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vs 우루과이 / 대한민국 클린스만감독 / 사진 안창옥 
대한민국 vs 우루과이 / 대한민국 클린스만감독 / 사진 안창옥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요르겐 클린스만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은 여전히 한국에 없다. 그런 그가 왜 한국에 들어오고 있지 않고 재택근무 중인지를 화상 인터뷰를 통해 해명하는 모습은 촌극에 가깝다. 벌써부터 대표팀 감독을 흔들고 싶지 않지만, 이 덥고 습한 날씨를 클린스만 감독에게 권유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에서 자리를 비우고 해외에서 ‘원격 근무’를 하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 있다가 잠시 해외에 나가는 수준이 아니다. 해외에 체류하다가 잠깐 일이 있을 때만 한국에 들어오는 수준이다. 지난 3월 A매치 2연전 지휘를 위해 한국에 들어온 그는 데뷔전이 끝난 직후인 4월 1일 미국으로 떠났다가 유럽파를 점검한다는 이유로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후 4월 26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열흘 만인 지난 5월 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 추첨 행사 참가를 이유로 한국을 떠난 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원격 근무(?)를 하다가 지난 6월 2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건 6월에 페루,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한 A매치가 한국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6월 16일 페루전, 6월 20일 엘살바도르전 후 한 달 동안 미국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리고 7월 24일 한국으로 돌아온 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친선경기를 관전하고 주말 재개된 K리그를 챙기지 않았다. 입국 6일 만인 지난 달 30일 자신의 생일을 가족과 보낸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미국으로 간 클린스만 감독은 휴가를 쓰지 않고 원격 근무를 인정 받아 월급이 그대로 나간다.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에 체류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오는 9월 A매치 기간에 웨일스 원정평가전 현지에서 대표팀과 합류할 예정이다. 3월에 대표팀 감독을 맡아 처음 팀을 이끈 뒤 한국에 머문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여름 휴가라고 미국으로 떠났고 자신의 생일을 챙긴다고 또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칠순 잔치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등학생도 아닌데 자신의 생일이라고 업무를 팽개치고 집으로 가는 건 너무나도 철 없는 행동이다. 

대한민국 클린스만 감독 ⓒ 스포츠니어스
대한민국 클린스만 감독 ⓒ 스포츠니어스

이런 식이라면 크리스마스와 새해, 부처님 오신 날도 핑계 삼아 집에 가기 좋다. 날이 더우면 덥다고 한잔하고 추우면 춥다고 한잔하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한잔하는 우리 조성룡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클린스만 감독뿐 아니라 파울루 벤투 감독이나 심지어 울리 슈틸리케 감독 때도 새로 온 외국 감독에게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열심히 준비하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는 건 아직 부임 초기이니 그럴 수 있다고 감쌀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이건 성적과는 별개의 문제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는 한국 대표팀에 대한 존중이 없다. 

