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어곡FC 이현우 ⓒ 스포츠니어스
양산어곡FC 이현우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천안=김귀혁 기자] 양산어곡FC 이현우는 이제 축구를 즐기고 있다.

24일 양산어곡FC는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천안시티FC와의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2라운드 맞대결에서 상대 파울리뇨와 김륜도, 장백규와 김대중에게 연속으로 실점하며 0-4로 무릎을 꿇었다. 이날 결과로 양산어곡은 프로 팀을 상대로 기적을 연출하는 데 실패하며 올 시즌 코리아컵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경기 전부터 양산어곡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체급 차이가 컸다. 이날 천안시티는 외국인 선수 파울리뇨와 에리키가 선발로 나섰고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김대중과 마상훈, 김륜도 등이 출격했다. 반면 양산어곡은 나름 프로 경험이 많았던 한상운과 김부관이 개인 사정으로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K5리그 경기의 정규 시간은 80분이다. 하지만 코리아컵은 90분 경기에 상대도 프로였기에 이에 따른 체력 저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이러한 예상은 현실이 되는 듯 보였다. 전반 2분 만에 상대 파울리뇨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내줬고 5분 뒤에도 실점과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불안함을 양산어곡 이현우 골키퍼가 씻어냈다. 이현우는 전반 14분 마상훈의 헤더 슈팅을 막아냈고 전반 22분 오현교의 헤더도 선방한 뒤 흘러나오는 공에 대한 에리키의 슈팅도 빠른 2차 동작으로 막아냈다.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전반 29분 천안시티 오윤석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선방으로 잠재웠고 전반 43분 에리키의 결정적인 헤더도 손 끝에 걸리며 무위에 그치게 했다. 후반전에도 이러한 선방쇼가 이어졌고 여기에 골대까지 몇 차례 도와주며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비록 후반 27분 파울리뇨의 중거리 슈팅을 막아내지 못한 뒤 연이어 세 골을 실점하며 무너졌지만 이현우의 활약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실 이현우는 양산어곡에서 프로 출신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용인대를 거쳐 지난 2017년 대구로 이적하며 프로팀 입단에 성공했다. 하지만 세 시즌동안 리그 데뷔를 하지 못했고 주로 R리그에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결국 이현우는 201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현재는 K5리그 양산어곡에서 취미로 축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경기 후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이현우의 표정은 밝았다. 비록 네 골을 허용했으나 아쉬움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현우 역시 "아쉬움은 전혀 없다"면서 "굳이 하나 꼽자면 네 골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으로 실점하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왔다. 특히 벤치에 있는 선수들 중 다섯 명 모두 교체했다. 그렇게 다 같이 경기를 뛰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분이 좋았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골키퍼는 공을 무조건 막아야 하고 실점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체급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 상황 아니었다. 선방을 할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최대한 길게 버텨보자는 마음뿐이었다. 우리가 득점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끝까지 버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전반전 종료 후 웃으며 동료들과 대화하는 양산어곡 이현우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전반전 종료 후 웃으며 동료들과 대화하는 양산어곡 이현우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이현우의 이러한 바람처럼 전반전은 뜻대로 풀렸다. 그리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 동료들에게 다가가 웃는 얼굴로 무언가 말을 하는 모습이었다. 이 말을 꺼내자 이현우는 "나는 일단 즐기러 왔다. 체급 차이도 인정하고 원래 있던 선수들도 많이 빠졌다"면서 "그 선수들이 빠진 대신 가서 즐기면서 잘하자고 선수들과 다짐했다. 어린 선수들도 많고 군대에 있다가 휴가를 쓰고 나온 선수들도 있다. 다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전반전 끝나고도 그렇게 웃으면서 즐겁게 나왔다. 경기가 끝나고도 졌지만 다 같이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원래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축구 경기에서 원정팀이 홈팀의 장내 아나운서와 팬들의 호응 속에 인사를 하는 것도 흔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현우는 "오늘 온 선수들 중에 저렇게 팬들의 응원을 받고 축구했던 사람들이 거의 없다"면서 "원정팀이지만 팬들에게 인사를 가는 것도 예의 아닌가. 그분들도 돈을 내고 경기를 보러 오신 거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인사를 하러 갔다"라고 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천안시티 팬들은 '양산어곡'을 크게 외치며 선수들을 맞이했다. 이현우도 "참 기분 좋았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신 것 같았다"라며 미소 지었다.

