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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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오늘 경기 결과 예측 좀 해줘봐.” 지인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다. K리그 취재를 자주 하니 스포츠토토를 즐기는 지인들은 내가 대단한 촉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내 답변은 늘 똑같다. “내가 그 결과 미리 알았으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겠어? 벌써 부자 됐지.” 그러면 지인들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물론 축구를 모르는 사람보다 적중 확률은 조금 더 높을 수 있어도 축구장에 자주 간다고 해서 결과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KBS에 이영표 해설위원이 돌아왔다. 현역 시절 정말 좋아했던 선수다. 하지만 나는 이번 복귀가 너무 이르지 않나 싶은 생각도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승부조작범 사면 논란으로 부회장직에서 사퇴한 그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마이크를 잡고 복귀한 건 너무 이른 것 같다. 과한 해석을 하긴 싫지만 이영표 해설위원은 부회장으로서 당시 이사회에서 승부조작범 사면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 자체로 실망스럽다. 그는 당시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회장직을 내려 놓았다. 

복귀 시점 여부를 떠나 더 아쉬운 건 여전히 ‘감 떨어지는’ KBS 때문이다. KBS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복귀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문어 영표가 돌아왔다’고 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문어 ‘파울’이 족집게 예측을 해댄 걸 빗대 ‘문어 영표’라는 호칭을 붙였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이게 너무 올드해서 싫다. 그리고 해설위원이 ‘예언 놀이’를 하는 게 축구팬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 같아서 더 싫다. 

해설위원은 축구를 더 편하고 즐겁게 시청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된다. ‘저 선수는 리그에서 이런 습관이 있다’ ‘지금은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변환했다’ ‘이 선수 교체는 감독이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위한 의도인 것 같다’ ‘지금 판정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정도로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 된다. 더군다나 선수 출신 해설위원이라면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을 더 잘 전할 수 있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빨’이야 이미 검증이 끝났다. 

그는 과거 해설위원 시절 특정 선수 비하 논란도 있었고 이번 복귀 시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스스로 해설직을 그만둘 때도 이를 멋지게 포장한 뒤 해설위원에서 사퇴했다. 문제를 삼으면 그의 복귀를 문제 삼을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면 논란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KBS로 돌아와야 할 방송사의 급박했던 상황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신뢰와 믿음이 생명인 공영방송이 얼마나 급했으면 이영표 해설위원을 이토록 빨리 모셔와야 했을까. 

백번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해설위원을 데리고 ‘예언 놀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KBS가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KBS는 지난 4월 28일 자사 스포츠뉴스를 통해 ‘문어 영표, 안방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소식으로 이영표 해설위원의 복귀 소식을 알렸다. 지긋지긋하다. 아직도 해설위원이 예측하고 그걸 맞추는 걸 어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정말 예측력이 뛰어난 이를 섭외하려면 우리 동네 부동산 김씨 아저씨를 섭외하라. 그는 토토 승무패 14경기 중 12경기를 밥 먹듯이 맞히는 능력자다. 

‘축구 해설위원=예측력’이라는 이상한 구도를 KBS가 만들고 있다. 무슨 토토 분석 사이트도 아니고 축구 해설위원이 경기 결과는 물론 이변까지 예측해 내야 한다. 여기에 실제로 보면 이영표 해설위원의 예측력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도 다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KBS의 포장 능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축구 해설위원이 90분 동안 하는 말은 셀 수 없다. 때론 A를 이야기했다가 얼마 뒤 A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KBS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수도 없이 던진 말 중에 한 마디를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역시 이영표 해설위원입니다. 예측이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맞받아친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90분 동안 다 던져 놓고 그 중에 맞는 멘트 몇 개로 ‘축구 해설위원은 예측력이 중요하고 이영표 해설위원은 그걸 맞췄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렇게 따지면 90분 동안 던져서 틀린 말은 어떻게 주워 담을 건가. 어떤 해설위원이어도 90분 동안 던진 멘트 중 예측이 맞은 멘트만 편집해 놓으면 ‘소름돋는 예언자’가 된다. 하루에 고장 난 시계도 두 번은 맞는다. 물론 이영표 해설위원이 축구에 대해 누구보다도 박식하니 그를 고장 난 시계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내던진 말들 중 우연히 겹쳐 적중한 말 하나에 KBS는 호들갑을 떤다. 

