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떠났다 ⓒ 광주FC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최근 K리그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단연 '감독'이다.

사람은 언제나 죽듯이 감독들도 언젠가는 팀을 떠난다. 올해는 유난히 변화가 많았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 성남FC, 포항 스틸러스가, K리그 챌린지에서는 서울 이랜드, 대구FC가 시즌 도중 감독과 결별했다.

포항과 서울 이랜드는 발 빠르게 새 감독을 선임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했지만, 아직 남은 구단들은 감독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부진한 구단의 감독들은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이고, 계약 기간이 올해로 종료되는 감독들도 있다. 그야말로 '감독 대이동'이 예고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심을 모을 수 밖에 없다. 아직 '백수'인 감독들도, 현재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감독들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위시리스트'로 꼽히는 감독은 광주FC의 남기일 감독이다. 올 시즌으로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남 감독은 여러 팬들이 "제발 우리 팀으로 오셨으면…"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사실 광주는 지방의 조그만 시민구단일 뿐이다.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막대한 연봉을 들여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팀도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K리그 클래식 우승이나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아니다. '잔류'가 목표인, 그야말로 소박한 구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감독에 대한 관심은 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점점 불타오르고 있다. K리그 감독 구직 시장이 요동칠 수록 남기일의 거취는 더욱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팬들은 왜 남기일을 향해 구애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한 번 알아보자.

남기일의 정체성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축구

광주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광주와 맞붙는 상대팀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방심할 수 없다. 언제 광주의 역습에 당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패배가 유력한 상황에서도 광주는 한 골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

약팀이라고 수비적인 전술을 즐겨쓸 법도 하지만, 일단 광주의 기본 전술은 '공격'이다. 어떤 강팀을 만나더라도 대등하게 맞붙으려고 한다. 지금까지 광주의 득점은 총 37골로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골들은 모두 끊임없이 상대의 골문을 두들긴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광주는 이겨야 할 팀은 잡고, 승리가 쉽게 점쳐지지 않는 팀에게는 일단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5월 상주-인천-수원FC 3연전에서 전승을 거둔 것은 올 시즌 상승세의 원동력이었다. 시즌 말미에는 잔류 경쟁을 해야 할 수도 있는 팀들이기에 이 시기에 거둔 승리는 승점 3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5월의 3연승은 남기일에게 이달의 감독상을 안겨줬다 ⓒ 광주FC 제공

그렇다고 강팀에게 마냥 약하지도 않다. 11패 중 3점 차 이상으로 진 경기는 단 한 번 밖에 없다. 리그 1강 전북에게 0-3으로 패배한 것이 유일하다. 특히, 현재 리그 상위권 팀들과의 경기에서는 펠레 스코어로 졌다. 경기가 벌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덤볐고, 무승부에 만족하기보다는 이기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덤벼든다. 그래서 광주는 극장골이 많지만, 그만큼 후반 막판 실점이 많다.

이는 남기일 감독의 기본 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기에 지더라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으면 질책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졌지만 경기력에 만족한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라는 그의 코멘트는 승패보다는 선수들이 어떻게 싸웠는가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반대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기더라도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남기일의 심기는 불편해진다. 2014년 K리그 챌린지에서 감독대행을 할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수원FC에게 1-0으로 승리를 거두고도 그는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경기는 이겼지만 광주의 색깔이 없다는 사실이 그를 실망시킨 것이다. '이기는 축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축구'를 하라는 감독 밑에서 선수들은 죽기살기로 뛸 수 밖에 없다.

팬들은 광주의 모습처럼 경기장 안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길 원한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만회하기를,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앞서나가길,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점수차를 더 벌리기를 원한다. 팬들은 팀을 위해 90분 내내 응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찌감치 팀이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은 원하지 않는다. 후반 막판에 넣은 한 골이 승부에 아무 의미 없어도 팬들은 그 한 골에 환호한다. 남기일의 축구 철학은 팬들이 원하는 것과 일치한다.

위기를 오히려 이용하는 남기일

시민구단은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어렵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잡음은 온전히 경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가장 대표적인 잡음은 역시 운영비다. 대부분의 시민구단이 자금난에 허덕인다. 광주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시민구단에 비해 더욱 열악한 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사기가 떨어지거나 경기력이 저하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기일 감독은 "우리 팀은 가진 것이 없는 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물론 현 상황에 대한 자조적인 뜻도 담겨 있겠지만, 간절함과 배고픔을 활용해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는 것은 남기일이라는 감독을 평가할 때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5월의 3연승은 남기일에게 이달의 감독상을 안겨줬다 ⓒ 광주FC 제공

게다가 광주는 연패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시즌 초반 수원FC, 울산, 서울에게 3연패한 이후 2연패가 두 차례 있었을 뿐이다. 지더라도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했다. 올 시즌 광주가 쌓아온 승점은 '반짝' 승점이 아니다. 시즌 내내 꾸준히 쌓아온 승점이다. 한 경기 삐끗하면 순식간에 순위가 미끄러지는 K리그 클래식에서 그들은 묵묵하게 자신들의 길을 걸었다.

