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을 대표하는 단어는 ‘하야’입니다. ‘하야’는 아랍어로 ‘함께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츠니어스>는 독자들과 함께 카타르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려고 합니다. 조성룡 기자가 직접 도하 현지로 날아가 카타르 월드컵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냅니다. 우리 모두 ‘하야’! – 편집자 주

[스포츠니어스 | 카타르 알라이얀=조성룡 기자] 이런 일이 있었다.

27일 카타르 알라이얀 카타르 내셔널 컨벤션 센터에 위치한 월드컵 메인 미디어 센터(MMC). 53리얄(약 만 9천원)을 내면 뷔페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마침 이날은 한국식 소고기찜이 나오기도 했다. 큰 테이블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혼밥'을 즐기던 기자에게 한 외국인이 "여기 앉아도 되느냐"라고 하더니 합석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외국인은 심심했던 모양이다. 밥을 먹다가 "Where are you from?(어디서 왔어?)"이라고 물었다. 간단하게 "Korea(한국)"라고 말하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되묻자 정말 상상도 못한 한국어 대답이 나왔다. "저는 털키 살람입니다." 월드컵 본선에 나오지 못한 튀르키예 사람이 카타르에서 한국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먹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튀르키예에서 온 탈라스 오널은 현재 MMC의 전력 공급 등 에너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과거 한국 거제와 창원, 부산 등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주했다. "내 딸은 지금도 한국어를 할 줄 알아.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해"라는 오널은 "한국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내 이름을 항상 '오늘'이라고 저장했다. 내 이름은 '투데이'가 아닌데"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다.

부산에서 오래 산 덕분에 오널은 부산 사투리가 친숙하다. 밥을 먹고 있던 기자에게 부산 사투리로 "많이 무라"를 외치더니 "서울에 가면 억양이 달라 한국어가 어렵다"라고 웃는다. 예상도 못한 상황에 나 혼자 웃음이 나온다. 어쩐지 식당에 한국식 소고기찜이 있더라니. 터키 사람에게 부산 사투리를 듣다니.

오널은 "해운대나 광안리에서 소주 한 잔에 회 한 접시 먹으면 정말 맛있다"라고 회상하더니 한국에서 일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오널은 한국에서도 전력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콘서트에서도 일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특히 그는 평창에서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 모양이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 때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왔었어. 나는 별 생각 없이 경기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김여정이 밖으로 나온 거야. 나는 그저 흡연 중이었는데 경찰 열여섯 명이 나를 에워쌌어. 혹시나 내가 김여정에게 달려들까봐 나를 막았지. 멀리서 김여정과 눈이 마주쳤어.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어. 아마 김여정이 본 유일한 튀르키예 사람이 나일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널은 한국에 대해 애정이 깊은 모양이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튀르키예 사람들과 비슷하다. 빨리빨리 뭔가 해야하고 화끈하다"라면서도 "한국에 있으면서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다시 한국에 가게 된다면 제주도를 가보고 싶다"라고 웃었다.

긴 대화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요청했다. 오널은 흔쾌히 웃으면서 응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찍어야 할 것이 있다"라면서 지갑을 열어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맙소사, 대한민국의 운전면허증이었다. 이역만리 카타르에서 외국인이 대한민국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다닐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는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웃으며 한국의 월드컵 선전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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