게 '오렌지 더비'가 됐다.

깃발은 이미 프로축구에서 나왔기 때문에 식상했다. 따라서 '오렌지'가 이 경기의 핵심 키워드였기 때문에 오렌지를 활용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게다가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해야 했다. 결국 장고 끝에 몇 가지 이벤트를 계획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도 이 경기를 K3리그 공식 더비전으로 선정해 적극 홍보하기로 했다.

깃발 대신 유니폼과 카드를 걸었다

'오렌지 더비'의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긴 팀이 다음 맞대결에서 홈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K3리그의 '리얼 오렌지'를 놓고 두 팀이 맞붙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 첫 맞대결에서는 두 팀 모두 원정 유니폼을 입는다. 여기서 승리하는 팀이 다음 경기에서 홈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유니폼을 걸고 벌어지는 경기 속에 세세한 이벤트 또한 준비됐다. 양 팀은 이번 경기에서 오렌지 주스 200개와 오렌지 색 상의 30장을 준비했다. 주스는 입장하는 관중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고 티셔츠는 선수들이 유니폼 위에 입고 입장한 다음 벗어서 경품으로 나눠줄 예정이다.

화성FC가 아니다. 포천시민축구단이다 ⓒ 포천시민축구단 페이스북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벤트에 드는 비용을 패배한 팀이 계산한다는 것이다. 화성 전정민 사무국장은 "주스와 상의 값을 합치면 약 50만 원 가량이 나온다"면서 "지자체의 지원 예산으로는 규정 상 이벤트에 돈을 쓸 수 없다. 대신 구단 자체 수익으로 이를 충당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니다. K3리그의 예산 규모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행히 한 업체가 도움을 줬다. 공교롭게도 포천과 화성의 유니폼 브랜드는 다르지만 공급처는 같은 곳이다. 이 업체가 원가만 받고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그렇다고 대충 만든 것은 아니다. 디자인 비용, 일명 '마킹비'가 원가에서 상당한 양을 차지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주스는 홈 팀이 일단 결제하고 사후에 정산하지만 옷값은 외상이다. 승패가 결정되면 외상값의 향방 또한 정해질 예정이다. 하지만 양 팀이 더욱 신경쓰이는 것은 돈이 아니다. 경기다.

은근 신경쓰는 화성과 부담 줄이려는 포천

축구 경기의 특성 상 승패가 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비길 때도 있지만. 이런 경기에서는 이기면 좋겠지만 지더라도 패배의 충격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양 팀의 숙제다. 이 부분에서 포천과 화성은 미묘한 온도 차이를 가지고 있다.

패배를 조금 더 걱정하는 것은 화성이다. 바로 패배했을 경우 감독의 '조공 퍼포먼스' 때문이다. 이번 경기에서 패배한 팀의 감독은 사전에 제작된 오렌지 색 티셔츠를 한 벌 들고 가서 승리 팀 감독에게 티셔츠를 입혀주는 퍼포먼스를 펼칠 계획이다. 패자의 입장에서는 굴욕적이고 승자의 입장에서는 기쁨이 절정에 달할 순간이다.

화성이 패배했을 경우 이 퍼포먼스를 걱정하는 이유는 감독 간의 나이 차이 때문이다. "우리 김성남 감독과 포천 김재형 감독은 나이 차이가 20년 가까이 난다"고 말한 전 사무국장은 "그래도 김 감독이 '나는 졌다고 그런 거 안할 사람이 아니다. 구단과 구단 간의 약속 아니냐. 괜찮다. 하겠다'고 말해줬다. 김 감독 입장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선수들의 속은 바싹 타들어갈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뛰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웃었다.

반면 포천은 이번 경기에 대해서 선수단에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아직 FA컵 16강 목포시청전 패배의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커보인다. "오렌지 더비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번에는 꼭 이겨야한다'는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이광덕 본부장은 "지난 FA컵 경기가 아쉽다보니 분위기가 약간 침체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단에 오렌지 더비까지 강조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화성FC가 아니다. 포천시민축구단이다 ⓒ 포천시민축구단 페이스북

하지만 '오렌지 더비'를 가장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신경쓰고 있는 사람이 이 본부장이라는 이야기가 축구계 내에 파다하다. 게다가 이번 경기는 포천의 홈에서 열린다. 선수단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이 본부장은 아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를 앞두고 두 팀의 입장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승리해야 한다는 명제는 같다.

K3리그, 흥행의 한계를 뛰어넘을까?

K3리그는 K리그 만큼 많은 팀을 가지고 있다.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가 22개 팀이고 K3리그가 21개 팀이다. 창설 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팀은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흥행 측면에서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 클럽의 한계라 볼 수도 있고 한국 축구의 아쉬운 면 중 하나라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렌지 더비'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물론 인위적인 느낌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이 켜켜이 쌓여야 하는 '더비'가 한 순간에 뚝딱 만들어질 수는 없다. 더비라기 보다는 눈길이 갈 만한 매치업에 양념을 더 가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K3리그에는 수많은 더비가 등장했다 사라졌다. 이야기가 될 만한 경기들이 많았지만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제 K3리그가 힘을 합쳐 제대로 된 나름의 상품을 내놓으려고 하고 있다. 이 경기는 성공할 수도 있고 다른 사례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풀뿌리 축구'의 새로운 시도는 한 번 주목할 만 하지 않을까. 5월 21일 오후 3시 포천종합운동장. 이곳에서 K3리그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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