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카타르 도하=조성룡 기자] 카타르 입장에서는 모로코가 정말 '귀인'일 것이다.

FIFA 월드컵 카타르 2022는 수많은 악재가 있어왔다. 경기장 건설 노동자 사망으로 인한 서유럽 국가 중심의 보이콧도 있었고 처음으로 중동, 그리고 겨울 월드컵이라 흥행에 대한 우려도 상당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개최국 카타르의 조별예선 탈락이었다. 월드컵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연달아 일어난 셈이다.

카타르는 제 1회 우루과이 대회 이후 처음으로 개최국이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는 팀이었다. 그리고 에콰도르와의 개막전에서 0-2로 패배해 처음으로 개최국 개막전 패배를 기록했다. 이후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중 처음으로 16강 탈락을 확정지었고 개최국 사상 처음으로 전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회의 흥행을 위해서는 개최국의 성적 또한 꽤 중요한 요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이 16강에 진출했고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른 것은 흥행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카타르가 조기 탈락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카타르에는 자국을 대신할 만한 팀이 하나 있었다. 바로 모로코다.

모로코는 이번 대회 돌풍의 중심이었다. 조별예선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32개국 중 가장 좋은 성적으로 16강을 통과했다.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연달아 잡으면서 4강 진출까지 이뤄냈다.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최초고 아랍 축구 역사상 최초다. 이게 카타르에서 월드컵의 분위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 카타르에서 모로코인의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비슷한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이주해 일하는 모로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월드컵을 보기 위해 입국한 모로코 축구팬까지 합세하자 카타르는 모로코에 점령된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심지어 미디어센터나 팬 빌리지 등 월드컵 관련 시설 종사자들 중에서도 모로코인이 많다. 자칫하면 '모로코 월드컵'으로 착각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랍 국가들이 탈락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튀니지와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등이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제는 아랍 계열 국가들의 관심이 모로코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로코의 경기마다 압도적인 홈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상대방을 주눅들게 만들고 있다.

모로코의 경기가 있는 날 카타르는 축구에 관심이 없어도 모로코의 득점 순간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경기장 뿐만 아니라 집에서 경기를 보다가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경기가 승리로 끝나면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경기장과 집에 있던 모로코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경적을 울리고 응원가를 부른다. 이게 새벽까지 이어진다. 2002년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카타르 도하 내에 위치한 주요 쇼핑몰에서는 월드컵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많다. 여기에 모로코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로코 국가대표팀의 유니폼 스폰서는 푸마다. 하지만 월드컵 스폰서인 아디다스에서 자사의 로고와 함께 '모로코'를 새긴 붉은색 티셔츠를 판매할 정도다. 모로코 국기와 모자 등을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향후 모로코의 월드컵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1994년과 1998년 월드컵 유치전에서 2위로 고배를 마셨던 모로코는 2006, 2010, 2026 월드컵에도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호성적과 모로코인이 보여준 분위기는 향후 유치전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는 분석이다.

카타르 입장에서는 모로코가 '천군만마'일 수 밖에 없다. 이미 카타르 사람들에게 월드컵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하지만 카타르 구석구석에 거주하는 모로코인들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월드컵 관련 행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제 모로코는 4강에 진출했으니 대회의 마지막까지 있을 예정이다. 카타르 입장에서는 다행일 수 밖에 없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