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vs FC안양 ⓒ 스포츠니어스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진다. 안양LG가 서울로 연고 이전을 한 뒤 어렵게 다시 창단한 FC안양, 그리고 이제는 K리그를 대표하는 빅클럽으로 성장한 FC서울이 역사상 첫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FC서울과 FC안양은 바로 내일(19일) 저녁 7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17 KEB하나은행 FA컵 32강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친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이 역사적인 맞대결을 앞두고 이 경기에 관한 연속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이 한 경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기다림이라는 것은 언제나 길게 느껴진다.

4월 19일 수요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남을 경기가 펼쳐진다. 연고이전으로 엮인 FC서울과 FC안양이 KEB하나은행 2017 FA컵 32강전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양 팀의 팬들뿐 아니라 수많은 축구팬들이 이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아마 하루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있다. 20세기부터 안양을 응원했던 김인규(35) 씨다. 그는 무려 13년 만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안양 축구의 굴곡진 역사와 함께 울고 웃었던 그의 20년 가까운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못막을 것 알면서도 막고자 했던 '연고이전'

그가 안양을 응원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고등학생일 때였다.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뭔가 좀 허전했어요. 축구를 더 보고 싶었던 것이죠. 당시 학교를 안양에서 다녔기 때문에 안양 경기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 때는 정말 한심한 팀이었어요. 10개 팀 중에서 98년에는 8위, 99년에는 9위를 했으니까요."

"그런데도 묘하게 매력이 있었어요. 끊을 수가 없었죠. 그러다보니 계속 안양을 응원하고 정이 들었죠." 그의 안양 사랑은 그렇게 조금씩 커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안양 축구는 항상 그와 함께 있었다. 팀이 잘하던 못하던 그에게 안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다.

하지만 2003년 가을,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안양LG가 연고이전을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도 이야기가 나왔고 서포터인 레드 내부에서도 이 소문이 돌았어요." 불안했지만 구단 측에서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터라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은 없었다. "설마 했죠. 소문이 돌 때는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죠."

결국 안양LG는 서울로의 연고이전을 발표했다. 그 때 그는 이미 행동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 팀을 잃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기업 하는 일이니 일개 팬들이 어떻게 막겠어요." 연고이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시위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대한축구협회 앞에서 시위한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굉장히 추웠어요. 팬들끼리도 '우와 진짜 춥다' 하다가도 협회로 진입하는 차량이 있으면 몰려가서 강하게 항의하고 그랬죠. 물론 다들 아시다시피 LG 제품 불매운동 등 안해본 게 없을 거에요. 하지만 결국 팀은 떠났고 우리는 그대로 남았죠."

남은 것은 공허함과 허무함, 그리고 그의 다짐

그렇게 안양LG는 안양을 떠나 FC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공허함과 허무함이었다. 축구에 발길을 끊을까 했지만 이미 그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있는 것이 바로 축구였다. 결국 다른 팀의 경기를 보러 다니면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 자기 자신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2003년까지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국가대표팀이나 FA컵 중립 경기가 있을 때 마음 편하게 경기를 보러 갔죠. 하지만 2004년부터 발길을 끊었어요. 저 경기장이 내 팀을 빼앗은 기분이었어요. 당시 연고이전의 주된 논리 중 하나가 '수도 서울의 훌륭한 축구전용구장을 텅 비울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복합적인 사정이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도저히 그 경기장에 갈 수 없었어요."

그는 정말 독하게 한 번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일종의 보이콧을 하면서 세운 나름의 예외 조항이 있었다. 바로 '내 팀이 생겨서 내 팀과 함께 서울 원정을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데 무려 13년이 걸렸다. 그것도 아주 어렵게. 서울과 안양의 이번 FA컵 경기는 그에게 13년 만의 서울월드컵경기장 방문이 될 예정이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김 씨가 차차 '유랑 생활'에 적응할 때쯤 낭보가 전해졌다. 2012년 FC안양 창단 지원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FC안양의 창단이 확정된 것이다. "당시 회사에 있었어요. 지인들의 연락을 통해서 알게 됐죠.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화장실로 갔어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나오더라구요. 그야말로 펑펑 울었죠."

창단식에서 안양은 '서울 타도'를 결의하기도 했다 ⓒ 안양시청 제공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던 2017 FA컵

안양이 창단되면서 김 씨에게는 드디어 '내 팀'이 다시 생겼다. K리그 챌린지에 있는 가난한 구단이지만 그래도 안양은 무엇보다 소중한 팀이었다. 첫 시즌 FA컵에서 수원 삼성을 만나며 10년 만의 지지대 더비, '오리지날 클라시코'를 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 그리고 안양 팬들에게는 '끝판왕'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바로 FC서울과의 경기였다.

2017년 FA컵 추첨 결과는 안양 팬뿐 아니라 모두를 설레게 했다. 안양이 한 경기만 이길 경우 서울과 맞붙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팬들도 언론도 다들 안양이 당연히 서울을 만날 것이라고 예상했잖아요. '그 난리를 쳐놓고 못올라가면 정말 쪽팔린 일인데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불안감은 현실이 될 뻔했다. 3월 29일 열린 안양과 호남대의 경기는 꽤 치열한 접전으로 흘러갔다. 후반 막판까지 양 팀은 0-0으로 팽팽히 맞섰다. 물론 연장전과 승부차기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조급한 것은 호남대가 아닌 안양이었다. 그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있어서 그날 경기에 가지 못했어요. 중계도 없었죠. 그나마 한 팬이 응원석에서 SNS 라이브 중계를 해주는 덕에 경기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승부는 후반 44분이 되어서야 갈렸다. 안양 이상용이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솔직히 잘 몰랐어요. '어? 저거 골인가? 골인가?' 하고 있었는데 중계하던 폰이 넘어지면서 환호성이 터지더라구요. 그래서 골인 줄 알았어요."

밖에서는 기쁨의 감정을 꾹꾹 눌렀지만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 감정이 폭발처럼 분출됐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었다. "집에 들어오니까 갑자기 눈물을 멈출 수가 없더라구요. 안양 지원 조례안이 통과됐을 때와 비슷했어요. 너무 기뻐서 울면서 혼자 맥주 마시다가 잠들었어요."

누군가에게는 13년을 기다린 한 경기

이제 김 씨는 서울과의 FA컵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 골이라도 넣으면 울 것 같아요"라고 말한 그는 선수들이 승리의 부담감 대신 최선을 다해줄 것을 부탁했다. "솔직히 다른 팬들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승리를 바라거나 하지는 않아요. 우리의 전력을 알고 있으니까요."

"2013년 FA컵 32강전과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 때 수원 삼성과 맞붙었죠. 우리가 선제골을 넣고도 내리 두 골을 먹히면서 1-2로 역전패를 당했어요.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 당시 모든 안양의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 쓰러져서 일어나지를 못했어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뛴 거겠죠? 이번 경기에서 그런 모습만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그는 과거 애정을 쏟았던 옛 팀을 상대방으로 조우하고 서울 팬들과 처음으로 그라운드 반대편에서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봤다. "생각해서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한 그는 늦은 밤에 솔직한 심경을 담은 한 마디를 메신저로 보내왔다. 이를 마지막으로 소개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맺으려고 한다.

"아이고…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 오래 걸렸소. 어느 클래식 팀에는, 그리고 FC서울에는 매년 오는 FA컵 32강전 한 경기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한 경기가 13년짜리 기다림이었음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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