이런 것들은 남기일의 위기관리능력을 잘 보여준다.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주전급 선수가 부상을 당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구멍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선수층이 얇은 상황에서 남기일은 선수들을 잘 다독였고,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 칼바람이 부는 K리그 클래식에서도 남기일 만큼은 구단 내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팬들 역시 '가성비 최강'의 남기일에게 경기력만큼은 비난의 화살을 날릴 수 없다.

언제나 강등 후보, 보기 좋게 비웃는 남기일

지난 2일 광주월드컵경기장. 광주FC와 FC서울의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가 열리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승점을 이긴다면 광주는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전반전을 1-1로 마무리한 광주는 끝까지 버틴다면 상위 스플릿 진입이 유력했다. 상주가 전북에게 패배하고, 광주가 무승부 이상을 거둔다면 상위 스플릿 진출의 주인공은 광주였다.

하지만 광주는 후반 추가 시간에 윤일록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1-2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결과는 상위 스플릿 진입 실패였다. 9위로 내려 앉으며 다시 한 번 잔류를 위한 5경기를 치러야 한다.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들은 주저 앉으며 낙담했지만, 상위 스플릿 진입을 놓친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주는 언제나 시즌 개막 전 강등 후보로 꼽힌다. 당연히 가능한 예측이다. K리그 클래식 팀 중에서 가장 적은 수준의 운영비로 운영되고 있다. 머니 게임이 성적까지 좌우할 수 있는 현대 프로축구에서 광주는 이미 다른 구단에 비해 불리함을 안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광주는 멋지게 이 예상을 뒤엎고 있다. 2015 시즌에는 창단 이후 최다인 10승을 거둬 10위로 잔류했고, 올 시즌에는 스플릿 라운드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10승을 거두고 있다. 비록 상위 스플릿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지금까지의 기세를 잘 이어간다면 잔류가 유력하다.

항상 광주의 선전 비결에는 '신인들의 활력', '하나된 조직력' 등의 키워드가 등장한다. 젊은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뛴 것이 비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고 조직력을 만들어가는 것은 감독의 능력이다. 결국 광주의 선전 비결은 '남기일'이라는 것이다.

남기일에게 바라는 것은 곧 K리그에 바라는 것

물론 남기일 축구가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그의 축구에도 논란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너무 거칠다'는 것이다. 올 시즌 광주는 유난히 비매너 논란에 시달렸다. 광주와 상대한 팀들은 '유난히 거칠다'고 말한다. 이것은 약팀이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다른 팀에 비해 유독 충돌이 많다는 것은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팬들이 남기일을 원하는 이유는 K리그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누군가가 이기면 반드시 누군가는 지고, 12개 팀 중에 단 한 팀에게 K리그 클래식 우승컵이 주어진다는 것을 팬들은 안다. 팬들의 기대보다 지는 경우는 비일비재 할 수 있고, 그 경기가 직접 돈을 주고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에서 본 경기일 확률도 높다.

5월의 3연승은 남기일에게 이달의 감독상을 안겨줬다 ⓒ 광주FC 제공

그렇다면, 팬들의 요구는 '이겨라'가 아닐 것이다. 대신, '열심히 싸워라'가 될 것이다. 지더라도 후회 없이 싸우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축구를 원한다고 보여진다. 아직 시즌도 끝나지 않았고, 광주와의 계약도 만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팬들이 남기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일듯 하다. 올 시즌 팬들과 감독의 만남이 유독 잦았던 것은 단순한 성적 부진이 아니라 이런 투지의 실종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남기일 축구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핫한 감독인 남기일의 내년 시즌은 아무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광주와의 재계약이 유력하다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더 나은 지원이 보장된 다른 구단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물론 남기일 감독의 입장에서는 남은 다섯 경기 동안 광주를 잔류 안정권에 진입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올 시즌 K리그 감독들은 유난히 춥다. 다양한 이유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감독들도, 현재 사퇴의 압박을 직·간접적으로 받는 감독들도 있다. 구단들도 감독의 거취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팬들은 정답의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각 감독과 구단, 그리고 K리그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지 '남기일 선호 현상'을 통해 한 번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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