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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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회 기자가 42년 인생 처음으로 일본에 갔다. 김현회 기자는 18일부터 21일까지 일본에 머물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처음 출전하는 인천유나이티드를 취재하고 현장 분위기를 전할 예정이다. 일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김현회 기자가 도쿄와 요코하마를 돌며 ‘앗’ 소리가 나올 정도로 경험하게 될 좌충우돌 취재기를 담는다. ‘앗’ 소리가 나오는 그의 출장기는 ‘김현회의 도쿄앗’이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요코하마=김현회 기자] 어제 밤 술 한 잔 했습니다. 

어제는 잊지 못할 하루였습니다. 인천유나이티드가 창단 20년 만에 처음 출전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에서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맞붙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 종일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수백 명의 인천 팬이 일본에 집결해 행진을 했고 양 팀은 故유상철 감독과의 인연을 통해 서로 존중하며 멋진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렇게만 놓고 봐도 잊지 못할 경기였는데 인천의 경기력은 이 감동의 화룡정점이었습니다. 어제 하루는 정말 24시간짜리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현장에서 기사를 마감하고 밤 11시 45분쯤 경기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친절한 경기장 관리인 분께서 “죄송한데 이제는 문을 닫아야한다”고 해 서두른 결과였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고 인천 구단도 흔쾌히 협조를 해주셔서 다양한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일본어로 제가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경기장 관리인 분께 “스미마셍”이라며 인사하고 나오려하자 그 분은 “콩그레츄레이션”이라면서 축하를 보냈습니다. 제가 이긴 건 아니지만 어쨌든 혼자 그렇게 축하를 받았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경기장과 숙소 근처에서 가장 큰 이자카야에 갔습니다. 대부분의 가게가 닫아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지만 전날 지나가면서 분위기가 좋아 점찍어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취재 및 여행을 준비하면서 많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봤던 일본 여행의 낭만인 ‘혼술’에 도전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술 한 잔, 일본에서 혼자서 멋진 경기를 취재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아주 행복했습니다. 참고로 경기장과 숙소, 시내는 1km 근방 안에서 다 해결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신요코하마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혼술’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을 가시려다 마주친 여러 분들께서 먼저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다들 인천 팬들이었습니다. 서로 축하를 나누고 인사를 하다가 인천 팬분들이 “괜찮으시면 같이 한잔하자”고 해서 합석을 했습니다. 머나먼 타지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 축구 이야기, 그것도 오늘 가장 행복한 축구 팬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잊지 못할 추억이 됐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들도 서로 이날 처음 만난 사이였습니다. 옆 술집에서 한잔하다가 서로 유니폼 입은 모습을 보고 합석을 한 것이었습니다. 서로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이들은 인천을 응원한다는 사실 하나로 뭉쳤습니다. 

이런 맛에 멀리까지 와서 축구를 보나 봅니다. 팬분들은 응원하면서 느꼈던 심정, 그리고 저는 취재석에서 느낀 심정을 서로 이야기하며 술을 한잔 두잔 마셨습니다. 뒤 테이블의 또 다른 인천 팬들, 옆 테이블의 또 다른 인천 팬들도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건배를 합니다. 어제 이 술집은 인천 팬들이 점령하다시피 했습니다. 일본 신요코하마가 아니라 인천 구월동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 취한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팬이 계속 “에르난데스 너무 잘하더라” “인천은 너무 좋은 팀이다”라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해도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나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팬이다”라면서 계속 야구 이야기를 하는 일본인이 옆에 있어도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축구 팬이시라면 언젠가 한 번 꼭 먼 거리 원정 응원을 와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사실 취재를 가장한 축구 여행을 하려고 혼자 일본에 왔습니다. 42살 먹고 첫 일본 여행입니다. ACL이 아니었다면 42살 먹은 아저씨가 혼자 일본 여행을 올 일이 없습니다. 겸사겸사 왔는데 멋진 경기도 보고 잊지 못할 술자리도 하고 친구도 생겼습니다. 이날 여기에 왔던 인천 팬들은 평생 이날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제 또래 아저씨들과 일본 땅에서 술 한잔하는 추억은 누가 보면 칙칙해 보일 수도 있지만 너무 행복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되니 평일에 외국도 다니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닙니다. 겨우겨우 연차를 이틀 내서 경기 당일에 일본에 왔다가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번에 이 해외 원정 응원을 와서 당분간은 경제적으로나 집안에 눈치가 보여 지방 원정을 못 간다고 말한 팬들도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시간과 경제적인 상황을 쪼개고 쪼개서 온 분들이었습니다. 청주에 사는 인천 팬, 전주에 사는 인천 팬은 한국에 가면 집까지 가는 고된 일정이 남아 있지만 이날 만큼은 축제를 즐겼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한 팬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겨서 너무 좋지만 졌어도 또 술 한잔 하기에는 괜찮았을 것 같아요.” 이겨서 먹고, 져서 먹고, 비겨서 먹는 게 술 아닙니까. 머나먼 이국 땅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 뒤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한 팬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경기장에 올까 말까 고민한 팬들이 정말 많은데 오길 정말 잘했어요.” 갈까 말까 하는 경기는 꼭 가세요. 안 가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그리고 그 경기가 멀리서 열린다고 해도 한 번쯤은 용기를 내보셨으면 합니다. 원정 거리가 멀어질수록 팬들은 끈끈해지고 좋은 추억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어제 밤 신요코하마의 분위기는 멋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숙취가 심했지만 이것도 이번 축구 여행의 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괜찮습니다. 어제 ‘요코하마전의 용사’들은 이제 다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누군 한국으로 떠났고 누군 다른 일본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이 멋진 추억을 영원히 안고 살아갈 겁니다. 언젠가 여러분들도 멋진 축구 여행을 떠나보길 권합니다. 혼자여도 생각보다 괜찮고 혼자여도 생각보다 먼저 다가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제 경기와 경기 후 인천 팬들과의 술 한 잔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도쿄로 이동해 여행의 마지막 날을 보낼 예정입니다. 조성룡 기자가 '메가 돈키호테'라는 곳에서 '텐가'라는 장난감을 사다달라고 해서 들러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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