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상 수상 당시 야유가 나오자 이를 자제하는 포항 김기동 감독 ⓒ 스포츠니어스
심판상 수상 당시 야유가 나오자 이를 자제하는 포항 김기동 감독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포항=김귀혁 기자] 모든 면에서 우승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4일 포항스틸러스는 포항스틸야드에서 펼쳐진 2023 하나원큐 FA CUP 전북현대와의 결승전에서 4-2로 웃었다. 포항은 전반 16분 송민규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전반 44분 한찬희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췄다. 이후 후반 5분 구스타보에게 다시 실점했으나 후반 28분 제카의 동점골에 이어 4분 뒤 김종우의 역전골이 터졌다. 그리고 후반전 추가시간 홍윤상의 쐐기골까지 터지며 웃었다.

마침내 김기동 감독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김 감독은 명실상부한 포항의 레전드로 지난 2003년부터 9년 간 은퇴할 때까지 '검빨'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다. 그 과정에서 리그 전 경기 풀타임 출전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은퇴 이후인 2016년에는 포항의 수석 코치로 돌아왔고 이후 2019년부터 지휘봉을 잡고 현재까지 포항을 이끌고 있다.

그런 김기동 감독에게는 '기동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제는 상투적이게 들릴 정도로 그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다. 경기 중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흐름을 바꾸는 것에서 비롯됐다. 이외에도 확고한 전술과 지도 방식 등을 바탕으로 K리그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후반전 초반 구스타보에게 실점하며 다시 끌려가자 포항은 신광훈과 김인성을 빼고 심상민과 홍윤상을 투입했다. 평소 포항의 강점인 좌측 공격을 최대한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왼쪽에서 전체 네 골 중 총 세 골이 터지며 김기동 감독의 변화가 적중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아쉬움이 바로 우승 트로피였다. 우승 기록은 후대의 평가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FA컵 결승 진출은 분명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를 김기동 감독과 포항 선수단이 제대로 살려내며 결국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경기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던 김기동 감독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제야 코칭스태프와 얼싸안으며 좋아했다.

경기 직후 선수단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포항 김기동 감독 ⓒ 스포츠니어스

하지만 그의 진가는 경기 이후에 드러난다. 포항 선수단은 우승 확정 직후 서로 얼싸안으며 좋아한 뒤 곧장 서포터스석으로 향했다. 이후 포항 팬들의 응원 소리에 맞춰 '점핑'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때 김기동 감독은 함께 축하하는 것이 아닌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

이 점에 대해 경기 후 김기동 감독은 "우리는 한 팀이기 때문에 다 같이 준비했다"면서 "사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선수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나는 아버지와 같은 입장으로 자식들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있었다"라며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시상식에서도 김기동 감독의 진면모가 엿보였다. 준우승팀 시상식 이전 심판상을 먼저 수상하는 때였다. 심판상의 주인공은 이날 경기를 관장한 이동준 주심과 곽승순 부심이었다. 하지만 이 심판들의 이름이 호명되자 장내는 야유에 휩싸였다. 평소 심판들에 대한 팬들의 불신이 표출된 상황이었다.

이때 경기장에 있던 한 남자가 관중들에게 야유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바로 김기동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본부석에 있던 관중들에게 X표시를 그리며 야유를 즉각 멈추기를 요구했고 이어 서포터스를 향해서도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러자 야유 소리도 잦아들었고 김 감독은 그제야 시상식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경기 직후에는 경기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김기동 감독 역시 우승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며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며 선수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봤고 수고한 심판진에게는 야유 대신 격려로 화답했다. 이렇듯 사소한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의 전술 능력보다 더욱 각광받아야 하지 않을까.

gwima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