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플레이어스 고요한 ⓒ 스포츠니어스
벽산플레이어스 고요한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효창운동장=조성룡 기자] 고요한이 FC서울 아닌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10일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1라운드 서울관악구 벽산플레이어스(K5리그)와 FC충주(K4리그)의 경기에서 아마추어 팀인 벽산플레이어스가 세미프로 충주를 4-2로 꺾고 코리아컵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벽산은 다음 단계에서 K리그2 김포FC를 만난다.

이날의 화제는 고요한이었다. 코리아컵 1라운드를 앞두고 K5리그 벽산플레이어스는 고요한의 입단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FC서울에서 현역 생활 은퇴를 선언한 이후 FC서울 U-18 오산고 코치로 부임한 고요한이다. 이제는 K리거가 아닌 동호인 팀에 입단했고 코리아컵 1라운드 교체 명단에 포함됐다. 많은 서울 팬들이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효창운동장을 찾았다.

후반전을 앞두고 고요한은 투입을 준비했다. 새로운 팀 동료 이신기, 이재준과 함께 대기심에게 확인을 받고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장내 아나운서가 고요한의 투입을 알리는 순간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K5리그에서 고요한의 새로운 축구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약 45분 정도로 예상됐던 고요한의 '쇼 타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후반 막판 상대 충주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갔기 때문이다. 30분을 더 뛴 고요한은 팀의 짜릿한 승리를 만들었지만 경기 후 지인들에게 계속 '죽겠다'는 손짓을 하며 웃고 있었다.

벽산 고요한 ⓒ 대한축구협회 제공
벽산 고요한 ⓒ 대한축구협회 제공

경기 후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FC서울, 아니 벽산 고요한은 "아마추어 팀이라 좀 마음 편하게 경기에 뛰려고 했다"라면서 "친구와 같이 즐겁게 축구를 좀 더 해보고 싶어서 코리아컵에 나왔다. 그런데 충주라는 정말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 상대가 정말 잘 해줬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우리 벽산 선수들이 아마추어 팀 답지 않게 조직적으로 끈기 있게 경기를 임해줘서 편하게 축구했던 것 같다"라면서 "좋은 결과까지 가지고 올 수 있는 경기를 해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더니 고요한은 "K5리그 팀이 2라운드 진출한 건 최초 아닌가?"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전하자 고요한은 크게 아쉬워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은퇴 후 첫 공식 경기에 뛴 셈이다. 고요한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라고 웃더니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내가 생각했던 예전의 플레이를 구사하기 힘들었다. 은퇴하고 나서 재밌게 즐기려고 나왔는데 또 이놈의 승부욕이 내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더라. 그래서 몸도 사리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다치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잘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요한은 새로운 둥지로 왜 벽산을 선택했을까? 그는 "K5리그지만 아마추어 팀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라면서 "코리아컵이지만 이 경기는 친구와 재미있게 공 차기 위해서 나왔던 자리다. 내가 정말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뛰고 싶은 팀은 FC서울 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고요한은 꽤 진심이었다. FC서울의 '세로검빨' 유니폼이 아닌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기에 농담 삼아 "원클럽맨이 아닌 듯한 어색함이다"라고 하니 고요한 또한 "나도 이 유니폼이 어색하다"라면서 "하지만 여기는 말씀드린 것처럼 아마추어 팀이다. FC서울의 팬들께서도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벽산 고요한 ⓒ 대한축구협회 제공
벽산 고요한 ⓒ 대한축구협회 제공

벽산도 나름대로 고요한을 예우했다. 고요한의 등에는 FC서울에서 달던 '13'이 새겨져 있었다. 이에 대해 고요한은 "벽산 구단에서 내가 올 때 13번 자리를 내주셨다"라면서 "원래 13번을 달고 있던 선수도 내가 오면 번호를 내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등번호를 달았다"라고 전했다.

이제 고요한과 벽산은 2라운드에서 K리그2 김포FC를 만난다. 서울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느꼈던 상대지만 벽산 소속으로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고요한은 "내가 FC서울 소속으로 김포를 만난 적은 없다"라면서 "김포가 우리 서울을 만날 때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가 김포전을 준비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아마추어라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공 차는 팀이다. 개인 의지가 얼마나 큰지에 따라 결과가 나올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효창운동장에는 고요한의 새로운 인생을 응원하기 위한 많은 서울 팬들이 몰렸다. 고요한은 "너무 감사하다"라면서 "어디에서 운동을 하더라도 서울 팬들께서 이렇게 잊지 않고 응원해주신다. 감사드릴 뿐이다. 이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라고 전했다.

고요한은 FC서울에서의 은퇴식 또한 준비하고 있다. 고요한은 "은퇴식에서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참 고민이 많다"라면서 "팬들께서 은퇴식에 좀 많이 찾아와 주셔서 내가 20년 동안 뛰었던 팀에 선수로서 이별하는 자리를 함께 잘 마무리하고 싶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이날 고요한의 플레이를 보며 '좀 더 뛰었으면'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아쉬움을 전하자 고요한은 미소 지은 채 고개를 가로저으며 "K리그에서 서울 말고 다른 팀 갈 생각은 없었다. 나도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라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서울이 아니면 안 됐기에 은퇴 했습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