나는 2013년 한 축구 팟캐스트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K리그 이야기와 해외축구 이야기를 동시에 하는 방송이었다. 나는 해외축구를 잘 모르는데 그 당시 주제가 맨체스터시티와 위건의 잉글리시 FA컵 결승 예측이었다. 다른 패널들이 다 맨체스터시티가 우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해외축구는 잘 모르고 그냥 이걸 재미 수준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혼자 위건이 이긴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맨체스터시티가 이길 줄 알았지만 다 맨체스티시티의 우세를 점치니 그냥 위건이 이긴다고 던졌다. 

논리는 들면 충분하다. “위건은 더 간절할 것이고 더 집중력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 경기에서 위건이 맨체스터시티를 꺾고 창단 81년 만에 FA컵 첫 우승을 차지했다. 나는 모두가 맨체스터시티의 우승을 점칠 때 위건의 말도 안 되는 우승을 맞힌 ‘축잘알 예언자’다. 어차피 맨체스터시티가 우승했어도 맨체스터시티의 우승을 예측한 사람들은 다 잊혀진다. 이게 ‘정배’이고 위건이 ‘역배’이기 때문이다. ‘역배’는 던져서 틀려도 그만이고 맞히면 대박이다. 축구 해설이 이렇게 ‘정배’와 ‘역배’, ‘예측’과 ‘예측 실패’의 영역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자꾸 KBS는 해설위원의 ‘예측력’을 무기로 삼는다.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정말 대단한 예측력입니다” 같이 헛웃음이 나올 법한 멘트가 공영방송에서 나온다. 차라리 해설위원이 저 선수가 오른발잡이인지, 왼발잡이인지 알려주는 게 낫다. 예측의 영역에 가까운 분석을 해야한다면 딱 그 정도 분석만 담백하게 전하면 된다. 공영방송씩이나 돼서 해설위원 마케팅으로 유치한 문어 놀이, 예언 놀이는 그만했으면 한다. 선수 출신으로서 일리 있는 말만 하면 됐지 그 예언이 맞았다고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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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영표 해설위원보다도 KBS의 문제다. KBS는 지금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 시청률 대참사 책임을 인지도가 부족한 구자철 해설위원 선임으로 돌렸다. 물론 인지도에서 구자철 해설위원이 타사에 밀린 건 사실이다. 그런데 KBS가 월드컵을 앞두고 했던 홍보 활동을 보면 KBS가 얼마나 감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KBS는 ‘기호 7번 구자철’이라는 홍보를 밀고 나갔다. ‘7번 채널에서 구자철을 만나자’는 의미였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주변에선 “구자철이 정치인 됐어?”라는 말까지 들었다. 

MBC나 SBS도 월드컵을 앞두고 이어가는 홍보 활동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축구 중계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방송사에서 갑자기 예능 프로그램에 해설위원들을 출연시키고 대중에 어필한다. 방송 3사 어디에서도 진정성을 느끼지는 못했으니 이건 도 긴 개 긴이다. 그런데 여러 사례를 감안해도 KBS는 감이 없다. 해설위원 데뷔를 하는 인물에게 띠를 두르게 하고 정치인 코스프레를 시키며 안정환, 박지성이라는 해설위원으로서 인지도가 ‘넘사벽’인 이들과 겨루게 했다. 이건 구자철이 아무리 탈압박을 해도 당해낼 재간이 없지 않은가. 

KBS는 축구팬들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같다.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는 경험없는 해설자에게 이상한 홍보 활동을 시켰고 결국 시청률 참사의 책임을 물어 담당자가 교체되는 일을 겪었다. 그리고 복귀한 이영표에게는 또 다시 10년 전에나 먹힐 ‘예언 놀이’를 시작했다. 지난 FC서울과 전북현대의 이영표 해설위원 복귀 경기에서는 90분 내내 자막으로 ‘돌아온 문어 영표 이영표 해설’이라는 문구를 띄어 놓았다. ‘레전드 선수 출신 해설위원’을 그저 ‘점쟁이’로 만들지 말자. 더군다나 이영표 해설위원은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왜 그를 ‘점쟁이’로 만드려고 하나. 

어차피 앞으로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U-20 청소년월드컵 등등의 시청률 싸움을 앞두고 K리그로 ‘연습 중계’ 중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문어 영표’ 같은 유치한 프레임을 거두자. 맞아도 그만, 맞지 않아도 그만인 말 중에 딱 들어맞은 한 마디를 가지고 마치 대단한 예언이라도 한 것 같은 그들의 ‘예언 놀이’는 여전히 중계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말 솜씨 좋고 분석 능력이 뛰어난 이영표 해설위원이라면 그냥 담백하게 해설만 해도 되지 않을까. ‘문어 영표’의 ‘예언 놀이’나 보자고 수신료를 내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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