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KH. 양평FC 원정팀 라커 청소 후 모습.

[스포츠니어스 | 김귀혁 기자] 고양KH가 긍정적인 문화를 이끌고 있다.

축구에서 라커 청소는 이제 흔한 미담 중 하나다. 지난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일본 축구대표팀이 16강에서 벨기에에 2-3으로 패배하며 탈락한 와중에도 라커를 깨끗하게 청소함 화제를 모았다. 해당 청소는 이후 선수들이 아닌 지원 스태프가 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여전히 원정팀의 라커 청소는 사람들의 많은 박수를 받는다. 올 시즌에도 태국의 포트FC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울산현대를 상대로 0-3 패배했으나 라커를 깨끗하게 청소하며 예우를 보였다.

이러한 사례가 한국 세미프로 리그에도 있다. 올 시즌 처음 K4리그에 참가해 우승까지 차지한 고양KH의 이야기다. 고양KH는 올 시즌 매 원정 경기 때마다 '라커룸 감사히 잘 쓰고 갑니다. (홈 팀)의 건승을 기원합니다'라는 종이를 라커 문 앞에 붙여 놓고 이를 공식 SNS에 올린다. 업로드 한 사진에서도 깨끗한 라커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특정 경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프로 팀들과는 달리 고양KH 선수단은 직접 라커를 치워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있다. 그럼에도 매 경기 라커 청소를 했던 이유는 뭘까.

고양KH의 선수단 주무는 "올 시즌 개막전 홈경기 때부터 라커 청소가 시작됐다"면서 "이후 2라운드는 여주 원정을 떠나게 됐다. 시설이 좋은 라커는 아니었지만 배성재 감독님께서 홈 팀이든 원정 팀이든 우리가 쓴 라커는 원래 있던 상태도 되돌리는 것이 맞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청소를 솔선수범 하셨다. 감사 인사도 따로 작성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준비한 게 없으니 수기로 작성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따로 프린트를 해서 매 원정 경기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감독님의 지도 철학과도 연관이 있다. 감독님께서 청소하라고 강요하시지 않는다. 솔선수범 하시니 그 밑에 코치님들이나 직원, 선수들도 자연스레 청소에 임한다"면서 "홈 경기장 라커도 마찬가지다. 고양도시관리공사에서 관리하고 우리는 대관을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홈 라커도 감독님이 직접 다 청소하시고 선수들도 뒤따른다. 평소에도 여러 상황에 대비해서 수건이나 걸레를 들고 다니는데 청소에도 이를 활용한다"라고 덧붙였다.

ⓒ고양KH. 양평FC 원정팀 라커 청소 후 감사 인사말.

그 지도 철학은 어떤 것일까. 고양KH 배성재 감독이 이에 대해 밝혔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팀도 맡아보고 외국에서 성인 팀도 이끌어 봤다"면서 "모든 팀들이 경기가 끝나면 즐겁거나 힘들고 슬픈 마음속에 그냥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결국 그곳은 누군가가 다시 사용하는 곳이다. 선수들이 정리를 하면서 경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뿌듯함도 있을 것이다. 지도자 경력이 15년 정도 되는데 고등학교 팀을 이끌 때부터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면서 정리했다. 성인 팀에 와서 하니까 처음에는 선수들이 다들 어안이 벙벙해 보이더라"라며 말문을 열었다.

배성재 감독은 태국 탄야부리유나이티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감독 생활에 돌입했다. 태국에 네 시즌 동안 있으면서도 이 같은 청소 문화는 정착됐다. 배 감독은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솔선수범하고 정리 정돈을 잘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태국에서 이를 시작했고 선수들도 잘 따라와 줬다. 그 이후에 고등학교 팀을 맡았을 때와 올해 성인 팀에 와서도 이어졌다. 사실 태국에서는 소통이 완벽했던 상황은 아니라 표정으로만 봤을 때 '왜 감독이 청소를 하고 있지'라는 느낌이었다"라며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물론 태국 선수들에게만 신선했던 광경은 아니었다. 고양KH에 와서도 선수들의 반응은 이와 비슷했다. 배 감독은 "어떤 선수가 '감독님이 왜 이걸 치우고 계세요'라는 이야기는 했다. 거기에 '괜찮으니 너네 것 빨리 정리해라'라고 말했다"면서 "선수들도 처음에는 당황할 수 있지만 지금은 당연히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나와 선수들 뿐만 아니라 지원 스태프까지 다 같이 치운다. 쓰레기 봉투를 들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담고 의자를 그대로 접어서 다시 놓는 등 들어왔을 때의 원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이후에 스태프가 문에 잘 사용했다는 감사 인사말을 붙이고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청소 분위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만큼 이제는 그냥 하나의 습관이 돼버린 것 같다. 누구 하나 먼저 나서기 보다는 감독인 나를 필두로 솔선수범하니 선수단에도 자연스레 그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솔직히 경기에서 패배하면 분위기가 정말 침울하다. 우승 확정 전까지도 4패밖에 없었는데 그 순간의 분위기 조차도 정말 무거웠다. 그런데 선수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정리에는 최선을 다해줬다. 물론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임해준 것에 대해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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