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후 양산어곡FC와 천안시티FC 선수단의 단체 사진 ⓒ KFA 제공
경기 후 양산어곡FC와 천안시티FC 선수단의 단체 사진 ⓒ KFA 제공

[스포츠니어스 | 천안=김귀혁 기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다 같은 아마추어야.' 가수 이승철의 '아마추어'라는 곡의 가사다.

24일 양산어곡FC는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천안시티FC와의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2라운드 맞대결에서 상대 파울리뇨와 김륜도, 장백규와 김대중에게 연속으로 실점하며 0-4로 무릎을 꿇었다. 이날 결과로 양산어곡은 프로 팀을 상대로 기적을 연출하는 데 실패하며 올 시즌 코리아컵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모두를 놀라게 하는 듯 보였다. 양산어곡은 K5리그로 세미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즉 축구가 생업이 아닌 이들이 모여 만든 팀이다. 대부분이 일을 하거나 군 복무를 수행하며 꿈을 키운다. 프로에서 활동하다가 은퇴 후 취미 삼아 축구를 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K5리그는 각 권역에서 우승한 팀들이 K5리그 챔피언십을 통해 경쟁하고 거기에서 상위 여덟 개 팀이 코리아컵 1라운드에 진출한다. 여기에서 대부분의 K5리그 팀들은 코리아컵 1라운드에서 세미프로팀의 벽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양산어곡은 K4리그 FC세종을 상대로 연장전 접전 끝에 2-1로 승리하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앞두고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프로 출신의 한상운과 김부관이 모두 개인 사정으로 원정에 동참하지 않은 것이다. 프로 선수들과는 달리 이들은 각자 개인 직업과 일정이 있다. 아무리 중요한 경기라고 하더라도 제약이 생기면 경기 참여가 쉽지 않다. 심지어 이날 경기했던 천안시티는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체급 차이라는 표현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동기부여는 확실했다. 이날 경기를 위해 안승화와 이승빈, 임종휘는 군복무 중임에도 휴가를 쓰고 원정에 참여했다. 구단 관계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취미로 만든 축구팀이기에 선수단이 원정을 이동하고 숙박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이 비용을 모두 구단 배익두 단장이 지불했다. 배 단장은 "우리는 회비로 운영하는 축구팀이 아니다"라면서도 "워낙 팀에 역사적인 순간이다. 비용을 내도 전혀 아깝지 않다"라며 설렘에 부푼 모습이었다.

특히 이날 경기 승리를 거둔다면 K리그1 제주유나이티드 원정을 떠날 수 있었다. 경기 전 이 말을 전하자 배익두 단장도 고민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그는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너무 기쁜 일이지만 고민도 크다. 비행기부터 숙박까지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평일 경기라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제약이 따른다"면서도 "그래도 그런 불편함보다는 승리의 기쁨이 더욱 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날 경기 승리는 기적이라는 의미였다. 실제 축구계 관계자도 "선수 입장할 때 양산어곡 선수들 중 몇몇은 배가 좀 나왔더라"라며 "그러면서 천안시티 선수들에게 '살살해달라'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라고 소개했다. 원정 한 번에 허리가 휘고 상대편 선수들에게 엄살(?)을 피울 정도로 눈앞의 벽은 거대했다.

경기 후 양산어곡 선수단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경기 후 양산어곡 선수단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그리고 결과적으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보다 더욱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전부터 파울리뇨를 앞세운 천안시티의 공격을 이현우 골키퍼의 선방을 앞세워 막아냈다. 전반전이 끝나고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날 맹활약을 한 이현우 골키퍼는 동료들에게 다가가 본인의 선방 장면을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모두가 웃으며 라커로 들어갔다.

후반전도 마찬가지의 흐름이었다. 천안시티가 맹공을 퍼부었으나 계속된 이현우 골키퍼의 선방과 골대의 도움 속에 0-0 경기를 이어나갔다. 현장에서의 반응도 '설마'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양산어곡이 이른바 '되는 날'이었다. 후반 27분까지도 무실점으로 버티며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후반 27분 파울리뇨의 기습 중거리 슈팅에 결국 실점을 허용했다. 이후 양산어곡 입장에서는 뒤돌아볼 곳이 없었다. 한 골차든 네 골차든 결과는 같았다. 이에 수비 라인을 올리며 공세적으로 나섰으나 체력이 발목을 잡으며 연이어 세 골을 허용했다. K5리그 경기의 정규 시간은 80분이고 선수들은 대부분이 직장인이거나 전업 선수가 아니다. 체력 저하는 당연했다.

결국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양산어곡 선수단 대부분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몇몇 선수들은 파울리뇨를 포함한 천안시티 핵심 선수들과 유니폼 교환을 하기도 했다. 선수단 전체는 천안시티 김태완 감독과 인사를 나눈 뒤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상대편 감독과 단체 사진을 찍을 정도로 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천안시티 김태완 감독과 사진을 찍는 양산어곡 선수단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천안시티 김태완 감독과 사진을 찍는 양산어곡 선수단의 모습 ⓒ 스포츠니어스

이후 이들의 발걸음은 라커가 아닌 천안시티FC 서포터스 '제피로스'에게로 향했다.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이때 천안시티의 장내 아나운서가 센스를 발휘했다. 이들을 양산어곡 선수단이라 소개한 뒤 호응을 유도한 것이다. 이에 천안시티 팬들은 '양산어곡'을 외치며 박수를 보냈고 선수들도 화답했다. 일반 경기에서 홈 팀의 장내 아나운서와 팬들이 원정 팀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도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이후에는 양산어곡 배익두 단장도 나와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양산어곡 선수단은 천안시티 선수단과 함께 팬들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으며 이날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양산어곡 조용기 감독은 "아무래도 우리에게 큰 도전이었고 상상도 못 한 경기를 치렀다"면서 "선수들이 너무 대견스럽고 75분 동안 우리의 계획을 시행했다. 운도 좋았지만 조직력 있게 이겨내줘서 선수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정말 기쁘다"라며 진심을 보였다. 천안시티 김태완 감독도 "양산어곡의 경기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경기 전 단체 사진을 찍는 양산어곡FC 선수단 ⓒ 스포츠니어스
경기 전 단체 사진을 찍는 양산어곡FC 선수단 ⓒ 스포츠니어스

요즘 시대에 결과는 차갑고 냉정하다. 승리와 1등이 아니면 이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빡빡한 현대 사회에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그러한 현실의 차가움으로부터 멀어졌다. 0-4 패배에도 선수들은 환한 미소를 보였고 상대 선수와 팬도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경기를 보지 않은 이들은 0-4라는 스코어를 보고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갈라치고 결과만을 중시할 필요는 없다. 가수 싸이가 말했듯 진정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이 나라의 챔피언이다.

gwima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