아무리 화상 회의 문화가 발달했고 멀리서도 정보를 교류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단순히 코치들에게 보고를 받는 게 아니라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응당 대표팀 감독이라면 내가 필요한 경기 때만 현장에 있는 게 아니라 부득이하게 현장에 가지 못할 때만 빼고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K리그1 경기는 기본이고 일정이 맞는다면 K리그2도 가보고 아마추어 리그도 가봐야 한다. 그게 국가대표팀 감독의 책무다. 한국 축구 꼭짓점에 있는 감독으로서 한국 축구 전체를 살피고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적어도 K리그1 경기가 없는 날이라면 수도권에 있는 2부리그 경기장에서라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도력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는 있어도 이런 면에서 나는 김학범 감독을 좋아한다. 한 번은 수도권에서 하루에 두 경기장을 간 적이 있다. 인천에서 낮 경기를 보고 성남에서 저녁 경기를 취재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이 두 경기장에서 다 김학범 감독을 만났다. 나에게 “아니 뭔데 그렇게 열심히 다녀?”라고 묻기에 “감독님은 뭘 그렇게 열심히 다니세요?”라고 했다. 김학범 감독은 “축구 보는 게 일인데 여기 있어야지”라고 답했다. 다음 날 김학범 감독을 춘천에서 또 만났다. 서로 웃음이 터졌다. 적어도 그 나라를 맡은 지도자라면 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건 김학범 감독뿐 아니라 벤투 감독과 그의 사단도 마찬가지였다.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에 있다가 유럽에 건너가 유럽파를 점검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손흥민이나 이강인, 김민재의 몸 상태와 경기력이야말로 ‘원격 근무’로 분석이 가능하다. 유럽 최고의 무대에서 뛰고 있는 그들의 경기력은 이미 데이터로 분석돼 누구나 열람이 가능한 수준이다. 손흥민을 왼쪽 날개로 쓸 것이냐 말 것이냐는 정말 영상 분석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김민재가 포백의 왼쪽 중앙 수비수로 나선다는 건 누가 분석하지 않아도 다 안다. 컨디션 분석? 이미 대표팀은 그 정도는 선수와 직접 소통도 가능하다. 

진짜 발품을 팔아 유럽파 선수를 분석하려면 튀르키예에 가서 조진호 경기보고 체코 가서 김승빈도 체크하고 그리스에서 황인범을 만나야 한다. 포르투갈에 가 김용학도 보고 벨기에에 날아가서 홍현석의 경기력을 체크해야 한다. 일본에 가면 대표팀급 선수가 즐비하다. 중국에 가면 강상우와 김민우, 박지수의 경기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선수를 놔두고 누구나 다 아는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의 활약을 점검하겠다고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에 가 있는 건 불필요하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동하는데 자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옆에서 다 티켓 발권해 주고 데려다 주고 동행한다. 언제든지 편하게 마음 닿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정말 뽑을 선수가 없더라도 클린스만 감독이 대학교 경기장도 찾는 ‘퍼포먼스’라도 보여줬으면 한다. “나는 소속팀과 인지도를 떠나 실력만 보여주면 대표팀에 뽑을 수 있다”는 메시지의 전달과 함께 자기편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금 강원도 태백에서는 제59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이 열리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이 가서 경쟁을 위한 무언의 메시지를 툭 던져주기만 하면 된다. 가서 경기도 보고 태백실비식당에서 소고기도 좀 먹고 오시라. 정 뽑을 선수가 없더라도 대표팀 풀을 넓히겠다는 메시지만 전달해도 충분하다. 여기에 우리나라 축구인들이 꼰대 같아 보여도 클린스만 감독을 직접 만나면 또 달라진다. 가서 우리나라 축구인들 이야기를 경청하는 ‘척’이라도 해달라. 

상주상무 시절 경기장을 찾은 벤투 감독과 대표팀 코치의 모습. ⓒ프로축구연맹제공
상주상무 시절 경기장을 찾은 벤투 감독과 대표팀 코치의 모습. ⓒ프로축구연맹제공

평소에 외국인 감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많지만 직접 만나면 달라진다. 이 사람들이 그래도 한편으로는 순수한 구석이 있어서 클린스만 감독과 사진 한 장 찍으면 평생 “그 친구, 내가 만나서 대화도 했다니까. 애가 괜찮더라고”라며 자랑할 사람들이다. 대표팀의 외국인 감독이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척을 지고 살 이유가 없다. 이렇게 쌓아놓은 현장의 ‘정’은 언젠간 ‘지지’가 돼 돌아온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테스트성 대표팀 차출 때 여기에서 보란 듯이 한두 명을 뽑아 대표팀에 신선한 경쟁을 유도해도 좋다. 아마추어 대회 뿐 아니라 K리그2도 마찬가지다. 