이날 경기는 양산어곡 구단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현우에게도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현우는 대구에 입단했지만 프로 경기에 나선 기록은 없다. 사실상 처음으로 프로팀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의욕이 넘쳤을 법하지만 이현우는 오히려 담담했다. 그는 "사실 똑같았다. 프로팀과의 기록은 없지만 더 긴장되지는 않더라"라며 "물론 몸은 현역 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편하게 했다. 오히려 선수 때보다 더 편안한 마음이었다"라고 소개했다.

편안한 마음치고는 인상적인 활약이었다. 분명 프로 진출에 대한 욕심도 생기지 않았을까. 이에 이현우는 "지금이 만약에 3년 전이라고 한다면 다시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내가 2020년부터 축구를 안 했다"면서 "대구에서의 계약이 끝나기 전에도 이미 마음의 정리를 했었다. 그래서 그만뒀을 때도 아쉬움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또 대구에 있을 때 조현우 형과 같이 있었다. 그 형에게 너무 좋은 축구를 배웠고 그런 레벨에 있는 선수와 훈련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리그를 못 뛰었던 것 말고 후회는 없다"라고 전했다.

이날만큼 이현우는 양산어곡의 '빛현우'였다. 하지만 이현우는 아직도 조현우와 함께 했던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는 "(조)현우 형이 보여주는 활약이 훈련할 때는 그 이상으로 나온다"면서 "최고 레벨에 있는 선수들도 훈련에서 정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느꼈다. 세세한 '팁'도 많이 알려주셨다. 워낙 잘하는 걸 아니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과적으로 경기는 못 뛰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회상했다.

양산어곡 이현우의 대구 시절 모습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양산어곡 이현우의 대구 시절 모습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 생활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한 경기라는 기록의 소중함은 아직도 이현우의 마음에 남아 있다. 이현우는 "내가 대구에 3년 있었는데 첫 시즌에는 시작하자마자 무릎을 다쳐서 1년 쉬었다"면서 "2년 차 때는 여러 기회가 생겼는데 아쉽게 나에게까지 그 기회가 안 오더라.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틀어지니까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2019년에는 즐겁게 축구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프로 생활은 마감했지만 세미프로 리그로도 도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현우 역시 "나도 대구에서 나오고 더 해보려고 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다른 팀 테스트도 많이 보러 갔었고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또 안 되더라"라며 "거기까지가 내 몫인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내가 신체조건이 골키퍼 치고 좋지 않다. 키가 184cm인데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서도 프로에 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현우는 "그런 생각 속에 대학교를 갔는데 좋은 기회를 맞이한 덕분에 프로팀 대구에 갈 수 있었다"면서 "그래서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후회가 없다. 나름 대한민국 최고 리그인 K리그1에 있었고 나는 경기에 못 나갔지만 ACL에 나간 팀에도 있었던 것 아닌가. 좋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속마음을 털어냈다.

이후 이현우는 혼자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부터 양산어곡FC에서 다시 골키퍼 장갑을 꼈다. 물론 프로의 부담감은 내려놓은 채 말이다. 이현우는 "시합을 즐기러 나간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선수 시절에는 시합을 즐기러 나갔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R리그를 뛰더라도 거기에서 잘해서 무조건 올라가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축구를 즐기며 재미있게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양산유나이티드 12세 이하 팀의 골키퍼 코치로서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목표도 확고하다. 본인보다는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현우는 "내가 봐주고 있는 아이들이 프로에 진출하고 더 좋은 선수가 됐으면 한다"면서 "내가 봐주고 있는 선수들이 어떤 사람들이 보든 간에 '저 팀 골키퍼 진짜 좋다'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다. 지금은 그게 가장 큰 목표다"라고 소개했다.

양산어곡 이현우 ⓒ KFA 제공
양산어곡 이현우 ⓒ KFA 제공

이현우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옛날에 방송에서 서장훈 씨가 한 얘기가 있다. 즐기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도 그걸 너무 공감한다. 선수 때는 즐기면서 나선 경기가 단 하나도 없었다. 연습 경기조차 그랬다. 계속 치열하게 했다"면서도 "지금은 다르다. K5 아마추어리그에서 뛸 때는 즐기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즐기면서 축구를 하려고 한다."

gwima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