클린스만 감독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이 경기도 고양시인데 동네 친구들 중에 벤투 감독 한 번 안 만난 사람이 없다. 벤투 감독이 살던 아파트에 사는 내 친구는 벤투 감독을 지긋지긋하게 봤다고 했다. 벤투 감독은 매번 똑같은 카페의 같은 자리에 앉아 업무도 보고 휴식도 취했다. 처음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이들도 나중에는 벤투 감독을 동네 아저씨 취급할 정도였다. 벤투 감독이라고 포르투갈 집에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싶지 않았겠나. 적어도 클린스만 감독도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한다. 한국 축구와 어우러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나도 현장에서 벤투 감독을 정말 많이 봤다. 뽑을 선수가 없는 K리그2 경기에도 벤투 감독이 종종 등장했다. 얼마나 그를 많이 봤냐면 벤투 감독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브랜드 ‘휴고 보스’ 마니아라는 것도 알게 될 정도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코치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그가 한국에 굳이 있어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굳이 미국에 있어야 할 근거를 대야 한다. 단순히 ‘미국에 있어도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더 설득력 있는 말을 해야한다. 노모를 모셔야 한다거나 한국 음식에 알러지가 있다거나 법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을 떠나면 안 된다는 식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국 대표팀 감독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집에만 있는 상황에 대해 해명하는 인터뷰를 집에서 화상으로 한다는 건 촌극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무려 네 번이나 화상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매체를 나눠서 17일에 두 번, 18일에 두 번의 인터뷰가 잡혔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 네 번의 인터뷰 동안 비슷한 질문을 받을 게 뻔하다. 부임 후 2무 2패인데 1승에 대한 각오를 이야기해야 하고 원격 근무에 대한 해명을 네 번이나 해야한다. 손흥민이나 이강인, 김민재에 대한 이야기도 네 번 동안 똑같이 해야한다. 한국에 있는 코치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는지도 네 번에 거쳐 답해야 한다. 

벤투 감독이 K리그 경기를 관전하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벤투 감독이 K리그 경기를 관전하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협회는 네 번의 기자회견 이후 21일 오전 9시까지 엠바고를 걸었다. 17일에 인터뷰한 매체가 18일에 인터뷰한 매체보다 먼저 기사를 내면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 때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익명의 관계자는 "이런 엠바고는 듣도보도 못했다"라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에 있었다면 한 자리에 모여서 라이브로 진행하고 그걸 그대로 전하면 될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이 여전히 한국에 오질 않으니 화상 기자회견에도 엠바고가 걸리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의 한국 체류 시간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행사 때문에 한국에 체류하는 시간과 다를 게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한국 축구는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의 성과를 낸 한국은 이제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염원에 도전해야 한다. 손흥민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아시안컵이다. 여기에 김민재라는 막강한 수비수가 손흥민과 함께 발을 맞추는 아시안컵에서 꼭 우승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다. 아시안컵 우승이 어려운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해도 될까 말까다. 여기에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틀도 좋은 쪽으로 유지해 나가야 한다. 이 어렵고도 중대한 일이 ‘줌’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원격 근무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나 이해가 가는 일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과연 지금 진심을 다해 임하고 있을까. 

종종 어려운 팀을 맡은 감독과 사담을 나눌 때가 있다. “감독님, 왜 굳이 이 어려운 일을 하세요? 조금 더 기다리시면 좋은 팀 맡을 수 있잖아요?”라는 물음에 이 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이런 말을 했다. “난 이 팀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지도자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어. 내 지도자 생활을 여기에 걸었어. 여기에서 실패하면 끝이야.” 클린스만 감독에게 지금 한국 대표팀에 자신의 지도자 생활 전부를 걸었는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선수와 감독, 축구인들을 만나도 시간이 모자란다. 한국 축구에 진심이라면, 여기에 지도자 인생을 걸었다면 돌아오시라. 한 나라의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면 그 정도 책임감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축구는 ‘줌’이 아닌 현장에 있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